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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메멘토-
1. 메멘토의 줄거리
아내의 살인사건으로 인해 "10분밖에 기억을 못하는" 희귀한 증상에 시달리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떻게든 살인범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그의 기억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기 위해 문신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하는 주인공 "가이피어스".. 그의 놀라운 연기와 함께, 영화는 거의 2시간 내내 그 잃어버린 기억을 좇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주인공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잡으려 하지만 사실은 주인공 자신의 기억상실로 인해 아내에게 인슐린약을 과다투여해 숨지고 그것을 용납 할 수 없어 살해 당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복수의 삶을 살게 된다. 영화 도중에 흑백으로 나온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는 주인공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다. ‘테디’라는 인물은 경찰인데 주인공을 이용하여 범인을 잡아서 살인하게 하는 경찰이었고, ‘나탈리’여자는 테디의 조종에 의해 주인공에게 애인이 살해 당한 후 다시 주인공을 역이용하여 ‘테디’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미 복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여 지금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된 메모를 남겨둠으로써 또 다시 반복된 복수의 굴레를 돌고 있다.
메멘토에서 흩어진 날짜의 실타래로 조서를 꾸며 보면 다음과 같다 : 97년 2월 레너드 셸비와 그의 아내는 강도의 침입을 받았고, 아내가 강간당하자 레너드는 한 명을 죽이지만 다른 한 명에게 가격을 당해 단기 기억 손실증에 걸린다.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는 사실 살아있었다. 97년 11월 인슐린 과다 투여로 레너드는 아내를 죽이게 되고, 정신 병원에 수감된다. 98년 9월 레너드는 정신 병원에서 실종된다. (아마도) 99년 9월 이후, 영화 속 사건들이 일어난다. 흑백 화면은 테디와의 통화, 새미 이야기, 지미 살해. 컬러 화면은 지미 살해 직후 테디의 진실 폭로, 나탈리와의 만남, 그리고 여러 사건들을 거쳐 테디 살해. 흑백은 시간 순, 컬러는 역순으로 교차 편집되며, 엔딩 크래딧은 테디의 진실 폭로 직후 떠오른다.
모든 것이 회의적 분위기를 촉발한다 해서 테디를 레너드처럼 거짓말쟁이라 믿으면 곤란하다. 마지막 폭로는 진실이라는 전제가 그나마 해석 지평들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2. 진리론 (내가 믿는 것이 반드시 진리인가?)
우선 믿음이 가는 것, 확신이 가는 것을 진리라고 하기도 한다.
합리적이란 이성에 합당하고 논리에 합당한 것, 즉 이치에 맞고 논리적인 것을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일상적으로는 이치에 맞는 것이라야 믿는다. 사실 합리적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주관적인 확신을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므로 내가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견해이지만 엄연히 진리인 것도 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의 지식은 어떤 조건, 어떤 객관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대응설, 정합설, 실용설이 세가지 학설이 있어왔다.
대응설은 우리는 생각이나 판단이 사실이나 대상에 들어맞을 때 진리라고 한다. 판단이 사실에 일치, 대응할 때 진리라고 하는 견해를 대응설이라고 한다. 우리는 특별한 장애가 없는 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이 마치 맑은 거울과도 같아서 밖에 있는 대상이 조금도 왜곡됨이 없이 그대로 비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가지는 표상이나 관념은 바깥 대상의 모사라는 것이요, 이런 의미에서 대상은 우리의 관념과 일치, 대응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내 감각 기관의 생리적 상태, 조면, 대상의 위치 등 모든 것이 아무리 정상적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감각 기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의 감각은 바깥에 있는 사물을 사실 그대로 모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한 모사설은 순수 이론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 모사설이 올바른 주장이려면 관념과 대상의 일치 내지 대응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합설은 기존의 지식 체계에 들어맞으면 진리라고 한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지식을 얻었을 때, 대상과 실재에 비추어 볼 수 없음으로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의 체계, 가능한 옳다고 판별된 체계에 비추어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과거의 경험적 지식이 토대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새로 가지 지식이 기존의 지식 체계에 모순됨이 없이 들어맞는가 어떤가에 의해서 지식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주장이 정합설이다.
그러나 정합이란 두 판단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말하는데, 그러면 정합설은 논리학의 기본 원칙인 모순율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순율 자체의 진리성은 무엇에 의해서 확보될 수 있을까? 모순율 자체의 진위가 문제일 때 이것도 정합 여부로 가름할 수 없다. 역시 정합설은 다른 어떤 원리의 토대 위에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