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노 의 기호학적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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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영화의 이해를 듣고 나서부터 영화관에 가는 일이 고민스러워졌다. 영화를 볼 때 있는 그대로 스크린을 응시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생각하며 영화를 분석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심오하게 팔짱을 끼고 영화평론가처럼 본다는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배운 것들을 종합해가며 머리를 굴리는 일이 많아 졌다.
기호학을 프린트 상으로 배울 때만 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설명을 곁들여 피아노를 보고 난 후부터는 영화 속의 기호가 눈에 차기 시작했다.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영화 속 요소가 그 나름대로의 하나하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니 영화가 더 어려워지고 그런 기호들을 배치해놓은 감독님이 존경스러워졌다.
피아노에는 큰 기호가 등장한다. 눈에도 보이고 누구나 공감하고 교수님께서도 여러 번 지적해 주셨던 파도에 대한 의미다. 파도는 줄거리의 흐름에 따라 에이다의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큰 기호이다. 에이다가 처음 스튜어트를 만나기 위해 내려진 바다에서도 파도는 거침없이 몰아친다. 에이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이 짐작된다. 모래사장에 내려진 에이다의 짐들은 널찍이 떨어져있다. 뉴질랜드의 섬에 도착한 에이다의 마음이 이처럼 모아지지 않고 심난하지 않을까.
심난한 마음을 달래보려 에이다는 작은 나무틈새로 피아노를 쳐보지만 금세 파도가 친다. 에이다의 유일한 표현 수단인 피아노마저도 에이다의 마음처럼 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스튜어트가 바닷가의 에이다를 데리러 오고 원주민들과 숲을 건너 집으로 가려는 장면에서 그들이 발을 딛는 곳은 물이 질퍽한 진흙이다. 영화에는 건조한 마른 땅보다는 습기가 가득한 진흙땅이 나오는데, 에이다가 처한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등장하여 진흙길을 걷는 에이다의 앞날에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
도착한 당장, 에이다는 제대로 된 드레스를 갖추지도 못하고 드레스를 진흙길에 끌며 비가 오는 악조건 속에서 스튜어트와 결혼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 돌아온 후에 드레스를 거침없이 벗어버리는데, 이 둘의 결혼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 예상되는 기호이다. 드레스의 레이스는 에이다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요소는 아닐까.
비오는 창 앞에서 에이다는 자신의 유일한 표현수단인 피아노를 생각하고, 번개까지 치는 바닷가 한 가운데 놓인 피아노는 에이다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닷가에 가 피아노를 찾으려 베인스에게 가던 도중 나무판자 길이 끊기자 에이다는 판자를 놓아 길을 만드는데 판자는 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에이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라앉는다. 에이다가 스스로 길을 개척하려고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고 걸림돌에 봉착하고 있다.
베인스를 따라 바닷가로 온 에이다가 피아노를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파도의 움직임이 처음처럼 격하지 않고 부드럽다. 표현 수단을 찾은 에이다의 평온한 마음을 보여준다. 날이 어두워지고 돌아가는 에이다의 발자국을 베인스가 따른다. 에이다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심적 동요가 드러나는 듯하다.
스튜어트가 에이다의 이상행동을 숙모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숙모는 부채를 방정맞게 흔들어대고 커피를 떨리는 손으로 저어 마신다. 숙모와 스튜어트의 긴장된 행동은 가족의 화합에 에이다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탁자에 새겨둔 마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