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의 사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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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유의 사설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유의 사설을 읽고...○
사실, 이글은 한두번 읽고는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아, 읽고 또 읽으면서 천천히 감상을 해보았다. 한유가 말하는 스승과 제자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먼저 道를 아는 사람이 누구에게든지 스승이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에게서 누구든지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유가 이 글을 쓰게 된 시대만 해도 분명 유가사상이 바탕이 된 사회였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당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사는 곳은 다 같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은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나 사대부들 즉,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진 것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스승을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마도 그것은 자존심을 무척이나 상하게 하는 것이리라....그래서 한유는 이것을 비판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현대 시대에서 비유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부모님들에 대한 자녀교육문제를 들 수 있다. 사설의 내용에도 나오는 것으로 부모는 자녀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고, 많은 것을 배우기를 원하나(예를 들어, 요즘의 과외 같은 사교육이나 학원 등), 정작 부모자신들은 배우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에 대한 권위가 무너지는 행동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다. 과잉교육열로 인해 강압적인 학습을 시키지만, 자녀들의 정신적인 문제에는 너무나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들이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만 과연 어떤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한유의 사설을 읽으면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요즘 학생들은 스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는 것이다. 가끔 뉴스를 통해 보면 심한 경우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보게 되는데,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현 시대에서는 이렇듯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종종 일어나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한유는 과연 이 사설을 쓰면서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제자가 스승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을 생각이나 해봤겠는가....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고 진심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스승 또한 제자에게 그만한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승으로서의 권위나 지식의 많고 적음에 대해 자랑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제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그러면서 스승과 제자는 각자 서로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고, 겸손한 제자의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한유의 ‘사설’ 은 스승이란 어떤 존재이며 배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사람들이 스승을 삼고 제자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조를 개탄하고 이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먼저, 스승이란 “도를 전해주고 학업을 전수 시켜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까닭이다”라고 하여 그 정의를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한유가 말한 요소 중에서 특히 “의혹을 풀어주는 까닭”이라는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태어난 직후의 인간은 배움이라는 과정 없이는 삶을 연장할 수 없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본능에 의해 움직이지만 성장할수록 학습에 의해 살아가는 방법들을 익히게 되므로 인간 최초의 스승은 어머니이겠지만 한유가 말하고 있는 도를 깨우쳐주는 스승의 역할은 역시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곧 제자가 잘 알 수 있도록 쉽게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 우리시대에서는 지식을 잘 전달하는 사람보다는 학벌이 높고 학위가 많은 사람을 더 신임하는 풍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또한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귀천에 상관없이 나보다 도를 들음이 앞서면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견해는 참으로 유연한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누구에게서든지 배울 것이 있는데 우리는 흔히 나이 혹은 경력, 지위등에 얽매여서 아랫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경직된 사고가 많다.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이면 그 중에 스승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우리는 오히려 잘못된 모습까지도 연륜이라는 명목으로 강요할 때가 많고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여겨 질문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유의 말처럼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더욱 성인이 되고 어리석은 자는 더욱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식에게 좋은 스승을 가려서 가르치려 하지만 자신은 스승두기를 부끄러워하는 부모들에 대한 개탄은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 “교육열”로 유명한 한국의 학부형들이 가장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다. 학군 때문에 이사를 하고, 조기 유학을 보내고, 초등학교에서 조차 생활수준이 차이 나는 아이들과 섞이는 것을 싫어하며, 석박사 경력의 학원강사를 찾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힘써 배우며 모르는 것을 더욱 알아가는 본을 보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의사,약사등의 장인들은 모르는 것을 서로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한유의 말에서 자신보다 나은 이를 스승으로 삼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나 또한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이어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이므로 나 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있든지 그 사람이 나 보다 어떤 점이 나은가를 유심히 살피고 모르는 것은 적극적으로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는 그 의미가 다른데 지식이 없는 사람은 배우면 채울 수 있지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위치에 연연하지 않고 스승을 삼는 지혜가 없는 자는 진정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적극적인 자세로 가르침을 받는 겸허함이 필요하며 이는 남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현명한 삶의 태도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