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한민국 3편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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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한민국史(3편)를 읽고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사’. 사실 처음부터 이 책을 고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책을 찾으러 역사 섹션에 들어갔는데, 찾고자 했던 책보다 오히려 이 책, ‘대한민국사’가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사라는 제목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 전반을 다룰 것 같아 책이 두꺼울 것 같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그다지 두껍지 않은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3권을 꺼내들었는데, 책 표지에 자리한 사람들의 손때가 느껴지는 빛바랜 붉은색의 ‘史’가 마음을 확 끌어당겼다. 빛바랜 붉은색에서 우리 역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한이 느껴졌다.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가 아니라 철저히 고발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다.
‘한겨레 21’에 연재되던 글이라는 몇 자 되지 않는 소개글에서 저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주제에 관한 책의 방향을 확실히 예상할 수 있었다. 기대와 다르지 않았다. 새삼 놀라웠던 것은, 한겨레라는 신문사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단번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확고하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네 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관심에 힘입어 한 권씩 추가적으로 출판된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추가적으로 출판될 정도로 사람들에게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현실의 문제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매섭게 꼬집는 작가의 ‘통쾌함’ 때문인 것 같다. 언뜻 봐서는 무거워 보이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을 저자는 결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중심이 되는 사건들을 심도 있게 다루되,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꼭 비판을 가하고 넘어간다. 주요 언론들이 은근슬쩍 은폐하고 넘어가는 부분들마다 일침을 가하는 느낌이랄까.
책은 박정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어릴 적 아빠께서 집에 있던 양주 ‘CHIVAS REGAL을 꺼내실 때마다 하시던 이야기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술을 먹다가 부하에게 총살을 당해 죽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충실했던 부하로부터 총의 겨눔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 믿을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자세히 배우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였다. 하지만 보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부마항쟁의 처리를 두고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점, 제2인자였던 중앙정보부장의 권력이 차츰 비서실장에게 옮겨가고 있었다는 분위기 정도가 다였다. 그런 10ㆍ26사태에 박정희의 용인술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의 측근 몇몇에게 권한을 위임해주고, 그들을 서로 경쟁시키며 감시하게 하는 것.’ 용인술의 천재라 불린다는 박정희의 용인술에 대해 작가는, 정보와 공작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용인술의 천재라는 말은 용인술이 마치 대단한, 그래서 본받을만한 일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누구보다 아끼고 친밀한 관계인 척 위선을 부리고 속뜻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서로를 경쟁하도록 한 의도는, 사람과의 관계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는 대표적인 예로 보인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는 사람이 이런 피상적인 인간관계의 천재였다는 것이 안타깝다. 작가의 말대로 공작에 불과한, 비린내 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용인술이라는 단어에 재주를 뜻하는 ‘술’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타당한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이 책에는 근현대사 시간에 채 알지 못했던 역사적인 사실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은 하나같이 소름 끼치는 일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박정희가 신라의 화백 제도의 만장일치를 엉뚱하게 해석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적용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다. 본래의 취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만 재활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을, 박정희 정부가 얼마나 역사에서 배워온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을 지 상상이 됐다. ‘한국적 민족주의’라는 미명 아래서 말이다.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짜라는 말을 할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명백히 잘못을 인정해야 할 일을 한 국가 내에서도 가짜라는 의문이 든다며 망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있다니, 수십 년 넘게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고 끝을 내지 못하는 위안부의 문제가 단지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집필하는데 있어 편향성 시비 논란으로 교과서 검정위원 명단이 공개되고, 끝내 사퇴했다는 이야기도 허탈할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배웠던 교과서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 다음 년도에 수정된다는 말은 들었었는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김영삼과 김대중 정부의 성과가 달랐기에 부각시키는 면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조적인 기술을 이유로 하여 그것을 논란거리로 대서특필을 하다니, 우리가 배운 근현대사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궁금해졌다. 