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 역설적 표현 & 님의 상징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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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만해 한용운
1. 한용운의 생애
만해 한용운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길성읍 성곡리 491번지에서 아버지 한응 준 지금까지 만해는 아버지, 백형과 함께 의병 운동을 하다가 참패, 출가 입산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최근에 고향 홍성 한수갑씨가 보관한 교지에 따르면, 만해의 아버지 한응준은 종 5품, 충훈부 도사(무과)를 지낸 것으로 되어 있고, 양호 도순무사가 갑오년(1894)에 내린 전령에는 한응준이 농민군을 토벌한 것으로 적혀 있다(만해사상연구소 발표, 1982. 3. 2. 서울신문 참조).
과 어머니 방(方)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18세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4세에 전정숙과 결혼, 25세 때에 아들 보국(保國, 6.25때 행방불명)을 얻었다. 18세 때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자 피신하여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05년 인제(麟蹄)의 백담사(百潭寺)에서 승려가 되었고 만화(萬化)에게 법을 받았다. 계명(戒名)은 봉완, 법호가 만해며, 용운은 법명, 속명은 유천이다. 27세 때는 세계 여행의 뜻을 품고 만주, 시베리아를 방랑하다가 중도에 귀국하여 함남 안변땅 석왕사에서 참선했다. 29세 때인 1908년에는 일본의 문물과 불교계를 살피고 돌아와 친일 불교론자를 타도하고, 불교의 현대화를 주장하며 34세 때인 1913년에을 발표했으며, 대장경을 독파, 축략하여 대중 불교의 성전인 「불교 대전」을 발간했다. 39세 때(1918)에 자신이 발간한 교양 잡지「유심(惟心)」에 처녀작 시 ‘심(心)’과 수필 ‘고학생’을 발표했다. 그가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민족 대표 33인 중 1인으로 백용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서명, 독립 선언서에 공양 3장을 추가했고, 거사 당일인 기미년 명월관 지점에서 선언서를 낭독하고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조선 독립의 서(書)’를 썼고, 43세 때인 1922년 4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으며, 1925년 46세에 오세암에서「십현담 주해」(6월 7일)와 시집「님의 침묵」(8월 29일)을 탈고 했다. 1926년 시집「님의 침묵」을 내놓고 문학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 중앙집행위원으로 경성지회장을 지냈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朝鮮佛敎靑年同盟)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월간지를 인수하여 속간하였다. 54세 때인 1933년 유숙원과 재혼하여 이듬해에 딸 영숙을 얻었으며, 1935년 첫 장편소설「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뒤 계속하여 불교의 혁신운동과 창씨 개명·학병 출정 반대 운동,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해방되기 전인 1944년 6월 29일만 65세에 자택인 성북동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생을 마쳤다. 김봉군외2(2007),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2. 역설적 표현
만해 미학의 핵심은 역설 역설이란 문장상의 모순을 바탕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수사법이다.
이다.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 문답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 어원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헤겔 철학에서, 동일률을 근본 원리로 하는 형식 논리와 달리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 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는 논리
은 만해의 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이 변증적인 세계 인식은 불교 사상에서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불교의 역설적 세계 인식은 만해의 삶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불교는 이 세계를 크게 세간과 출세간으로 나눈다. 세간은 현실적 인간들이 욕망을 가지고 사는 공간이고, 이에 비해 출세간은 현실적 욕망을 버리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출출세간은 출세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고 다시 현실적 인간들이 사는 세간으로 들어오는 공간이다. 만해야말로 출출세간의 삶을 살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극적인 삶은 만해의 시가 지닌 역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열쇠를 제공해준다. 만해에게 현실과 괴리된 초월 그리고 중생과 아무 관련 없는 선사의 삶이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 때문이다. 혈실과 초월, 부처와 중생, 어둠과 밝음 사이의 역설적 관계는 결국 한용운의 삶이자 시적 모티브라 할 수 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