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노동의 세기 실패한 프로젝트 에릭 홉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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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요약 노동의 세기 실패한 프로젝트 에릭 홉스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노동의 세기 실패한 프로젝트?
책 제목을 처음 접하고 나서 책 내용이 어떤 내용일 것인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세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틀려 질수 있었다. 세기 라는 용어는 물론 역사적 개념은 아니다. ‘세기’는 단지 연대기에서 그리고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온 독특한 우리 문화에서만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엄밀히 볼 때 100년은 역사에서 하나의 우연한 숫자일 뿐이다. 그 외에 세계가 올해 말에 한 세기의 종식 그리고 한 천년의 종식을 축하할 텐데, 이것은 순전히 유럽 중심주의의 소산이다. 왜냐하면 오직 기독교적 시대 측정 방법에서만 한 세기, 한천년의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기’라는 단위에 익숙해 있으며, 이는 교사나 언론인, 역사가와 같이 직업상 사상을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시간 단위인 것이다.
이 책은 “노동 운동, 실패한 근대의 프로젝트인가?”라는 제목 아래 1999년 9월 오스트리아의 린츠에서 열린 ‘국제노동사학회’의 제35회 학술대회 발표문을 중심으로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총 4부에 걸쳐 구성 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노동에 대한 근대의 시각과 탈근대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홉스봄이 근대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고,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사회학자 바우만은 탈근대의 시각을 대변한다. 2부에서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보쿰의 루르대학교 부설 사회운동사연구소 소장인 클라우스 텐펠데와 독일 민주사회당 역사위워노히 소속의 구동독 역사가 칼 하인츠 그래페의 논문을 수록하였다. 3부에서는 제 3세계 해방과 동원이라는 주제 아래 임지현과 차문석의 논문을 수록했다. 임지현의 논문 ‘해방에서 동원으로:제 3세계와 반서구적 근대화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의 사상적 유산인 사회주의가 제3세계에서는 ‘반 서구적 근대화’의 프로젝트로 수용되었다는 역설을 지적한다. 차문석의 논문 ‘생산성의 정치와 노동의 동원’은 국제노동사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은 아니지만, 20세기 제3세계 노동 운동사를 바라보는 데 시사해 주는 바가 적지 않아 특별히 수록하였다고 한다. 4부에서는 ‘새로운 노동사?:주변, 여성, 인종’이라는 주제 아래 계급이라는 중심에 눌려 노동 운동사 연구에서는 주변으로 취급되었던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 세 편의 논문을 수록 하였다. 다니엘 제임스의 논문 ‘라틴아메리카 노동사와 주변의 시각’은 좌파적 영웅 서사, 즉 마르크스주의, 세계체제론과 종속 이론 등의 거대 서사의 부문으로 편입되었던 기존의 노동사를 해체하고 분해를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노동사’의 포스트구조주의적 경향을 잘 정리해 주고 있다고 하고, 쉴라 로우보섬은 1968년 영국을 회고하는 대목에서 자주 이름이 발견되는 ‘1968’의 주역이다. 그녀의 논문 ‘미국 노동사와 여성’은 1968 정신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사회주의저거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이 노동사에 기여한 측면들을 고찰한 글이다. 남아공의 노동사 연구자 비씨의 논문 ‘백인 노동 귀족과 흑인 프롤레타리아트’는 남아프리카의 노동 운동사를 다루고 있다. 지금 까지는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나서의 느낌과 이 책의 전반적인 목차에 대해서 살펴봤다. 다음 부터는 이 책의 목차에 따라 1~4부에 순서대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다.
1) 노동에 대한 두 개의 시각: 근대와 탈근대
① 노동 운동의 세기(에릭 홉스봄)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에릭 홉스봄에 대해서 알아 보면, 1917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가족이 모두 비엔나로 이주했다가 1931년에 다시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들 가족은 최종적으로 1933년 영국에 정착하였다. 케임브리지의 킹스 컬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으며, 1982년까지 런던대학교의 버벡 컬리지에서 사회경제사 교수를 지냈다. 현재 영국 아카데미 및 미국 아카데미의 특별회원이자 뉴욕의 신사회연구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교수, 버크백 칼리지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의 초기 저작들은 주로 19세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17·18세기 및 20세기에 관해서도 저술해 왔으며 정치, 역사서술, 사회이론뿐 아니라 필명으로 재즈 비평가로 활동할 정도로 문화비평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대표작으로 역사에 관한 3부작 , , 가 있다. 이 밖에 , , , 등이 있다.
