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희망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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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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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희망의 인문학
내가 이 책을 선택하여 읽은 이유는 단순히 인문학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과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부터 문학 작품과 인문학 등의 학문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꼈으며 곧 있으면 사회에 나가서 사회인이 되기에 필요한 소양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잡는 순간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희망의 인문학은 현대 사회구조의 가장 큰 문제이자 언제나 있어 왔던 빈부의 격차가 빈곤층의 인문학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 빈곤층에게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보이는 빈곤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나 역시 이미 머리 속에 인문학에 대한 기초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미 정치적인 주체이며 가난에 대한 견해가 책에서 말하는 기득권 층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희망의 인문학이란 빈곤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면서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게 도와 주어 이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었다.
빈부의 격차는 이미 고대부터 사회가 생겨나고 경쟁의 개념이 싹트면서 시작 되었다. 서로 차지하려는 대상 즉,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누르면서 우위에 서려고 하다 보니 격차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격차가 인정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빈부가 세습되고 있으며 세습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와 부자들의 의식에 대해서이다. 빈곤층은 자연스럽게 빈곤의 노예가 되어 왜 빈곤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의문도 갖지 못한 채 훈련되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에 기회적 평등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정치적 개념을 전혀 갖지 못한 채 교육의 기회를 박탈 당하여 벗을 수 없는 빈곤의 굴레에 있는 것 조차 알지 못하여 생존의 욕구를 채우기 급급하여 다른 큰 문제를 알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무력과 힘을 착각하여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행사되는 무력에 포위되어 굴복 당한 채 살아간다. 무력의 무게는 발 밑에 깔린 유리잔처럼 빈민집단을 산산조각 내고 가족, 지역사회, 사회조직의 파편들을 무기력한 개인 생활로 몰아냄으로써 그들을 분열시킨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문학 교육에 대한 지배적인 생각은 인문학 교육은 인문학 교육에 적합한 학생들만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그리스의 노예관처럼 노예는 천성적으로 정치를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러하듯이 현대에도 교양 교육에 적합한 학생을 정의 내린 앨런 블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가난의 대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부자들과 비교해서 인문학을 공부할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엘리트주의자들이 심어놓은 편견 때문에 인문학을 공부할 기회를 차단 당했고 그 결과 정치적 삶에 이를 수 있는 하나의 효과적인 길을 봉쇄당한 것이다. 인문학을 계속 빈곤의 세습과 연관시키는 이유는 인문학은 정치적 개념의 성립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정치는 이상적인 이론을 늘어 놓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무시하여 몰락한 예는 역사적으로 많이 존재하며 그 예는 좌파와 우파의 운명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인문학을 제거해버린 좌파는 결국 몰락하여 한때 승리의 추억에 젖어있는 죽어버린 사상이 된 것을 들 수 있다.
인문학의 필요성과 그 결과를 입증하기 위해 클레멘트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 실험은 “최고의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은 곧 모든 이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따라서 가난 학생들을 선발 한 뒤에 최고의 교수진을 섭외해 그들을 가르치는 실험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철학, 예술, 문학, 역사, 논리학, 등의 전 영역에 걸쳐 그들을 가르쳤으며 그 목적은 대학 진학이나 다른데 있지 아니한 오직 인문학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빈곤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쳐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성장 시켜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데에 있다. 실제로 클레멘트 코스는 수강생에게 지적 수준을 높여 주었고 그들의 작문 실력과 분석 능력들을 키워 주었다. 그럼에도 클레멘트 코스에는 몇 가지 위험성과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 위험성으로는 의미 없는 학술적 유행을 좆게 될 수 있다는 것이며 학생들을 선동하려는 욕구이다. 또한 문제점으로는 수강생들이 수강으로 얻은 혜택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속성이 없는 인문학 수강은 죽은 지식이 될 것이며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는 이런 문제점과 위험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결책을 마련 중이다.
나는 이 실험 역시 과거의 부자들이 빈곤층에 보였던 ‘도덕적인 선행’ 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결과적으로는 같은 비율의 빈곤층을 낳을 것이고 이러한 시도도 임시 방편 일 뿐 현대 사회의 빈곤의 세습 및 격차의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무한의 경쟁 사회에서 승자가 생기면 패자가 존재하며 이들의 승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반드시 다른 패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에게 인문학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현재 처한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만 또한 그들이 알게 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큰 무력에 포위되어 나오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권력이 싸움이 대부분 부자들 사이에서 이루어 졌지만 빈민이 부자를 이긴 상황에서도 빈곤의 세습은 이루어졌다. 단지 그 구성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또한 대부분의 수강생이 수강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인문학의 수업이 그들을 모두 진정한 시민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서 조차 계급을 나누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와 사람들의 관점이 과거에 머무르는 한 해결책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클레멘트 코스를 실행하여 현재의 불합리함을 바꾸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이상적인 사회로의 노력이 진정 빈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켜 성찰의 능력을 가진, 정치적 능력을 가진 시민으로 바꾸어 그들이 기회의 평등을 갖고, 합법적인 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나 역시 기존에 가진 빈민에 대한 편협하고 고정적인 틀을 변화시키고 사회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빈민으로 존재하는 이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또 나아가 우리가 흔히 누리는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문학을 통해 현재 확립된 사회와 협상을 통하여 더 나은 사회로 진화하여 모두가 같은 기회를 갖고 노력만큼의 대가를 얻는 공정한, ‘이상적인’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