정치인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만 배웠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과연 어느만큼의 진실일지 두려워졌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장일단, 하나의 장점이 있으면 하나의 단점도 있는 법이다. 한겨레21에 연재하던 글이라서 지면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책은 특정 사건과 인물이 지극히 작가의 관점으로만 서술되어 있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양면적인 해석을 제공하고 작가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쪽 면에서밖에 볼 수 없다. 친일파 처단, 과거 청산과 같이 누가 봐도 답이 명확한 문제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완전하지 않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만큼, 수구세력이든 보수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어느 한 집단만이 항상 옳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수구세력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판할 만하다는 입장이 아니라, 옳지 않다는 색안경 아래 그 색안경에 비치는 모습들만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어느 정도 생각을 해 본 문제는, 작가의 편중된 의견이 있어도 내 입장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사건들은 작가의 말을 얼마만큼 믿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역사 공부를 하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건도 접하고, 작가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키워질 것 같았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 책을 보는 것은 자칫 편중된 시선으로만 역사를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지식은 비단 놀라웠다. 작가는 현재에서 과거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현재에서 또 미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역사는 신기할 정도로 반복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같은 제도나 같은 용어 아래에서도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탄핵’에 관련된 부분에서였다. 우리나라는 두 번의 탄핵 사태를 겪었다. 하나는 1925년의 이승만 대통령의 탄핵이고, 다른 하나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었다. 16대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내가 정치인들의 공약에 관심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부모님께 노무현 아저씨를 찍으라고 말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푸근해 보이는 인상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믿고 있던 대통령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들이 연일 언론에 비쳤다. 대통령이 국민의 세금으로 쌍꺼풀 수술을 한다느니, 코 수술을 한다느니, 급기야는 주름살을 펴는 수술을 받았다는 말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그 때는 사실인 줄만 알았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은 무너져 버렸다. 수구언론에, 수구 정치인들의 계략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정치인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을 조작해나갔고, 끝내 탄핵시켜버렸다. 작가는 말한다. 이승만의 경우는 탄핵 사유가 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엄중한 일을 질질 끌다가 결국 임시정부를 빈사 상태에 빠뜨린 다음에야 겨우 탄핵안이 처리된 것인 반면, 2004년의 사태는 도무지 탄핵거리가 되지 않는 일을 너무나 빨리 무리하게 처리했다고. 돌이켜보면 헌법재판소에서 끝내 통과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치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국민에 대한 양심을 저버린 일부 정치인들에 온 국민이 놀아날 뻔 했다. 진작 탄핵을 당해야 하는 인물은 최대한의 기간까지 버티고 난 뒤에야 끝을 맺고, 탄핵 당할 이유가 되지 않는 인물은 하마터면 탄핵 당할 뻔한, ‘탄핵’이라는 같은 용어 아래 아이러니한 두 역사적 사실이 공존하고 있었다. 탄핵 사건을 돌이켜보며 누가 봐도 옳은 ‘정의’라는 것보다도 결국은 권력을 잡은, 정치적 입김을 가진 자들에 의해 역사가 결정되는 것 같아 언짢았다. 또 조금 시간이 흐른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동을 돌아보니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수구언론의 활약이 놀랍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언론만을 믿었던 그 때의 나와 순진했던 사람들이 안타깝다. 지금 역시도 우리는 언론이 어느 만큼의 진실을 전하고 있는지 모른다. 비판적 의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김일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김일성에게서 한국전쟁을 일으킨 독재자라는 측면만 봐왔고, 부각시켜왔다. 내가 김일성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근현대사를 배우면서부터였는데, 근현대사 선생님께서는 우파보다는 좌파적인 성향을 갖고 계셨다. 그래서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보다 깊게 배울 수 있었다. 선생님은 김원봉, 여운형, 박헌영과 같은 인물을 높이 평가하셨다. 보천보 전투를 배우며, 나는 우리 역사에서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낯설었다. 남한에서 비판적인 시선만 받는 그가 민족을 위해 싸우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기반이 없던 그가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되고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된 것은 무력도 무력이지만, 결국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독재로 나라를 쥐어잡고, 권력을 세습하는 부분은 비판할 만하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부분은 인정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