여기서 에릭 홉스봄이 말하고자 하였던 것은 ‘노동 운동의 세기’였던 20세기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20세기에 노동운동과 함께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노동 운동은 어떻게 발전하였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시한다. 20세기 역사에서 노동 운동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가? 노동자 계급에 미친 영향 이외에, 노동 운동은 어떻게 이 시기 역사에 영향을 끼쳤는가? 즉 노동운동이 미친 영향이 긍정적 이였는가 부정적이 였는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홉스봄이 지나온 노동의 세기(20세기)를 의미없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점이다. 노동운동 자체를 실패한 프로젝트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 하고 있다. 현재 자본의 승리가 너무나 굳건해보이는 이 세상에서 노동운동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힘들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홉스봄은 사회주의 기획과 노동운동을 구분한다. 사회주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노동이 존재하는 한 노동운동 또한 존재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결론에 따라 홉스봄은 여러 가지 예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 하고 있다. 지금 부터는 홉스봄이 주장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겠다. 1900년대의 제2인터내셔널 대회는 중대한 문제, 즉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운동 진영이 내각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표명해야 했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이 대회는 ‘위기 대회’라고 일컬진다. 홉스봄은 이 대회를 ‘노동 운동의 세기’를 열었다고 보고 있다. 왜 유럽 정부들은 조직 노동 운동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당시에 경영자들은 노동조합이 그들을 파멸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경제적 이류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사실이 중요했다. 노동자 정다잉 존재하는 나라들에서는 선거 민주주의가 도입되기만 하면 그들이 곧 하나의 무시할수 없는 정치 세력이 될 것이라고 예견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 태동한 노동자 정당들은 밀랑의 위기 때문에 처음으로 체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설정한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제와 관련한 논란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체제에 대한 관계 설정 문제가 당시 중요한 과제였음은 명백하다. 우리는 오늘날 다시 유사한 역사적 순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옛 세기말 노동 운동처럼 낙관적인 징후가 아니라 비판적인 징후 아래에서이다.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밀랑의 위기 당시뿐 아니라 수정주의 논쟁에서도 핵심 문제였다. 자본주의의 붕괴가 기대될 수 없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 운동이 해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혁명 이외에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있는가? 밀랑과 베른슈타인의 경우는 그들이 이 무제를 정면으로 제기했기 때문에 파문을 일으켰다. 게다가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주의의 공개적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그 때문에 모든 당파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반면 밀랑의 위기에서는 정치적 사례가 문제되었지 이론이 공격받지 않았다. 사회민주당은 한편으로는 베른슈타인이 내세운 개혁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일체 부정하였지만 실제에서는 자본주의의 체제안에서 노동자의 처지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투장하는 현실적 노선을 택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같이 1900년부터는 마르크스주의의 노동 운동이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에서 체제와 전쟁 상태가 아닌 사실상 ‘공존’ 상황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에릭 홉스봄은 위의 내용에서 수정주의의 위기는 사회주의의 위기였지 노동 운동 자체의 위기는 아니라고 하면서 노동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 하고 있다. 국제노동사학회의 회의 주제 “노동운동, 실패한 근대의 프로젝트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노동운동은 계급의식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가 아니라 노동 운동은 임금 노동자 계급이 보여 주는 특성으로 사회적 생산의 특정 단계에 대두된다고 보았다. 이렇게 볼 때 노동 운동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며 실질적으로 불가피한 사회 현상이다 라고 말하였다. 반면 사회주의는 하나의 ‘프로젝트’, 즉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하나의 새로운 사회와 경제 체제로 대체하려는 의도이자 시도이다. 이 프로젝트는 시작된 이래 노동 운동과 밀접을 관련을 가져 왔지만, 그렇다고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강압과 테러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한, 노동자 계급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에서 노동 운동을 발견한다. 왜 미국에는 이데올로기로서 그리고 사회 운동으로서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이미 100년 동안 자주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도 노동 운동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오늘 날에도 아직 그 역할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자들,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주의 정당들 사이에 역사상 오랫동안 존재했던 관계가 단순히 역사적 우연이라고 주장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를 불가피한 동일체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 시키고 있다.
또한 에릭 홉스봄은 오늘날 노동 운동은 새로운 단계에 와 있다고 하면서, 노동 운동은 아직 존재한다. 브라질과 한국의 에가 보여 주듯이, 신흥 산업 국가에서 노동운동은 아직 성장가도에 있으며, 그곳에서는 아직 산업 노동자층이 축소되 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구산업 세계의 부유한 국가들에서도 노동 운동은 지속될 것이다고 하였으며, 그에 대한 이류를 제시 하였다.
첫째, 마르크스가 예언했듯이, 최소한 피고용자로서 이해 관계가 고용주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임금, 봉급, 소득자가 다수 존재하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