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요한계시록의 비전 을 통한 3가지 반성

 1  서평 요한계시록의 비전 을 통한 3가지 반성-1
 2  서평 요한계시록의 비전 을 통한 3가지 반성-2
 3  서평 요한계시록의 비전 을 통한 3가지 반성-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평 요한계시록의 비전 을 통한 3가지 반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요한계시록의 비전]을 통한 3가지 반성
1. 나의 견해
책 제목만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과연 요한계시록이 새 시대를 향한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이 세상 속에 아직도 비전이 남아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 비전을 과연 오랜 옛날 기록되었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나는 철저히 요한계시록을 지나간 구닥다리 말씀으로만 치부하고 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서 있는 모습이 지금 내가 강남대학교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눈에 보이는 시간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동일하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는 무너져 가고, 점점 경제에 짓눌린 정치적 모습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나타나게 되고, 헌신은 헌신짝처럼 버리게 되었던 그 고난과 박해의 시절이 오늘 지금도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 것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비전]이라는 제목 아래 요한계시록과 현대 예배, 정치, 헌신이라는 소제목을 붙였던 것이라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곧 내 속에서 세 가지 반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의 예배는 나의 현대적 예배라고 하는 모습은 철저히 세상 적이라는 것이 처음이다. 나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닌 것이 되었다. 나에게 제자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저 멀리 버려두고 나는 나를 예배하거나, 교회를 예배하거나, 예배를 예배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마치 며칠 전 뉴스미션에 나온 기사처럼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고 고백했던 수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나는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제자도의 삶을 버리고 있었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착각하며 베드로후서에서 그토록 강하게 요청하고 있는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은 없는 삶이다. 그러니 나는 제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리스도인도 아닌 것이다. 불에 타 죽으면서 까지도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까지도 결코 예수를 놓치지 않고 살았던 1세기 믿음의 선배들의 예배는 지금 나에게 더 절실한 필요가 되어야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고 제자도의 삶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 예배가 나에게 시작되어야 한다. 역사의 주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제자의 삶을 더 확실히 해야 한다.
둘째는 바로 정치적 모습, 우상숭배이다. 경배의 경제학이라고 넬슨 크레이빌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언가 현실에서 보상받고 싶은 물질의 축복이며,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 무언가 새로운 우상에게 바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을 끌어들이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비단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나 역시도 우상 숭배에 빠져있었다. 황제에게 숭배하라고 했던 로마제국처럼, 일왕에게 참배하라고 했던 일본처럼, 오늘도 세상을 숭배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나는 이미 빠져있었다.
마지막으로 헌신이다. 나는 헌신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인내하며 더 인내하며 끝까지 이기며 인내하는 헌신에 대해 실패감에 빠져있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빠른 시간에 헌신에서 불순종으로 돌아서는 현실이 어찌 오늘날의 현실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황제의 박해에 굴복해서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로마에 대한 헌신으로 바꾸었던 그 누군가가 바로 오늘날의 나의 모습이다. 헌신은 더 이상 내 삶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무너졌고, 우상숭배는 넘쳐나고, 헌신을 잊어버린 나에게 오늘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그리고 그 공동체는 넬슨 크레이빌은, 박노식 교수님은 나에게 비전을 보여 주셨다. 다시 예배의 삶을 회복해야 할 것은 비유로 설명해 주신다.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주어질 선물을 위해 오직 하나님만을, 역사의 주인 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제자도의 삶을 살며 헌신할 것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리고 위로하시고 재촉하시고 나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신다. 바로 오늘의 내 삶에서부터 시작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하여 나는 예배, 정치, 헌신의 전혀 새로운 모습, 요한이 밧모섬에서 공동체에게 말해주고 있는 그 깊고 넓은 시각을 가지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이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어 내가 섬기는 교회와 가정과 이웃에 통로로 흘러가 그들도 예배, 정치, 헌신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기를 기도하며 힘쓰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분명 세상의 끝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보다는 오늘날 성도의 삶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은둔이 아닌 세계와의 접속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 어울리게 넬슨 크레이빌 목사님이 이 책을 서술하면서 원했던 예배와 제자도의 관점으로 돌아가 이 험난하게만 보이는 세상 속에서 다시금 빛을 비추고 썩어져가는 세상을 다시금 회복시킬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
2. 저자(넬슨 크레이빌)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21세기에 일어날 재앙을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속한 시대의 제국들을 말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로마가 멸망했던 것처럼 오늘의 제국도 그렇게 멸망할 것이란 사실입니다. 계시록은 우리가 어떤 권력에 승복해야 하는가를 강조합니다. 제국인가 아니면 예수님인가입니다.”
미국 메노나이트연합성경신학교(AMBS) 총장을 역임했던 넬슨 크레이빌은 지난 2008년 2일 서울 논현동 영동교회에서 열린 ‘한국재세례파센터 창립 6주년 기념예배’에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제국을 예배와 충성, 비폭력의 관점으로 풀어내 관심을 끌었다. 1세기의 정치적 종교적 풍자로서 요한계시록을 파악한 그는 우리는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새 예루살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강조했다. 특히 국가 권력이 조장하는 폭력 앞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한다고 역설해 마태복음 5∼7장에 나타나는 산상수훈을 삶으로 풀어낼 것을 주문했다. 또한 2008년 7월 29일 방한해 부산과 서울에서 강연회를 연 그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짐승, 곧 제국에 대한 이해를 역사적 상황으로 설명하면서 문자적 이해에 국한하고 있던 계시록 이해의 폭을 넓혔다. 요한계시록은 상징으로 가득하기에 그 의미를 찾아야 하며 거기엔 초대교회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넬슨 크레이빌 전 총장은 또한 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을 ‘현재진행 완료형’으로 봤다. 죽어서 가는 피안의 세계가 아닌 실제적 도래이자 임재라고 강조했다. 새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 나라, 곧 피조세계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곳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