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새마을 운동과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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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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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새마을 운동과 “고향”
1. 서로 다른 귀향
일상성은 현대인들이 가장 지겨워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해 하는 이상한 물건입니다.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출근전쟁, 지루한 업무, 늘 보는 얼굴들에 극도의 권태와 피로를 느끼면서도 도시의 샐러리맨들은 이 일상성에서 벗어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상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실직이나 퇴직을 의미하며,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게 때문입니다. 앙리 르페브르,『현대세계의 일상성』, 세계일보, 1992, 13면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 일상성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기를 찾는 대신 귀중한 것을 포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탐욕적이며, 생산적이고, 역동적인, ‘새롭고’, ‘신기한’ 것, 일종의 시원적 계기가 되려다보니, 그것은 해체의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에 선행한 것―자신보다 근원적인 것―과의 관계를 정립해야만 하는 근대성의 욕망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현재 이하의 자기 정체성, 자기의 양식 대중사회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양식(형태기능구조의 통일성)의 종말을 고한다.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는 대량생산은 기능 이외의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식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그에 대한 향수는 한층 짙어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양식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그에 대한 악착같은 추구로 특정 지워진다. 위의 책, 15면 참조.
입니다. 장수현김우영譯, 레이 초우,『디아스포라의 지식인』, 이산, 2005, 70면
위와 같은 파괴적인 현실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증오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과거 또한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이어서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우리가 그리고 있는 것들의 실체라고 믿는 “고향”입니다. “나에게 과거란 오직 고향땅에서 보낸 유년소년 시절만이 광휘를 발할 뿐, 나머지 세월은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처럼 여겨진다.”(현기영, 지상의 숟가락 하나, 9면) 그리고 그 고향땅에서 보낸 유년소년 시절을 글로 씀으로서, “이제 심신이 피로한 중늙은이가 되어 다시 모태로의 회귀……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잊혀진 어린 시절을 글 속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자는”(현기영, 지상의 숟가락 하나, 9면)방식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자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자기 아이덴티티 확립으로서의 귀향의식은 세대가 다른 작가의 글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자신의 기원을 잊게 하는 일상성 속에서 “토악질”하는 룸메이트 정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자흔의 모습을 그린 한강의 「여수의 사랑」이 그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강과 현기영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귀환하는 고향은 서로 다른 곳입니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귀환하고자 하는 고향은 “여수”라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지상의 숟가락 하나」에서 현기영이 귀환하고자 하는 곳은 한강의 그곳과는 다른 고향입니다. 현기영은 위의 작품에서“나도 변했지만 고향도 이젠 많이 변했다. 옛것들은 망가지거나 허물어져 사라져버리고, 남아 있는 것들은 향락적 소비문화의 광기와 천박함에 지배당하고 있다. 공항에서 내리면, 바로 거기서부터 서울의 연장인 듯이 비슷한 풍경의 시가지가 펼쳐지는데, 최근에는 내 출생지인 노형까지 확대되어서, 옛것들을 찾고, 옛것 속에 스며 있는 나의 과거를 찾으려는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장소들은 있는데, 거기에 깃들었던 나의 과거, 본질적이고 보다 참된 것들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밑에 깔려버린 것이다. 내 시선을 튕겨낼 뿐, 아무것도 드러내주지 않는 그 비정성에 나는 넌덜머리를 낸다.”(현기영, 지상의 숟가락 하나,378면)라며 실재하는 고향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근원을 찾을 수 없다고 서술합니다. 하지만 그의 고향 속에는 다른 의미의 공간이 있습니다. “그 이듬해 대학 진학을 위해 어렵사리 고향을 떠난 이래 지금까지 서울 생활을 해오고 있으니, 애초의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랴. 필생의 업으로 여겼던 문학은 또 무엇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나의 얼굴은 점점 내 방에 걸린 아버지의 영정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당신과 나 사이에 놓여 있던 세월의 간격은 물론 불편했던 여러 과정들을 일시에 제거 하면서 나를 바로 아버지의 그 자리에 옮아가게 만들었다.”(지상의 숟가락 하나, 388면) 즉 막연한 “제주도”가 아닌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족의 공간”인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자기정체성 확립 공간으로서 현기영이 인식하는 고향공간은 제주도에서 노형, 노형에서 가족으로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가족을 중심적 시선으로 두고 노형, 노형에서 제주도, 제주도의 43항쟁을 서술해 나갑니다. 반면 한강의 고향은 나의 가족, 가족의 생활공간이었던 동네는 생략된 “여수”, 다시 말해 근대적 공간(도시)에 반대되는 아포리아적인 추상성의 공간(내 마을=고향)입니다. 이렇게 내 마을이 곧바로 고향이 되어버리는 현상은 최근에 빈번히 발생하는 “향토축제”의 팸플릿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다양한 향토축제의 팸플릿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http://www.kccf.or.kr/참조할 것.
그리고 그러한 축제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역사성을 주장하지만 그것들은 실제 70년대 새마을운동의 한 일환으로서 개발발견되었던 것 70년대는 축제를 발견하고 개발해내는 시기이다. 예를 들면 난립해 있던 전국의 축제를 ‘향토축제’라는 이름으로 체계화하고 정부 관리 하에 둔다. 전통문예개발부분 중 고유민속개발보급에 1,45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그 중에 가장 중점을 두었던 사업이 전국의 향토축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 중 사업 첫해에 가장 확대시켰던 것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였다. 74년 부산에서 15회를 맞는 이 대회의 지원액을 650여 만 원으로 올리고 전국적으로 방송하는 등 부각시켰다. 축제목적과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분류해보면 50.8%에 달하는 향토축제가 기념, 놀이 등을 통한 주민동원 및 소득증대를 위한 농악, 사물놀이 등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들이다. 즉 노동하는 것을 독려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하여 개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사 실현의 주체를 시도군에 둠으로 산개해있는 농촌을 하나로 통합하려 하였다. 하효숙,「1970년대 문화정책을 통해 본 근대성의 의미」, 서강대학교대학원, 2001, 29면 참조
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가족집단의 생활공간으로서의 농촌향토가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어떻게 “내 마을=고향”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농촌 새마을 운동 이전을 포함한 현제까지의 농촌을, 전근대적인 전통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마을 공동체로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농민은 근대화의 도정에서 주요한 변수로 등장하곤 했다. 근대국가형성에서 지주―농민관계를 비롯한 농촌 내 사회 계급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는가에 따라 국가의 성격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농민은 국가형성의 주요한 동력인 농민혁명까지 수행한다. 또한 산업화가 야기하는 본래적 구조에 대한 파괴에 대해서 농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충격을 완화하거나 혹은 그것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종운,「1970년대 국가와 농민관계에 관한 연구」, 서울대대학원, 1994 및 정종민,「의례를 통해본 일상의 정치」, 전남대대학원, 2004)
을, 내 마을, 고향이라는, 정적인 동시에 근대성이 부재하는, 따라서 계몽 혹은 더 전통적으로 꾸며져야 할 공간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근대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