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한유 의 사설 을 읽고

 1  감상문 한유 의 사설 을 읽고-1
 2  감상문 한유 의 사설 을 읽고-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감상문 한유 의 사설 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감상문 - 한유(韓愈)의 사설(師說)을 읽고
한유가 지은 사설을 읽어보니, 진실한 스승은 무엇일까? 배우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교육관에 대한 생각, 가치관,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의 스승의 역할과 제자의 마음가짐 등 지금 현재, 이렇게 만학의 길에서 배우고 있는 나 자신에게 참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 글이었다. 이 작품은 옛 성인은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기에 부끄러움이 없고 또한 배우기를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스승을 좇아 물었는데 뭇 사람들은 오히려 성인보다 훨씬 못하면서도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또한 많은 궁금증과 의혹이 있으면서도 스승을 좇지 않아서 갖고 있는 그 의혹마저 끝까지 풀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한유가 그 당시의 보편적인 사회기풍에 맞서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뜻을 깊게 표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어리석은 자는 결국 더욱 어리석어지며 성인은 더욱 성명하여져서 이런 점에서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가 나게 되는 까닭인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정, 스승은 누구일까? 작품에서는 도를 스승으로 삼아서 도를 들음이 나보다 먼저 라면 스승으로 좇아 삼으며 여기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도 없고, 귀하고 천함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 역시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은 嗟乎! 師道之不傳也久矣. 欲人之無惑也 難矣. 이었다. 스승의 도가 전하지 아니한 지 오래되어서 사람이 의혹이 없기를 바라지만 어렵구나 라고 한탄한 지은이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나 역시 이런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내 자신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배움의 갈증을 느끼고 좀더 자신의 내면적인 부분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늦은 때에 공부하고 있는 위치에 있지만, 오히려 어렸을 적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마치 다인 것처럼 지식 뿐만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스승을 찾고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마음자세가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해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내가 너무 나이도 많은데 학교 다니며 공부한다고 하는 것이 누구에게 말할 때에 부끄럽다 라는 생각도 가끔씩은 했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보다는 현재, 내가 모르는 진리가 너무나 많고 그 진리를 알아가기 위한 소망이 더욱 크기 때문에 이렇게 쉽지 만은 않은 고단한 배움의 길에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나 자신에게 있어서 많은 부분이 고쳐져야 되고 실행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사설을 통해서 또한 깨닫게 되었다. 한가지 새롭게 결심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 또한 삶에 있어서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에게 그 동안 물어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앞으로는 보다 떳떳하게 그것을 물어서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정한 스승은 바로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한유가 이 글을 쓰던 당시의 사람들이 성인보다 훨씬 뒤떨어지면서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해 성인은 더욱 성인이 되고 어리석은 이들은 더욱 어리석어진다며 남의 이목 때문에 배우기 위해 모신 스승의 지위에 부끄러워하고 꺼려하는 모습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의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배움에 있어서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데 결코 그의 나이와 지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실제로는 많은 모순을 지니고 살고 있다.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기준이 그 사람의 지위나 학벌이 앞서있고, 자식의 스승마저도 그의 능력과 학력에 따라 평가하여 나누고 있다. 그것이 자식을 위한 길이라고 말하면서 자식에게 진정한 스승을 만나게 해준다기보다는 좋은 대학으로 인도해줄 사람을 진정한 스승으로 믿곤 한다. 자녀 자체가 아닌 주변환경으로 패가 갈리고 평가되는 사회가 주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은 올바른 ‘배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의혹이 있으면 스승을 좇아 배우되 그 스승의 나이와 신분은 중요치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도리를 전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스승이라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스승을 만나고 배움을 얻는다. 그 스승이 학교에 계시는 수 많은 선생님들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길에 지나다가 한번 스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길을 지나다가 조용히 선행하는 사람을 봤다면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학교에서 나에게 지식을 알려주는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다. ‘스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런 것이지 실제로는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많은 스승을 만나고 있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고, 그것은 나 스스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내가 배울 점이 있는 것이라면 물어 내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비단 지식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세기의 스승이라고 불려지는 공자마저도 길에 가는 사람 중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사회경험이 적은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하고 미처 익히지 못했던 것들을 묻고 도움을 얻으면서 처음엔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평소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라며 의문이 생길 때마다 당당히 물어보던 나였는데 그 때에는 그들보다 조금 더 길었던 내 사회경험만을 믿고 자만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사회는 점점 학벌을 중시하고 사람의 본질보다는 내세워지는 간판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어떤 보이지 않는 기준에 의해 상대가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될 때 자칫 자만하게 되어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 그것은 내가 앞으로도 만나게 될 수많은 스승을 통해 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얻고,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엔 결코 자만하지 않고 더욱 정진하여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올바른 배움의 자세이며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