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영화 26년을 보고(국가폭력과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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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화 ‘26년’을 보고
대한민국 현대사는 그 어느 나라보다 힘든 길을 걸어왔다.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에 정착하기까지 수없이 반복된 국가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투쟁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3대 국민투쟁이라 하면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꼽는다. 그 중 가장 역사적으로 가장 큰 사건이고 한국 현대사 최고의 사건은 단연코 1980년에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게 살해 당한다. 이 전에 박정희는 1972년부터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일어났지만 우리나라최악의 민주주의며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큰 오점으로 꼽히는 유신 체제를 지속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이제 독재는 끝났다고 환호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과 노태우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화는 다시 지연되었다. 이와 같이 민주화가 지연되자 광주 시내의 대학생들은 도청으로 진출해 성토대회를 가진되 횃불시위를 감행한다. 이에 군부중권이 ‘5.17 비상계엄확대조치’를 펼쳐 전남대생들의 학교 출입하고 교문 앞에서 무장 공수단과 충돌이 일어 희생자가 발생하자 도심으로 시위가 확산 되었다. 국가는 공수부대를 파견하고 무자비하게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다. 이 소식을 들은 광주 다른 역의 시민과 학생들도 분노하여 경찰과 대치했으나 공수대원들에 의해 광주 시내 곳곳에서 잔혹하게 유혈진압 당했다. 이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지만 당시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일명 신군부 세력이 무력으로 권력 장악을 기도하는 과정이었다. 이 때 이 광주민주화운동은 제 5공화국 정권의 도덕성과 정통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겨 80년대 반정부투쟁 및 민주화운동의 핵심적 쟁점이 되었다. 또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일반민중이 변혁 주체세력이라고 인식되는 확고한 계기가 되는 결코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었던 그런 각성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너무나도 큰 사건이다.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26년’이다. 사실 ‘26년’은 강풀이라는 웹툰 작가가 그린 웹툰을 영화로 만든 것인데 그 소재 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이며 자극적이기 때문에 개봉 전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소재 자체가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있고 극 중 ‘전두환 대통령’이라는 생존해있는 전 대통령이 출현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디에서도 협찬, 스폰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제작비가 부족하여 영화가 제작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나서서 제작비를 기부하여 결국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이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영화이고 이 영화의 웹툰 원작을 보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강풀의 다른 작품들은 읽어봤고 또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굉장한 기대를 않고 영화를 봤다. 나는 고등학교 때 사회탐구 과목을 선택할 때에도, 국사와 근현대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나름 또래 중에서는 그래도 역사에 대해 꽤나 알고 있고 역사에 관심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텍스트와 교과서로 배운 역사는 그닥 큰 의미는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교과서로 딱딱한 텍스트로만 배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좀 더 가슴으로 느껴보려고 영화를 본 것도 있었다. ‘26년’에서 제목 26년의 의미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 이후 정확히 26년 후 당시 살해된 광주 시민들의 가족들이 각자 생활을 이어가다고 복수심 하난로 뭉쳐서 아직도 살아있는 전 대통령인 전두환 대통령, 영화에서는 ‘그 사람’으로 등장하는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2006년 광주의 유명 조직인 수호파의 중간보스인 ‘곽진배’는 어렸을 적에 광주 민주화 운동 도중에 아버지가 죽는다. 남편을 잃은 진배의 엄마는 그날 그 사건 이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TV에서 그 사람의 모습만 봐도 부들부들 떨며 공포감을 느낀다. 아들 진배가 전역을 하는 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입은 군복을 보고 순간 그날의 공포감이 떠올라 정신을 잃고 그의 아들의 얼굴에 칼을 휘둘러 흉터를 남긴다. 자신의 아들임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엄마를 보고 진배는 눈물을 흘리며 얼굴의 흉터보다 더 큰 마음의 흉터를 얻고 살아간다. 