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무협) - 무와 협이라는 개념이 갖는 모종의 근원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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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르(무협) - 무와 협이라는 개념이 갖는 모종의 근원적 측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무협(=중국영화)
중국영화에서 무협이라는 장르는 가장 대표적인 장르이다. 영화 탄생 바로 다음 해인 1896년에 영화를 받아들이고 10년이 채 안되어 첫 자국영화를 만들어낸 중국의 영화 역사는 길고 복잡하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 안에서 국가와 정부가 개입해서 생기는 문제, 각 세대별로 부딪히는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헐리우드의 서부영화, 일본영화의 사무라이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의 무협영화. 라는 책에서는 무협영화를 “무(武)와 협(俠)이라는 개념이 갖는 모종의 근원적 측면.”이라고 정의한다. ‘무’란 무예의 기술적인 측면을 말하고, ‘협’은 인간관계에서 개인적으로 지켜야할 중요한 정신 즉 ‘의리’를 뜻한다고 한다.
무협 장르가 예술로서 대중과 직접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말에 ‘협의소설’ 혹은 ‘공안소설’이 나타난 뒤의 일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 루쉰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이 두 소설을 ‘협의공안소설’이라 이름 짓고, 1915년 서구의 근대적 서적을 번역하던 린수라는 사람이 ‘협의공안소설’을 ‘무협소설’이라고 명명한다. 이후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무협소설들이 등장한다. 1930년부터 1950년대까지 ‘구파’ 무협소설의 대가들이 활약하고, 1950년대 이후부터 ‘신파’ 무협소설 작가들이 활약했다. 이렇듯 우리가 홍콩영화의 전유물이라고 알고 있는 무협장르가 사실은 오래전부터 중국 대륙에서 소설장르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무협장르가 영화로 나타난 것은 1930년대부터이다. 상하이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중국 최초의 무협영화는 1928년 상하이에서 제작한 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평강불초생의 소설 을 각색한 것으로 당시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 흥행에 힘입어 18편의 속편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갑작스런 대중의 관심 집중으로 당황한 국민당 당국이 1931년 무협영화 제작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후 3~4년 정도 무협영화가 제작되지 못했다고 한다.
1928년 당시 무협영화가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정치적 분위기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1926년 7월에 시작한 북벌전쟁이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의 4.12 정변으로 무산되자 수많은 무협소설이 등장하여 당시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피해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때문에 혼란에 처해 있던 중국영화계는 더욱 혼란에 빠져들면서 제작 환경이 열악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100여 종이 넘는 무협소설이 풍미하면서 시장을 장학하고 영화시장도 이와 같은 오락적인 기호에 부응하여 무협영화 창작에 뛰어든다.
1931년까지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50여 개의 영화사가 제작한 420개의 영화중에 60%가 무협영화였다고 한다. 그러나 1930년 당국에서 무협영화 제작 금지 조치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등으로 중국영화계는 홍콩으로 이주하고 무협영화 역시 자연스럽게 홍콩으로 넘어가게 된다.
1960년대에 오락성을 갖춘 본격적인 무협영화가 등장하는데 그 정점에 후진취안이라는 위대한 무협영화 감독이 서있었다. 그는1993년까지 12편의 영화들을 만들었고 방랑의 결투, 용문객잔, 협녀라는 대표작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협녀는 오늘날까지 무협영화의 전설로 남겨져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