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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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문화
1. 헬레니즘 세계의 성립과 새로운 문화
기원전 5세기 말부터 노골화된 폴리스 상호간의 분열과 전쟁으로 인하여 그리스가 쇠퇴함으로써 북방의 마케도니아에 의해 헬레니즘 시대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고전기 그리스인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반야만국가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는 필립 2세의 치세동안 후진적 상태를 벗어나게 된다. 필립 2세는 그리스의 중장보병제를 도입하고 상비군을 두었으며 중앙집권책을 통해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그리스 세계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점점 증대해 나갔다. 이즈음 아테나에서는 필립2세의 야심을 경계하는 사람들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간의 분열이 생기게 된다. 그리스 내부의 분열은 필립 2세의 그리스 통합을 용이하게 하여 기원전 338년 필립 2세는 카이로네이아전투에서 그리스 군대를 굴복시킴으로써 그리스 정복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2년 뒤 암살되고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가 마케도니아의 통치권을 물려받아 동방 원정을 단행했다. 알렉산드로스는 12년 동안 시리아, 이집트 등지를 격파하고 멀리는 인더스강까지 점령하였다. 이로써 알렉산더가 통치하는 거대한 제국이 탄생하였다. 평소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고 존경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정복 사업과 아울러 그리스 문화의 전파에도 주력하였다. 그 결과 동방으로 전파 된 그리스 문화는 오리엔트 문화와 만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즉 인종의 혼합과 생활환경 및 제도의 변화라는 요소에 의해서 변종되었다. 헬레니즘 문화(Hellenistic culture)란 바로 그리스 문화를 토대로 하여 탄생한 이 시기의 그리스적 문화를 칭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로스 사후(B.C 323)부터 로마의 지중해 세계 통일(B.C 31)까지의 시기를 헬레니즘 시대(Hellenistic age)라 부르게 되었다.
헬레니즘 문화는 특히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향유하였다. 도시의 거주민들은 코이네 (coine)라는 공용화한 그리스어로 말했고 사람들은 어느 도시에서나 비슷한 공간적 구조 속에 살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그리스 문화는 일종의 공동 문화로서 보편성을 띈 문화였다. 고전기 문화에서 결여되었던 이 요소는 지역과 인종간의 장벽이 무너짐과 아울러 가미된 것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보편주의란 코스모폴리터니즘(세계시민주의)이라 칭하는데, 이것은 그리스인들이 폴리스를 대신하여 나타난 범민족적 혹은 초민족적 국가의 등장이라고 하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가지게 된 사고의 경향이었다. 이러한 사고의 경향으로 인하여 그리스인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생활 방식과 취향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 시기 문화 전반에서 그 특성이 발견되는 것이다.

2.사상과 종교
폴리스 시대의 문화, 즉 고전기 그리스 문화는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이상이 잘 구현된 문화였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에 접어들면서 폴리스간의 또는 인종간의 장벽은 무너지고 공동체 구성원은 원자처럼 분리되어 개별화 되었다. 이러한 경향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현실 도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봉사해야 할 공동체를 잃어버린 그리스인들이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철학의 중심주제도 달라졌다. 이상적인 도시국가의 형태나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를 다루었던 고전기 철학과 정치 이론은 쇠퇴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윤리학이 발전하게 된다. 헬레니즘 철학의 주요경향을 대변한 스토아주의, 에피쿠로스주의, 회의주의는 제각기 가르침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한 가지 점에서 만큼은 일치하고 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인간이 겪는 고통과 악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다는 점이다.
제논의 의해 창시된 스토아 철학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인 통일 원리를 로고스(Logos)라고 했으며, 이를 우주이성, 세계이성이라고 불렀다. 우주의 일부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로고스의 분신인 이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 이성과 우주의 통일 원리인 로고스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보았다.
스토아학파는 이성을 극히 존중하였고, 이성에 쫓아서 생활할 것을 강조하였다. 인간이 급변하는 세계에서 외적 세계의 자극에 동요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의 사물에 대한 욕망이나 집착을 끊고 마음의 부동 혹은 무격정, 즉 아파테이아(Apatheia)를 얻어서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데 이러한 상태는 이성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 사람은 누구나 이성을 지니고 있는 한 평등하고, 전 세계 인류는 형제이며 동포이자 같은 시민이라고 주장하였다. 스토아학파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편타당성을 갖는 자연 이법에 절대로 순응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근대 자연법사상의 원천이 되었으며, 로마의 법사상과 그리스도교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음으로 에피쿠로스학파는 이성을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의 작용으로 보고 이성보단 직관적 감각과 경험을 더욱 중시했다. 에피쿠로스학파 윤리학의 최종 도달점은 격변하는 세상에서 변화에 휘말리지 않고 변화로부터 자유를 누림으로써 행복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인간은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이다. 행복은 그들의 목적으로서 즐거움이자 유일한 진선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은 물질적, 감각적 즐거움이 아니고 주로 지적, 정신적 즐거움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욕망, 욕구 등으로부터 벗어나고 무엇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아타락시아(Ataraxia) 즉, 공포로부터의 도피였다. 따라서 에피쿠로스 철학에서는 인간의 삶을 공포로 몰아넣는 악령이나, 미신같은 것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과학적 이론인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통해 세계를 구상함으로써 인간을 신에 대한 두려움과 미신의 악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이후 에피쿠로스학파의 주장은 경험론과 공리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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