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학개론] 예수의 변호자 -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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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학개론] 예수의 변호자 - 성령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예수의 변호자, 성령 저자: 윤석전
전도학 개론 수업가운데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전도 할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이 깊었다. 책의 저자인 윤석전 목사님의 목회하시는 교회를 다니는 필자로선 평상시 삼위일체의 하나님 되시며 그중 한위이신 인격적 하나님이신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소통을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 늘 들어 왔기에 가슴 깊이 그 대목이 와 닿았다. 학교에 오기 전 청년회 전도특공대라는 전도 전문 청년회 기관의 일원으로서 매일 두 시간 이상 기도하고 주 삼회이상 약 한 시간가량을 노량진 사거리에서 노방 전도하는 훈련을 받아 오던 터라 정말 경험에서 우러나온 반가움이기도 했다. 전도는 정말 어떠한 방법이나 노하우보다도 지옥에서 영혼을 건져내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그 진심을 기도를 통해 체험할 때에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부르짖는 진실한 애절한 기도 가운데 그 경험이 부족할 때엔 전도는 그야말로 거리의 삽질이고 시간이 그토록 길수가 없다 욕이라도 먹는 날엔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 그러나 기도가 주님 앞에 상달되며 성령님과의 심령에서 나오는 인격적인 오고감이 있은 후의 전도는 그야말로 어떤 사람이든 말만 걸어도 그 사람을 제자리에 붙들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진실함과 인격적인 호소가 심령에서 우러나온다. 기도야 말로 내영혼의 호흡이요, 인격적인 성령님과의 소통이요, “나는 죽어도 인류의 한사람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라는 예수님의 정신을 경험하는 그 통로이다. 방언하며 부르짖어서 인격적인 호소하는 기도가 없이는, 물론 전도의 성공여부는 그 사람의 중심이지만 정말 힘들 때가 너무 많았다. 서두가 길었는데 즉 전도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내가 힘입어서만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저자 목사님의 예수의 변호자 성령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예수님의 생애 전체와 특히 절정기인 수난의 기간을 어떤 신학자의 경험과 조언이나 어떠한 주석없이 성경 말씀 본문만 놓고 풀어쓰신 책이기에 택하게 되었다.
책으로 차례대로 지금부터 들어가 보자. 예수님의 공적 사역기간 즉 공생애는 전적인 성령께 이끌리셨던 삶이었다.
가장 먼저 공생애가 열릴 때인 침례를 받으실 때도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 위에 임하셨고 (마 3: 16-17) 공생애 시작부분에 가장 먼저 예수를 대적한 원수 사단의 방해를 받을 때도 성령께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고 (마 4: 1) 예수님 스스로도 직접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낸다 (마 12: 28)라고 하셨으며 성령의 권능으로 여러 회당을 다니시며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것이다(눅 4: 14-15).
또한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기록되었고(행 10: 38)
예수님의 탄생 또한 성령으로 잉태 되셨으니 (마 1: 18) 그 탄생으로부터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순간까지도 성령과 함께하셨다. 이처럼 한 평생 성령으로만 사셨기에 성령만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시고 그가 만왕의 왕이심을 제일 잘 아는 증인이 되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께서 예수와 함께하심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고, 바다의 풍랑이 잔잔해지고, 문둥이가 치료 받는 역사가 제한 없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수십 킬 수백 킬로 떨어진 지중해 연안 시돈땅에서도 예수를 만나러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던 광야만 보더라도 장정만 오천이요 노인 어린이 여자를 합치면 족히 수만이 넘는 인원이 물 한 방울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광야에 모여 들었다는 것을 보자면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에 예수께선 얼마나 성령으로 이적을 행하셨는지를 짐작 해 볼수 있다. 이런 권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시던 때에 예수께선 느닷없이 한 말씀을 가까운 제자들에게만 하시는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라고 하신다.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메시아로 민중들뿐 아니라 제자들까지도 오해하고 있던 터였다.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고 ,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능력과 권세 있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본 제자들 이었기에 예수님이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말은 물론, 누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준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공적 생애 사역이 계속 되어가며 민중의 오해 섞인 지지를 받으실 때에 지옥갈 영혼들을 위해 필연 피 흘려 죽으셔야할 예수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민중의 관심을 예수에게 빼앗긴 바리새인과 제사장인 유대민족 지도층의 시기와 음모로써 나타난다.
예수께서 변방 갈릴리지역과 이방 땅을 두루 도시며 사역하시던 도중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호산나를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가시는 길에 깔아주며 온 성안이 왁자지껄한 환호를 받으시는데 예수께선 이미 그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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