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일제 식민지 시기 공산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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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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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제 식민지 시기 공산주의 운동
1. 왜 우리는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이야기하는가
최근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이 남한 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일제시기 좌익 활동가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정당과 정치ㆍ사회집단들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보수야당은 “그렇다면 좌익들의 범죄 또한 공평하게 철저히 조사하여 규명하라”라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쟁점이라는 사안을 넘어서 남한 근ㆍ현대사의 비극을 뚜렷히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 남한 사회의 지적 미성숙함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이제까지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학살과 범죄를 과연 남한 정부에서는 철저히 조사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철저하게 조사하였으면 초등학교 때부터 그 만행을 외우다시피 하였고 나아가 과장과 왜곡을 서슴치 않아 국가권력이 국민들에게 의식화시켰으며 좌익 운동가나 월북인사들의 가족과 친지들까지 감시와 협박의 굴레에 던져놓았던가. 상식적으로 식민지 시기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올바로 평가하고 그 공헌을 인정하는 작업들이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이렇게 상식적인 작업들이 왜 이루어져 그들이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이제야 시작될 조짐을 보이며, 또한 그마저도 순탄치 않은가. 이것은 그간 남한 사회에 고질병인 ‘레드 콤플렉스’의 재발작이며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시켰던 ‘북한’이라는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있음에 다름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북한 정권하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기 공산주의 운동’이다. 그리고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민족해방운동, 즉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착취와 억압을 제거하여 궁극적 인간해방을 이루려고 싸웠던 이들의 활동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남한 정권하에서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역사가 삭제ㆍ은폐가 되었다면 북한 정권 아래에서는 김일성의 역사로 변질ㆍ왜곡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남ㆍ북한 정권의 유지와 지지기반으로서 더렵혀진 조선 공산주의 운동이 아닌, 일제에 저항하고 노동자ㆍ농민의 해방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들의 투쟁을 올곧이 다루려고 한다. 특히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일제 시기의 민족해방운동을 분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해방이후 현재까지의 한국현대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공산주의 사상의 유입과 운동의 형성
① 러시아 혁명과 조선의 식민지 상황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시아에서도 중국을 비롯한 일본, 조선에까지 이러한 영향은 전파되었다. 식민지였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러시아 혁명의 여파를 민족해방의 커다란 무기로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초기에 1910년대 일본과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신지식인 계층에 의해서 도입되게 된다. 뿐만 아니라 1919년 3.1운동은 이러한 공산주의 사상에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흔히 3.1 운동이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의 배경 속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지만 1917년 10월의 러시아 혁명과 레닌의 ‘민족자결권테제’는 이에 앞서서 식민지 민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자.
“이미 군국주의적 야심을 포기하고 정의와 자유로 기초로 한 러시아는 신국가의 건설에 종사하는 중이며 …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한 민주주의 상에 선진국의 모범에 따라 신국가를 건설…” 『2.8 독립선언서』
“정의인도, 즉 평화의 신은 독일 인민들의 손을 빌어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함이니, 곡 전쟁 중의 독일혁명이 이것이다. 독일혁명은 사회당의 손에서 일어난 즉, 그 유래가 오래되고 또한 러시아의 자극을 받은 바 있다. 『조선독립의 서』한용운
“러시아 공산당은 서두에 적기를 내걸고 전제정치를 타도하여 민중에게 자유와 평등을 가져오고 제민족의 자유와 자결을 선포하였다. 과거에 극단적인 침략주의자가 극단적인 공화주의자로 바뀌었다. 이것은 세계개조의 최초의 신호탄이 되었다.” 『독립운동지혈사』 박은식
이와 같이 공산주의 사상은 조선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수입된 사상이다. 수용계기는 1910년대 말 러시아 혁명의 영향, 1차 대전 직후 고양된 국제혁명운동의 영향, 민족 자결주의론의 실체에 대한 자각 등의 국제적 조건 속에서 국내적으로는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로 말미암은 민족적계급적 모순의 첨예화, 31운동 이후 정치의식의 고양 등을 계기로 국내신문, 잡지 등의 언론매체를 통해 수용되었다. 동아일보에서도 1921년 무려 73회에 걸쳐 『니콜라스 레닌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표제하에 그의 일생, 활동, 볼세비키 혁명 등을 연재하였다.
뿐만 아니라 1919년 4월 전협 등은 대동단을 조직하고 3대 제목을 내걸면서 그 중 하나의 강령을 “공산주의를 철저하게 실행할 것”을 덧붙여 걸었다. 물론 대동단은 민족단체였지만 공산주의를 국내에서 맨 처음으로 운운한 단체이다. 그리고 1919년 10월에는 서울에서 20여명이 모여 ‘서울공산단체’를 처음으로 조직하였다. 이들은 조선노동공제회의 결성에 적극 참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1920년 3월 15일에는 서울에서 15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을 결성하기 위한 공산주의자 발기 소그룹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