현 국가대표 사격수인 ‘심미진’은 아기였을 때 엄마에게 업혀있었다. 미진을 업고 있던 엄마의 이마에 총알이 관통하고 그대로 즉사한다.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그 사람’에 대한 분노만 속에 담아 놓은채 술에 절어서 살고 결국 어느 날 ‘그 사람’의 집앞에서 분신 자살한다. 서대문 소속 경찰인 ‘권정혁’은 1980년 그 날 어렸던 그는 누나를 따라 사람들이 많은 광장에 구경을 나간다. 군인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찰나에 총성이 일자 놀라서 도망친다. 그는 살았지만 사랑하는 그의 누나를 잃고 만다. 영화에서는 이 과거 당시 광주화민주운동 중에 사람들이 사살당하는 모습을 현실의 모습이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잔혹한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니까 뭔가 실제로 표현할 때보다 더 와닿고 그 공포가 더 잘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각자 가족이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그 사람’에 의해 사살당해서 마음 속에 상처와 ‘그 사람’에 대한 분노를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 세사람을 보안업체 대기업 회장인 ‘김갑세’와 그의 비서 ‘김주안’이 소집한다. ‘김갑세’는 당시 군인이었으며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던 군인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것이 잘못됨을 반성하고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그 세명을 소집한 것이다. 세 명은 처음에 그가 당시 광주시민들을 죽인 군인이였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나 그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끼고 그와 힘을 합쳐서 그의 계획에 따라 ‘그 사람’을 단죄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들은 각자 경찰, 사격선수, 조직 두목, 보안업체 회장인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 치밀하게 계획을 완성해 나간다. 처음에 1차적으로, 진배가 ‘그 사람’의 집 앞인 연희동으로 가서 무력도발을 해 연희동을 자극시킨다. 그 다음 2차적으로, 미진은 홀로 서대문 사거리에서 ‘그 사람’의 차량에 뛰어들어 사격을 가한다. 성고에 거의 근접했지만 마지막 한발을 남겨두고 도리어 총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큰 부상을 입고 진배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다. 그 후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는데, ‘김갑세’가 ‘그 사람’의 비서실장을 상대로 로비에 성공해서 보안경호 관련 ‘그 사람’과 단독 면담 날짜를 잡는다. 그 날은 2006년 8월 15일, 정확히 그 날 이후 26년이 지난 후였다. 미진은 저격 위치를 확보하고 경찰 병력을 저지하기 위해 진배 일행이 나서고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거사를 준비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정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보는 내내 계속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현실도 이와 같지만, ‘그 사람’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뻔뻔함이다. 당시 희생된 광주 시민들은 ‘그 사람’에게 어떤 물질적인 것들이나, ‘그 사람’의 죽음, 처형 이런 것을들 바랬던게 아니다. 광주 시민들은 단지 ‘그 사람’의 사과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 뿐이다. 영화 중 미진의 “우린 그 사람한테 사과할 기회, 충분히 준 것 같은데”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 1980년 이후로 26년 동안 광주 시민은 ‘그 사람’에게 사과 한마디만 하라고 계속 요구해 왔고 기회도 계속 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뻔뻔스러운 태도로 과거의 일은 더 이상 들추지 말자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그들의 부탁을 묵살하였다. 그런 그의 악랄한 뻔뻔함이 영화에 너무도 잘 표현되어있어서 영화를 보던 도중 나도 모르게 울컥하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광주시민들의 목숨을 건 노력도 물거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에 분노와 눈물이 차올랐다.
영화 ‘26년’은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과 여운을 남겼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보통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데 ‘26년’이 끝난 뒤에는 나올 수 가 없었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서 스크린을 응시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 영화의 제작비를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죽 올라가는데 다음에는 나도 저런 것에 참여하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고 사람들에게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텍스트, 교과서로 배우는 것보다 영화 ‘26년’을 본 뒤에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나에게 가슴으로 다가 왔다. 앞으로도 역사를 머리로 배우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며 우리 사회가 지난 역사를 거울 삼아 더 진보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