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기 제국주의적 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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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 공화정기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로마 공화정기 제국주의적 팽창
-목 차-
Ⅰ. 서론
Ⅱ. 로마 제국주의의 동기
Ⅲ. 팽창전쟁의 전개
Ⅲ-1. 페티알레스 법
Ⅲ-2. 제1차 포에니 전쟁
Ⅲ-3. 제2차 포에니 전쟁
Ⅲ-4. 속주의 통치체제
Ⅳ. 결론(포에니 전쟁의 결과)
Ⅰ. 서론
기원전 265년 무렵 이탈리아에는 로마에 의해 주도되는 이탈리아 연방이 수립되었다. 여기에는 로마의 시민이나 반 시민뿐 아니라, 법률상으로는 독립적이었던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도시들은 로마의 동맹자일 뿐이었으나 로마인들은 이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이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또한 동맹군은 로마군과 더불어 로마가 결정한 전쟁을 치르고 그 혜택을 공유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이탈리아는 연방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로 어느 정도 통합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대략 120년 정도 주요 지중해 세력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 나갔고, 그 결과 기원전 2세기 중반 무렵에는 지중해 주변의 주요 지역들을 속주 한 대제국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로마의 제국주의적 팽창과정 중에서 이 글에서는 1차 포에니 전쟁부터 기원전 2세기 중반의 지중해 세력을 흡수하는 과정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제국주의(Imperialism)라는 용어는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제국주의 용어의 기원은 ‘황제(Emperor) 또는 ’제국(Empire)에서 비롯되었다. 독재 권력의 관념과 연상되어 있고, 그와 같은 권력과 연상된 절대 통치방법과 어울려 있는 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발전과 함께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생겼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 로마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제국주의를 보다 폭넓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가 타국에 대해 우월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 이라고 본다면, 로마의 경우에도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전쟁인 포에니 전쟁을 알아보기 전에 로마는 왜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고 속주로 만들려고 했는지 그 동기부터 알아보겠다. 그리고 이 동기를 중심으로 진행된 전쟁으로 인해서 로마는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는 결론을 통해서 살펴보겠다.
Ⅱ. 로마 제국주의의 동기
로마는 고대의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오랫동안 또 빈번히 전쟁을 하였다. 2차 포에니 전쟁 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로마는 헬레니즘 문화권의 여러 나라를 차례로 정복, 지중해 세계의 사실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러한 로마의 호전성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개인적으로 전쟁에서 얻은 명성은 한 귀족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하였다. 예를 들어 기원전 205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이렇다 할 공직 경력이 없이도 그와 그의 가문의 군사적 명성에 자극받은 민중에 의해 지지받아 콘술에 당선될 수 있었다. 승리한 전쟁은 또한 전리품을 가져다주었다. 지휘관은 전리품을 적절하게 분배하여 병사들로부터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는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전리품에 의해 얻은 엄청난 돈을 공공건물이나 시설 설비에 투자함으로써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전쟁의 승리를 갈구한 것은 지배층만이 아니었다. 평민들도 토지와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또 사회적 승진의 기회로서 전쟁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다.
Ⅲ. 팽창전쟁의 전개
Ⅲ-1. 페티알레스 법
로마인들은 방어적 이유로 시작된 전쟁만을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상대국이 전쟁의 사유가 될 만한 가해 행위를 하였을지라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적절하고 타당한 절차를 밟아야만 그 전쟁은 ‘정당한 전쟁’으로 성립된다고 믿었다. 그와 같은 절차는 ‘페티알레스 법(iusfetiale)이라 불리어진 일종의 종교법에 의거하였다. 페티알레스 법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전쟁을 할 정도의 가해를 당하면 일단 한 명 혹은 두 명의 페티알레스가 가해국으로 가서 배상을 요구한다. 30일이 지난 후에도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神)들에게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나서 원로원에서 전쟁 여부가 결정되고, 민회는 이를 승인한다. 그런 후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이 페티알레스 법은 방어전이 아닌 침략 전쟁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로마인들의 팽창 욕구를 억제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힘이 다른 공동체들보다 우월해지자 이러한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상대에게 배상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가능한 한 전쟁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것보다는, 절차에 관한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데에 이용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는 승전을 얻기 위한 종교적 예방조처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페티알레스 법은 점차 의미가 약화되다가 로마가 많은 전쟁으로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는 시기에는 거의 기능을 상실했다. 팽창을 하는 데에는 불필요한 존재일뿐이었다.
Ⅲ-2. 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 -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