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 6학년 - 3 너그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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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리스토텔레스 - 6학년 - 3 너그러운 마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
도덕교육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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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리스토텔레스 개관 - 목적론적 윤리관과 ‘덕’의 개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플라톤과 함께 가장 중요한 고대 출학자로 꼽힌다. 그는 플라톤을 매우 존경하였지만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가면서 자신의 고유한 철학 사상을 갖게 되어, 플라톤의 가르침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플라톤은 “마치 어린 망아지가 제 어미에게 하듯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 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윤리학』, 풀빛, 서울, 2005, 170p.
플라톤은 선이라는 것이 궁극적인 가치이고 이러한 궁극적인 가치는 다른 세계에 따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이데아의 세계는 현실세계의 토대가 되므로 이데아 세계와 현재 세계는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경험의 현실세계에서 참 존재를 발견하려 하였다. 그는 “존재자들 가운데서 제일가는 것은 실체들이다. 그 밖의 다른 유형의 존재자들은 실체적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다.” J.L.아크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서광사, 서울, 1992, 232p.
라고 말하며 개별자 속에 보편자가 있다고 보았고 초월적인 이데아를 거부하였다. 그는 현실주의자로서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직 하나의 자연적인 세계밖에 없으며, 이데아든 감각적인 사물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세계 속에 같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참으로 좋은 것, 그리고 참으로 선한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무엇이 선한가?’라는 물음이 던져지게 되는데 현실주의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실현 불가능한 선을 참된 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선은 이 세상의 일이며, 따라서 그것은 삶의 완성이나 온전함과 관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적인 의미의 선, 즉 전체적으로 좋은 삶을 그것의 기준으로 삼는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삶에 대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여러 후보들에는 향락적인 삶, 명예로운 삶, 도덕적인 삶, 돈 많이 버는 삶(이것은 결국 수단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제외가 되지만) 등이 있었는데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적인 삶 가운데 들어 있는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그것의 특성들에 주목한다. 이상적인 삶은 전적으로 충만한 것이어야 하고, 개선되어야 할 구석이 조금도 없는 것이어야 하며, 외적 불행으로 인하여 무너지게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것의 마지막인 최고의 목적을 ‘최고선(最高善)’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궁극목적은 최고선의 실현이고 그 최고선은 행복이라고 보았다. 행복을 얻는 길은 이성에 따라 감각과 욕구를 조절하며 자신의 능력을 조화적으로 발휘하며 사는 것, 즉 이성과 부합하는 탁월한 활동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조절과 통제의 구체적인 방법이 중용이고 이성적 활동에 따라 생기는 습관을 덕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습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행복이란 완전한 덕이라는 의미에서 영혼의 어떤 활동이다. 따라서 우리는 덕을 알아야 한다. 덕은 도덕적인 덕과 지적인 덕으로 구분된다. 먼저 도덕적인 덕의 예로는 절제, 관용, 인내, 용기, 인내, 용기, 관후, 정의 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중용에 터잡혀 있는 품성의 상태라고 말한다. 흔히 인식되는 바에 따르면 이 정립은 우리에게 늘 조심해 가면서 온건하게 느끼고 행동할 것을 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이다. 이 중용은 절대적인, 산술적인 중간점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의 판단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 맞게 무엇이 중용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행동은 모두 다 중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도둑에게 자신의 소유를 모두 다 내줘서는 안 되지만 어느 정도를 내 주는 것은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덕, 즉 품성의 상태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덕들과 고리 지어져 있는 갖가지 종류의 행동 또는 느낌들은 사정에 따라서는 도를 넘게 또는 도에 못 미치게 될 수도 있는 행동이자 느낌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너그러움은 내주는 일과 고리 지어져 있다. 너그러움이라는 덕이 요구하는 것은,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건 자신의 소유를 모든 이들에게 모두 다 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주는 일은 과도하게 행해질 수도 있고, 부정직하게 행해질 수도 있다. 품성의 올바른 상태는 어떤 경우에서건 적정의 느낌과 적정의 행동이 나오게 되는 상태다. 도덕적 덕에 관한 중요한 또 하나의 정립은 도덕적 덕들은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를 갖게 되면, 모두를 갖게 된다는 ‘덕의 단일성’에 대한 것이다. 이 생각은 얼핏 보기에는 매우 이상한 것같이 보인다. 실생활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이런 덕은 갖고 있으나, 저런 덕은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어떤 한 가지 덕의 완벽한 실례들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을 두고서 “용감하다”고 일컫는 것이 곧 그가 생각될 수 있는 매 경우에서마다 용감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이 보장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한 가지 덕을 완벽하게 지니고 있음이 동반하는 것을 설명해 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도 품성상의 결함이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욕구와 느낌과 경향성은 연습의 과정을 거쳐 적정 수준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영역에서의 품성상의 결함이 저런 영역에서의 덕의 원활한 발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욕구와 느낌들 가운데서 일정한 균형과 일정한 조화의 성취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적인 덕의 예로는 지혜, 이해력, 지성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주로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도덕적인 덕은 선택과 관계된 성품의 상태인데, 선택은 깊이 생각한 욕구이므로 좋은 선택을 하려면 이치도 옳아야 하고 욕구도 바른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치가 지향하는 것을 욕구는 추구해야 한다. 행위의 출발점은 선택이고 선택의 출발점은 욕구와 목적을 갖는 이치다. 그러므로 이성과 사유가 없거나, 또는 도덕적 성품이 없다면 옳은 선택을 할 수 없고, 나아가 좋은 행위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사유 자체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며, 오직 목적이 있는 실천적인 사유만이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다. 목적이 있는 실천적 사유는 무엇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사유도 지배한다. 좋은 행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욕구 또한 이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선택은 사유와 관련된 욕구이며 욕구와 관련된 이성이다. 지적인 덕은 긍정과 부정을 통해 정신이 진리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덕과 지적인 덕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개별적인 영역에서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도덕적인 덕이 지적인 덕에 속하는 실천적 지혜와 연계되어져야만 한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개의 정황 속에서 어떤 것이 공정한 것이고, 어떤 것이 친절한 것이며 또 어떤 것이 너그러운 것인가를 검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다면 품성의 탁월함은 그 품성의 소유자가 그에 맞는 행동을 실행하기도 함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상의 것들을 정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덕은 행위를 결정하는 본성의 상태이며, 중용을 통해 구성되고 우리 각자의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이성의 명령을 통해서 정의된다. 즉, 지적인 사람들이 그것을 정의할 때와 같이 이성과 관련해서 정의되는 것이다.” 이렇게 덕을 지닌 사람은 이성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행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적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덕은 옳은 행동이 습관이 될 때까지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얻어지는 인격적인 특성인 것이다.
최선의 삶은 실천적 지혜와 도덕적 덕을 드러내 보여 주는 행동의 삶일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과 절제 있는 삶, 그리고 그것을 향한 노력과 실천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