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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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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虎叱」再考察
목차
Ⅰ. 서론
Ⅱ. 「호질」의 작자론
1. 연암 창작설
2. 중국인 원작자설
Ⅲ. 「호질」의 주제론
Ⅳ. 결론
Ⅰ. 서론
18세기 조선이 낳은 저명한 사실주의 작가 燕巖 朴趾源은 사상가로서나 문학가로서 우리 나라 고대 중세의 전 시기를 통하여도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연암의 작품 중 하나로 『熱河日記』의 「關內程史」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인「호질」은 뛰어난 작품성은 인정받았으나 여기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고전 단편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호질」이란 작품은 중요한 문학유산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한 상태이다. 특히 작자 문제의 주된 논의로, 연암 박지원이 창작하였다는 견해과 중국인이 원작자라는 견해 사이에서 논의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미흡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명확히 밝히기 위하여 먼저 「호질」을 연암의 창작설과 중국인의 원작설에 중점을 맞추고 또한 그에 따른 주제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Ⅱ. 「호질」의 작자론
우선 「호질」이 연암 자신이 말한 대로 자기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는 「관내정사」의 기록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관내정사」는 山海關 안으로부터 燕京에 이르기까지 11일 동안의 기록으로「射虎石記」라는 항목에 본편이 포함되어 있다. 無終山 모처의 燕昭왕의 사당이 있는 곳에 찾아가서 주인과 필담을 나눌 때, 벽에 한 편의 기문이 백로지에 빽빽하게 씌어져 격자에 걸려 있었다. 연암이 그 격자에 다가가서 한번 읽어 본 즉, 가히 절세의 기문이라, 연암이 누가 지은 글이냐고 물으니까 주인 沈由朋은 어떤 이가 지은 것인지 모른다고 하였고, 동행한 鄭進士가 또 연달아 혹시 주인이 지은 작품이 아니냐고 물어도 주인 자신은 글을 할 줄도 모른다 하고, 또한 지은 이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연유를 묻자 이 며칠 전에 州의 장날에 사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다음, 베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저녁에 다시 연암자신이 정진사와 함께 벽으로부터 내려간 격자를 보고 또 다시 심유붕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닌가하고 물어보지만 심은 밝은 촛불과 같이 거짓 없는 자기 마음을 가리키기도 하고 부처님을 섬기는 형편에 부질없는 거짓말은 삼가고 있다는 비유까지 써 가면서 작자가 자기 자신이 아님을 명백하고 있다.
그런 후 연암은 그 글의 필요성을 묻는 심유붕의 물음에 대해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 번 읽혀서 모두들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게 하려는 거요.” 하면서 정진사와 더불어 둘이서 나누어 베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것의 기록자체를 사실로 본다면 중국 어느 점포에서 가져왔다는 것이 사실이므로 연암의 창작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정진사의 베낀 부분에 誤字·落句가 많아 문맥이 닿지 않으므로 대략 연암의 뜻대로 고치고 보충하여 완성하였다고 하니,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작자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