1930년대 후반의 카프 KAPF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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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0년대 후반의 카프 KAPF 문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30년대 후반의 카프(KAPF) 문학
(이기영의「서화」「고향」, 채만식의「탁류」「태평천하」,
한설야의「황혼」,김남천의「대하」)
Ⅰ. 들어가며
Ⅱ. 작품
1. 이기영
1-1.「서화」
1-2.「고향」
2. 채만식
2-1.「탁류」
2-2.「태평천하」
3. 한설야
3-1.「황혼」
4. 김남천
4-1.「대하」
Ⅲ. 나가며
Ⅰ. 들어가며
1930년대 일본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우리의 경제권, 자주권 등을 뺏어가고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언론 등 다방면에 걸친 지배를 시행하게 된다. 그 당시는 카프문학이 출현하게 되는 시기로 카프문학은 30년대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30년대 전반의 카프문학이 리얼리즘이라는 카프 본래의 목적의식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다면, 1930년대 후반의 카프문학은 리얼리즘의 미숙한 구현이 전대보다 진전됨을 보이며 전기 카프문학의 한계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열중했음을 알 수 있다. 본 고는 카프의 주요 맹원들의 작품을 통해서 후대 카프문학의 성격과 그것이 우리문학사에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1. 이기영
1-1. 식민지 자본주의로의 전변 하에서의 빈농민의 현실과 리얼리즘의 구현「서화」
「서화」(1933) 는 31운동 직전의 조선 농촌을 배경으로 도박과 자유연애를 중심으로 당대 빈농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봉건사회로부터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해가는 당대 우리 민족현실의 전변과정을 반영했다. 그 역사적 변화의 결과로 초래된 계급분해로 말미암아 오히려 과거에 비해 한층 더 살기 힘들어진 빈농민의 입장에 작가의 시각이 놓여 있어 이 작품은 민중성을 획득하고 있다. 과거 봉건사회에 비해 식민지 자본주의하에서 빈농민이 겪는 삶의 고달픔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은 정월 초하루면 으레 이루어지던 쥐불놀이와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온갖 놀이들이 지금은 한낱 아이들의 놀이로 남아 있을 뿐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는 전혀 관심거리가 못되는 생활현실에서이다.
그러나 돌쇠의 일행은 미구에 실망하고 돌아왔다. 그들이 쫓아가 보니까 쥐불을 놓는 사람은 모두 졸망구니와 아이들뿐이므로 도무지 대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의 오락이라고는 연중 행사로 한 차례씩 돌아오는 이런 것밖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런데 올해 는 작년만도 못하게 어른이라고는 씨도 볼 수 없다. 쥐불도 고만 아닌가? 이기영, 서화,「이기영 선집 12」, 풀빛, 1992, p. 250.
특히 이런 부분은 돌쇠의 노름 부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돌쇠의 아버지인 김 첨지가 젊었을 때 했던 노름은 심심함을 풀어주는 놀이의 기능이 강했던 반면, 돌쇠의 노름은 농사로는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어 생계수단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서로 적개심을 띤 채 진행되어 인간관계를 해치는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봉건사회로부터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변과정이 빈농민한테 부과한 삶의 질의 변화는 단순히 민족적인 세시풍속이 일제의 침탈로 인하여 없어지게 되는 것에 연유하기보다는 더 근본적으로는 일제에 의한 식민지 자본주의의 강화와 그로 인한 봉건사회의 해체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10년대 우리 민족 현실은 점차 새롭게 재편되어가는 식민지 자본주의가 우리 민족의 삶을 규정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봉건적인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다. 이기영은 이 작품에서 당대 사회의 이러한 면모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것은 돌쇠와 응삼이의 처 이뿐이 사이에 벌어지는 자유연애에서 잘 드러난다.
대부분의 농촌 젊은이들은 봉건적 관습인 조혼과 강제결혼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돌쇠도 조혼으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 아무런 애정도 없이 살아가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맞는 응삼이의 처 이뿐이와 정을 통하게 된다. 이뿐이 역시 부모의 강요로 인해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정을 느끼지 못하고 돌쇠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러한 사정은 이 두 남녀뿐만 아니라 당시의 거의 모든 젊은 세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이다. 이러한 문제는 정 주사의 아들로서 민족개량주의자의 전형인 정광조에게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결혼 제도에는 따라서 많은 폐해가 있는 줄 압니다. 남자는 첩을 두고 외입을 합니다. 여자는 본부를 독살하고 음분도주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모두 강제 결 혼과 조혼의 선물이올시다. 그러므로 아까 둘째 조목으로 보고한 사실이란 것도 그 근본을 캐고 보면 결국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가 결함이 있는 데에서 생기는 반드시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폐해올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제도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오히려 ‘동정’할 점이 많이 있을 줄로 저는 압니다.” 이기영, 같은 책, p.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