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베냐민을 통해 바라본 현대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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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미학
베냐민을 통해 바라본 현대 미학

진중권은 자신의 책 서문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책을 쓸 때마다 형식실험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1 스스로 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집필 과정에서의 인식적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왜냐하면 자신이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현대미학이란 이전 시대인 근대의 이념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주로 비판하고 해체시키는 측면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는 근대 철학이 열렬히 추구했던 지식의 보편성과 확실성, 단일성, 규칙성, 형식주의 등의 성격에 대한 비판이 주(主)를 이루는데, ‘책’이라는 이미 짜여 진 형식에 그러한 상반되는 내용을 보기 좋게 담아내는 일은 그 자체로 굉장히 역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작업을 성실히 수행해냈고, 서문에서는 현대 미학의 특징에 대해 총괄적으로 서술한다. 먼저 현대 예술은 철학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현대 예술과 관련한 전시회를 가본다면, 작품 자체가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낄 것이며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현대는 근대가 쌓아올린 예술을 해체시키고 부숴버리며 그러한 현실을 고발하는 행위에 집중하고 있기에, 사실 어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 일은 명쾌하게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왜 새롭게 정의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부정(不定)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며, 긍정의 방식을 통해 현대 예술이 스스로를 정의한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원리에 의해 아포리아aporia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예술은 자기 자신이 예술이 되는 근거를 스스로 제시함에 있어서 취하는 방식은 직접적으로 보여주기가 아닌 ‘간접적으로 드러내기allegory’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과 철학이 상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현대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려 노력한다.
또 다른 특징은 작품을 감상하는 주체가 단순히 예술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상자가 주체적으로 그 작품이 예술이 되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주장했던 ‘미적 주체성의 해체’ 혹은 ‘저자의 죽음’을 뜻한다. 예술가가 더 이상 예술의 비평에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비평은 더 이상 작품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 자체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감상자가 작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철학적 반성능력이 요구된다. 이때의 철학적 반성능력은 자연스레 예술가 자신이 속한 시대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지평 안에서 정립된다. 이러한 주장은 근대 철학자인 헤겔이 “철학은 시대의 자식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든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짓을 시작한다”, 또는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하는 것이 철학이다”2 등 철학은 시대에 철저히 속한다고 주장한 바와 일맥상통하지만, 그 차이가 있다면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탈피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역동성과 의지다. 또한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지평을 경험하고 융합함으로써 또 다시 그것이 새로운 재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어 더욱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다고 믿는 차이에 대한 긍정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우선 언어에 대한 연구는 현대철학의 가장 주요한 분야였다. 중세에는 언어에 신성이 깃든다고 믿었다. 성서에 따르면, 신은 ‘말’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세상을 창조했다. 신의 ‘말함sprechen을 통해 사물은 창조되는 것이다. 성서속의 아담처럼 사물의 본질이 고스란히 인간의 음성을 통해 구현되기에 사물과 이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사성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는 현대에 이르러 소쉬르에 의해 철저히 비판받는다. 소쉬르는 이름을 사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무연적(無緣的) 기호로 보았으며, 언어의 자의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언어가 정립되는 그 시초를 살펴보면 그럴지 모르나,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게 더욱 호감을 느끼듯, 우리가 언어를 현실 세계에서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 이름에 의미를 담아낸다. 베냐민은 언어를 신을 향한 인간의 정신적 본질의 구현이라 말했다. 또한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durch가 아니라 언어 ‘속에서in 제 정신적 본질을 전달한다고 말했다.3 또한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미메시스mimesis적이라 표현했는데, 이는 단순히 대상에 대한 모방imitatio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맞춰 자신의 몸 색깔을 직접 바꾸는 카멜레온과 같은 존재론적 닮기를 뜻한다.4
이러한 소쉬르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제 언어를 운용하는 주체는 신에서 인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또한 언어는 사물의 본질을 담아내지 못하고 한낱 전달수단으로 전락한다. ‘추상’이라는 개념이 언어에 도입되고, 이러한 개념은 개별자들의 고유성을 지워버리게 된다. 이는 획일적 개념에 모든 개별자를 집어넣는 감옥과 같다. 이것은 베냐민은 타락Sundenfall이라 칭했으며, 타락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타락을 상실과 같은 결정태로 볼 필요는 없다. 이것은 영원히 언어가 상실된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현시되는 양상이 변화하는 한 모습이나 형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베냐민의 주장에 따르면, 언어는 각각의 개별적 언어 그 자체로서는 실현될 수 없고, 각 언어 상호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총체성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언어 그 자체에 내재하는 의도 우리는 이를 순수한 언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속에서만 찾아질 수 있다.5 이는 원문이 번역의 과정을 거쳐 의미의 손실이나 왜곡보다도 오히려 더 높고 순수한 언어로 상승함을 뜻한다. 즉, 원작(원문)과 복제들(번역) 사이의 위계가 무너진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예술적 개념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언어 상호간의 친화성Verwandtschaft이고 다른 하나는 유사성Ahnlichkeit이다. 이 두 개념을 프랑스 철학자들은 유사ressemblance와 상사similitude라 부르는데, 전자의 관계에서는 복제가 원본을 닮음으로써 진리가 성립하지만, 후자의 관계에서는 진리는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난 복제들의 놀이 속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된다.6 베냐민이 차이의 철학자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리가 깃드는 곳은 ‘번역이 원문을 얼마나 닮을 수 있느냐’에 있지 않고 바로 그 ‘차이’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