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초(石艸) 신응식(申應植) - 작가의 생애 & 작품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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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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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석초(石艸) 신응식(申應植)
1. 작가의 생애 · 활동
신석초는 1909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의 본명은 응식(應植)이며, 필 명은 유인(唯仁), 석초(石艸) 혹은 석초(石初)등이 있으나 주로 그는 석초(石艸)를 썼다. 그는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할 만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한학과 신학을 동시에 공부,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 나 신병으로 중퇴하였다.
이 무렵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으며,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철학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아 카프(KAPF) 카프(KAPF) : 1925년 8월에 결성된 경향적(傾向的)인 예술단체.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의 약칭.
의 맹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1931년에 『중앙일보』에 「문학창작의 고정화를 위하여」를 발표, 이듬해엔 『신계급』에 「예술적 정당화를 위하여」를, 『문학건설』엔 「싸베트(소비에트) 문학의 새로운 과제」를 연이어 발표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당위성만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카프 내부의 소장파들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카프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1933년 박영희와 함께 카프를 탈퇴하였다.
그는 특히 프랑스 문학가인 발레리 발레리 : 프랑스의 시인ㆍ사상가ㆍ평론가. 그가 쓴 작품 중 〈나르시스는 말한다〉 등 〈구시첩(舊詩帖)〉(1920)에 수록되는 다수의 작품을 썼다. 주로 순수 음악에 가까운 것을 씀으로서, 그 격조 높은 음악성으로 말미암아 순수시의 규범이라 일컬어졌고 말라르메의 전통을 확립하고 재건, 상징시의 정점을 이뤘다. 20세기 최대 산문가의 하나로 꼽힌다.
에 크게 심취하였으며, 1935년에 그의 시작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한학의 스승인 위당 정인보와, 그의 벗인 이육사를 만나게 된다. 그 뒤『신조선』편집을 담당, ‘석초(石初)’라는 필명을 사용,『신조선』에「비취단장」,「밀도를 준다」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2년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문장』이 폐간되었는데, 이 폐간호에 석초는 「발레리 연구」라는 논문과 「바라춤」,「궁시(弓矢)」 2편을 실었다. 1946년 첫 시집『석초시집』을 간행하였고 해방 후 1949년 활동이 본격화 되며 이후 사무국장에 선임,『현대문학』시 추천 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1959년 두 번째 시집 『바라춤』이 간행되었고 세 번째 시집『폭풍의 노래』(1970), 네 번째 시집『처용은 말한다』(1974), 『수유동운』(1974)을 간행한 후 1975년 천식과 장출혈로 사망했다. 사후 고향인 서천에 시비가 건립되었다.
(대표적 작품과 관련)
2. 작품 경향 - 전기, 중기, 말기
① 전기 : 관능의식의 형상화
가속화되는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정책으로 한국의 많은 문인들이 침묵하거나 침몰했다. 그 시기의 지식인들은 조선의 얼을 학문적으로 접근했고 고전주의를 표방하여 묵시적으로 일본에 대항했다. 식민지 현실을 타파하고 개혁하기보다 방황했지만 위당 정인보의 민족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은 석초는 고전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는 그가 왜 그토록 한국적 전통에 민감했고, 신라와 처용, 고풍을 추구했는지 파악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폐허로 상징되는 현재의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을 실천적으로 극복하기보다 과거의 영화를 동경함으로써 위로 받길 원했던 것이다.
이후, 그의 전기시는 생의 본능과 좌절, 원시적 생명의 추구 등이 혼효되면서 관능적, 감각적인 색채를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