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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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평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 독서 보고서 -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막 1:15 -
얼마 전에 이상성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가 저술한 “추락하는 한국 교회”(인물과 사상사 출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한국 개신교회를 신학, 선교, 윤리 등 여러 주제로 비평하며, 근본주의 신학, 목회자의 비윤리적 행위, 보수화된 교회와 신도, 안하 무 인적 선교 등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또한 다양한 문화의 배제, 여성과 소수자 차별, 교회 세습, 타 종교와의 갈등 조장의 문제 등을 지적한다. 한국 개신교회가 근본주의적인 폐쇄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그렇다. 지금 한국 교회는 어쩌면 해답 없는 몸살을 앓고 있다. 언제 이 몸살이 끝날지 모르지만 목회자가 될 나로서 이 문제를 안고가야 되는 것이 현실이다. 교수님께서 독서 보고서로 채택해주신 책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손규태 지음 이 어쩌면 현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에 약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손규태 교수님은 현재 성공회 대학교 명예 교수이시며, 한신대학교 동문이시다. 또한 독일 하이델바르크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교수님께서 독일 유학을 다녀 온 후 집필한 것으로 2010년에 초판 되었다. 즉,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집필된 것으로서 현 한국 개신교의 문제를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그는 오늘날 제기되는 세계화의 제반 문제들과 그리스도교의 책임성, 한국 신학적 현실, 한국 교회의 신뢰성 상실과 관련한 문제들을 그리스도교 사회윤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며, 특히 개신교가 역사적으로 서구 자본주의와 더불어 어떻게 세계화를 추동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공공성을 상실함으로써 어떻게 그 책임성을 망각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초래된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적 세계경제 체제하에서 한국 교회의 신학적 사고와 실천의 왜곡과 일탈로 생겨난 제반 모순들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저자는 모색하고 있다.
1장 서론부터 시작하여 10장 공공성 신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라는 부록까지 손규태 교수는 적나라하게 현 개신교와 공공성의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일단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많은 논란과 의견이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기독교적 이해에 따르면 하나님이 장차 이룩하고 완성하실 모든 것, 즉 그의 나라와 통치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수 측 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현재의 지상에 존재하는 나라와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순수한 영적인 것으로 장차 어느 땐가 나타날 초역사적 실체로 이해한다.
공공성이란? 사전적 용어로는 “뭔가 공개된 것, 사실적으로 알려진 것, 혹은 어떤 경우에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것, 널리 알려진 것의 속성 혹은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 안에 있는 영역을 말한다.” 그러나 참된 공공성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과거 봉건주의 시대나 절대군주 체제에서 신분적 우선권이나 특권, 경제적 시장적 독점을 지양하고, 모든 시민의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열린 공간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 할 수 있는 삶의 모델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와 자격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위의 두 가지(진정한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모두를 잃어버린 것 같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188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처음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 선교사들은 주로 미국 선교사들이었으며, 이들은 대체로 조선에 들어올 때 의사, 교사 등의 직업을 가지고 들어왔으며, 정통주의 혹은 근본주의 성향을 갖고 있었고, 감리교회의 선교사들은 경건주의 혹은 부흥회적 신학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정통주의적 교조주의나 경건주의적 부흥회 운동만을 강조하기에 당시 조선은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들이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그래서 이들 선교사들은 조선을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자 먼저 병원 ex)세브란스 병원 을 짓고, 학교 ex)이화여대, 고아원 등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은 선교사들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어느덧 그들의 나라와 종교까지도 존경하게 되었다. 특히 일제 치하에 있으면서 조선인들은 무엇인가 의지하고 믿을만한 대상을 찾고 있었다. 이는 그동안 자신들이 믿고 의지했던 토종 무속이나 불교, 유교와는 다른 것이었다. 기독교는 이들과 다르게 보여 지는 실천적인 측면(사회복지)이 강했고,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을 믿음으로 더 나은 세계를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것의 결과로 1907년 평양 대 부흥회가 열리는데, 이 사건은 집단적, 초 일상적, 단기적 체험이었다. 이 사건에서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게 되었는데, 어쩌면 그 눈물이 현 한국 개신교회의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하여 개신교의 보수적 신앙이 뿌리박히게 되었고, 개인의 회심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즉, 민족적 의식을 가진 진보적 신앙을 내세우며 선교를 했던 선교사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탈 정치적 신앙유형으로 전개하게 된다.
평양 대 부흥회가 있은 후 조선은 일제 치하를 겪고, 같은 핏줄끼리 싸우는 한국 전쟁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의한 군사 독재 정권을 겪게 된다. 이후 한국은 계속하여 민주주의를 갈망하였고, 이를 토대로 그리스도인들은 제반 선교운동,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 그리고 통일 운동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식민지, 전쟁, 그리고 군사 독재까지 모든 것을 겪게 되었다. 즉,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인들에게 무엇인가 밝은 미래와 희망을 꿈꾸었는데, 이것이 현 한국 교회를 성장시킨 이유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