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 사이를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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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사와 학생 사이를 읽고나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를 읽고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교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가?
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는 다른 책들처럼 진부하고 딱딱한 내용의 이론들이 나열돼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 책과는 달리 수업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을 예로 싣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제 수업 현장에서는 교사들의 ‘따뜻함, 인내심, 상냥함’ 만으로는 교실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가르침에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교사에게는 바람직한 인격(인성), 학생에 대한 애정, 학생과 교사와의 신뢰감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지, 가르치는데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떤 교사가 유능한 교사인지, 어떤 교사가 진정으로 학생을 위한 교사인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교사가 교육을 함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각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사는 매우 대단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학생의 감정에 공감하며,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모욕을 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며 학부모나 교장, 교감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교사는 정말 보통 사람 이상의 능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도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 학생에게 감화를 주는 것은 교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교사가 가진 어떤 인간적인 매력이나 능력에 이끌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 선생님들이 좋았던 것은 그 선생님들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다. 욕을 하거나, 심한 말을 하거나, 체벌을 했던 선생님이 더 좋은 경우도 있었다.
책에는 ‘나는’이라는 메시지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나와 있는데 그것은 언어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상황이 적절치 않아서 그런지 교육에는 맞지 않아 보인다. “난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라는 말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일화가 나와 있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교실에서 이렇게 말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라든가 ‘짜증나.’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오히려 “교실이 너무 시끄럽잖니, 조용히 하자 얘들아.”라는 청유형의 표현이 학생들에게는 훨씬 더 좋은 표현이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어떤 행동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고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지 교사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어떤 행동이 나쁘다는 것은 교사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는 주관적인 이유가 아니라 다른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어야 한다.
아이의 노력과 성취, 그것에 대한 생각을 사실대로 말해주는 칭찬은 물론 좋은 것이고, 인격이나 성격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인격이나 성격에 대한 칭찬이 아이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인격이나 성격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도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느릿느릿한 아이에게는 느긋한 성격이 좋은 점을 이야기해 주면서 또한 고쳐야 할 점을 함께 이야기하며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고치도록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결국엔 교사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책에서 보면 처벌을 하게 되면 아이의 분노를 자극하여 교육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 나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특히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시기에 놓여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 잘못 중에는 교사의 따뜻한 말과 관용으로 바로잡아질 것이 있는 한편 질책과 벌이 필요한 것도 있다.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학생을 혼내고 벌을 준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자신보다 힘없는 학생의 돈을 빼앗는다거나 하는 잘못을 하는 학생을 따뜻한 말과 관용으로 바로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때와 장소와 상황을 가린 처벌이라면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는 체벌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잘못을 하면 맞거나 벌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생각하면 학생을 이해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보다 그 잘못에 따라 어느 정도 처벌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의 학생 수가 40명이 넘었었다. 교사 한 사람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학생 개개인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겠는가? 이런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감화도 필요하지만 잘못을 했을 때는 엄격한 처벌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의 갈등에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책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은 아주 많이 공감이 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교사와 싸움을 벌이거나 심지어 교사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도 학부모가 학교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이 학교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시키는 특별반에 열성이었고, 고3 때는 어느 학부모가 교장실에 직접 전화를 해서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시켜야지 왜 체육수업 같은 걸 하냐.”며 따져서 수행평가를 할 때가 아니면 운동장에 나간 적도 없었던 적도 있었다. 학교의 일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학교에 큰 문제가 있다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부모는 그저 집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도움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 나오는 숙제 부분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생의 숙제는 “엄마 숙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만큼 초등학생들은 숙제를 하는 데 부모에게 많이 의지한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대로 숙제는 학습을 위해 학생 자신에게 부여된 일이므로 부모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한다. 중학생 정도 되면 부모가 숙제를 도와줄 일이 거의 없다. 이때부터 숙제는 온전히 자신의 일이 된다. 이때 학생에게 주어진 숙제는 학습할 과목의 특성에 맞는 형식으로, 또 그 과목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글씨 연습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빽빽하게 글씨를 쓰는 숙제라든가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