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정수일의 우보천리의 마음으로

 1  [독서 감상문] 정수일의 우보천리의 마음으로-1
 2  [독서 감상문] 정수일의 우보천리의 마음으로-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독서 감상문] 정수일의 우보천리의 마음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보천리의 마음으로
지은이 정수일 선생에 대한 약간의 설명과 함께 학문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 많은 감동을 받으셨다며 적극 추천해 주시기에 궁금한 마음에 미리 주문을 해 놓았다. 그 외 “한국 속의 세계”와 “이슬람 문명”이라는 책도 아울러 구입하여 두었다. 욕심은 많아서 구입은 많이 했지만, 매일 9시간의 빡빡한 수업을 들으며 과제에 밀리다 보니 “무척 읽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읽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막상 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방학을 이용하여 그렇게도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면서는 기대하고 궁금했던 마음과는 달리 가려운 곳을 적당히 긁어 줄 만한 흥밋거리가 별로 없어서 조금은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다. 읽는 시간도 무척 더디어 이왕 시작한 책이니 끝까지 읽기는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거의 매일 씨름하듯이 책을 읽어냈다.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이 책의 내용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아랍어, 포루투칼어, 위구르어, 티베트어, 몽골어 등 12개 나라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능력 있는 학자로서 정수일 선생의 인간적인 면을 엿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어느 한곳도 허튼 이야기 없이 늘 학자로서 학문적인 자세와 자신의 학문 세계에 대해서만 견지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언제나 꼿꼿하셨던 나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대하는 것 같아서 재미없고 야속하기만 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이국적인 멋있는 외모에 외국어에 능통한 수준 있는 언어 실력, 게다가 운동도 잘하여 베이징대학 시절 학교 대표 축구선수였었다는 그의 주변 이야기, 이를테면 정수일 선생이나 그의 아내에 관한 인간적인 고뇌를 확인하면서 “그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라는 식의 결론을 내리고 싶었는데....
오기를 가지고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어려운 책과의 씨름에서 내가 이겼다”는 기쁨보다는 나의 속물근성을 들켜버린 듯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느꼈다.
그리고 올해(2007) 또 전공수업 중 언어의 이동(중국어의 외래어)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언어의 이동과 문화의 교류, 문명의 교류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이 책을 펴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읽어 보리라 마음먹고...
우선 가장 궁금했던 정수일 선생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그는 1934년 중국 연변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연변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에 입학하여 동방학부에서 공부한 후 수석으로 졸업을 하였으며, 중국의 국비장학생 1호로 이집트의 카이로대학 인문학부 연구생으로 수학하였으며, 중국의 외교부 공무원으로 복무하였으며, 모로코 주재 중국대사관의 외교관으로 근무하다가 북조선의 부름을 받게 되었단다. 김일성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등의 동방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연구 활동을 하였으며, 1984년 북조선을 출국하여 튀니지 대학의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말레이대학 이슬람아카데미 교수 등을 거치면서 10년여에 걸친 국적을 세탁, 마지막은 필리핀에 거주하는 아랍인 2세가 되어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단국대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서 문화 교류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때 당시 북한의 명령을 받아 어느 월간지에 있는 내용을 팩스로 중국에 보내면서 북한의 간첩임이 밝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부인은 정수일 선생의 실제 신분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고 하니 지식인으로서 한편으론 공작원으로서 살아야 하는 남모르는 심리적 고통이 많았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민족의 불운 앞에 희생된 한 위대한 학자의 운명에 가슴이 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