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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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적용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적용
1.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개관
모든 행위는 좋은 것을 지향한다. 그때마다 지향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행위의 목적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수행되는 모든 행위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하는 행위는 맹목적이다. 인간은 상하관계 속 에 놓여 있는 다양한 욕구와 목표들을 갖고 있는 고도로 복잡한 생물이다. 삶의 이상은 복합적인 목표이다. 우리는, 다양한 선들이 상충하는 경우,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저울질되어야 마땅한가를 천착해야 한다. 과자 속을 들여다 보면, 형체를 이루는 데 쓰여진 성분도 있고, 미각을 돋구는 데 쓰여진 성분도 있고, 옹고제로만 쓰였을 뿐인 성분도 있듯이, 추구하는 행위가 다양할수록 목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된다. 고등학생이 공부하는 것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함인데 좋은 점수는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또 다른 행위이고 평생 대학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면 대학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이처럼 추구해야할 좋은 것들의 대다수는 목적인 동시에 수단이 된다. 그런데 삶이 공허한 맹목적 유희가 되지 않으려면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우리의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하고 물었고 우리의 삶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것들 가운데 최고로 좋은 것 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으므로 행복은 보편적으로 추구되는 가치이다. 또한 행복은 그것 아닌 다른 것을 위해 수단적으로 추구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무엇을 위해 행복하게 되려고 하는 가란 질문이 성립할 수 없듯이 행복은 그 자체로 추구되는 좋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는 선을 어떤 당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원칙적인 자연적 욕구라고 생각했다. 각자가 행위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것이며 그것이 선이다. 또한 최고의 선은 당위적으로 강제되는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추구하고 욕구하는 대상인 행복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삶의 윤리적 이상이 인간의 자연적 욕망에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이념적 가치로 설정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모든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현실세계일 뿐이며 이상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욕구에 질서와 통일성을 부여해 삶을 완성시키려고 했으며 행복이란 그러한 욕구의 표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 대다수 사람들은 행복이 쾌락이나 부나 명예처럼 명백히 보이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각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행복이라고 한다. 때로는 같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병들었을 때는 건강을, 가난할 때는 부유함을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행복에 대해서 말했다.
이 말은 행복을 규정할 수 없는 추상이라고 하기 위함이 아니라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교정하기 위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은 그 자신에 고유한 일과 기능을 완전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플라톤이 말한 ‘일’의 개념과 같다. 우리가 자신에게 고유한 일, 자기에게 어울리는 일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상태가 바로 행복이며 그때 느끼는 내면의 희열과 기쁨이야말로 참된 행복에 수반되는 참된 기쁨이자 쾌락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된 행복이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고유한 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고유한 본성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다르면 ‘이성의 능동적 활동’이다. 먹고 자는 본능과 감각에 따른 운동은 동물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성은 오직 인간의 영역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을 소질에 맞게 이성적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능력에도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 참된 행복이란 우리의 이성이 탁월함을 보일 때 실현된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으로는 ‘덕에 따른 정신의 활동’이다.
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을 원한다고 해서 똑같이 행복에 도달할 수는 없다. 제일 좋은 것이라고 선택한 일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우리의 삶은 언제나 좋은 것이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우리가 보여주는 지속적인 경향성을 가리켜 성품이라고 불렀다. 이 성품의 탁월함이 ‘윤리적 덕’이다. 항상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성품을 가진다면 윤리적으로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반면 나쁜 길로 빠지는 원인은 정념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정념이란 ‘욕망, 분노, 공포, 태연, 질투, 환희, 사랑, 증오, 동경, 경쟁심, 연민 그리고 일반적으로 쾌락이나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 들이다. 우리가 어떤 성품을 갖는가 하는 것은 정념을 어떻게 다스리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념은 무조건 억압하고 누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테레스도 정념을 자연적인 것으로 봤으며 도덕적 판단물이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어 모든 성욕이 나쁘다고 억압한다면 인류는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문제는 정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념과 어떤 관계를 맺는 가이다. 똑같은 흙이더라도 그것을 빚는 도공의 손길에 따라 도자기의 질이 달라지듯이 정념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있다. 정념은 그 자체로 선이나 악이 아니다. 더욱이 삶에서 정념이 악으로 작용하는가 선으로 작용하는가 말해 줄 사람도 없으며 명확한 기준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가장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용의 상태는 인간마다 틀리며 스스로 중용의 길을 걷고 있다는 믿음에도 부족함이나 과함이 있다.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 선하고 악인지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야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실천적 지혜라고 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씨만 갖는 것으로 부족하며 그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실천적 지혜는 추상적 암기를 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법칙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시키는 훈련을 통해 점차 나아져야 한다. 결국 우리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서 삶을 되묻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