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아라비아 로렌스 세계관의 충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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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상문 아라비아 로렌스 세계관의 충돌4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라비아 로렌스에 비쳐지는 세계관
아라비아 로렌스는 과거 유럽사회 제국주의와 로렌스라는 한 인간이 아랍 사막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통해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화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살펴볼 것은 줄거리가 아닌 자국인과 이방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세계관인데, 이것을 알기 위해선 두 부류의 인물들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자국인(아랍인)에 대한 특징을 살펴보자면, 그들은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다니며, 안내자나 혹은 정복자의 역할을 한다. 늘 우물을 중심으로 그은 자신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많고, 침입자에 대해 자연스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친 면모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막이라는 환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자, 사람이 죽고 사는 모든 걸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려는 운명론적인 경향에서 나온 것이다. (단 하루만 걸어가도 목이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신이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비롯된다-사막에서 낙오된 자신의 하인을 구해준 로렌스를 사람들은 엘(성경의 엘리에서 나온 말)로렌스 라고 부르며 무리들 사이에서 나름의 신적인 대우를 해준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자신에게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해 놀라워하게 되고, 신이 내려준 운명을 따르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게 된다. (한 마디로 반 미개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반면, 로렌스로 상징된 유럽인(이방인)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인간이다. 영화에 나오는 시기는 수에즈 운하의 지배권을 두고 영국군과 터키군이 대결하고 있던 1918년 중동이다. 이때, 전세의 변화를 노리던 제국군 영국은 터키로부터 독립하려는 아랍 부족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아랍의 파이잘 왕자를 도우라는 명령을 하달하려고 로렌스를 보낸 것이다. 이 영화는 로렌스가 파이잘 왕자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그린 로드 무비이자, 정복 영화이다. 영국군은 아랍어를 가장 잘 구사하면서, 아랍에 대해 가장 자신 있는 로렌스를 아랍으로 보내지만, 그도 환경 적응에 힘들어하기는 인간이긴 마찬가지이다. 낯설게 접해보는 뜨거운 사막 속에서 낙타를 타고 우물이 나올 곳만 기다리며 여행하는 것은 이방인에게 가장 고역스런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은 자국인과 조금 다른 면모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목표로 한 일에 대해선 그것이 달성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이것은 삶의 흥망성쇠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아랍인과는 판이하게 다른 면모이다. (다만,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할 뿐...) 그 환경조차 이방인들은 특유의 인내로 쉽게 정복하고 만다. 로렌스가 엘 로렌스로 불리면서까지 아랍인들에게 영웅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렌스는 알리 족장과 아우다를 설득시켜 연합전선에 끌어들이고, 결국엔 해상공격에만 몰두하고 있던 아카바의 터키군을 점령함으로써 영웅이 된다. (이런 끈기 있는 면모를 시험 삼아 보여주기 위한 사건이 바로 로렌스가 사막에서 낙오된 자신의 하인을 구하는 장면이다.) 앞서 말했듯이 자국인은 뜨거운 사막 속에서 거친 면모를 보이며, 우물을 함부로 먹는 자를 죽이고, 이방인과 부대끼며 전투를 벌이는 모든 행위를 신이 지켜주는 운명론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사막이라는 환경에서 믿어왔던 오랜 경험과 법칙의 굴레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낙타를 타고, 검은 옷을 입고, 우물이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낙타가 지친 듯 하면 며칠씩 걸어가기도 하는 등등의 일련의 생활 패턴들은 자신들의 오랜 경험과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묶어왔던 오랜 생활 패턴 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벗어남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렌스는 사막에서 낙오된 자신의 하인들을 구하고 엘(神) 로렌스로 바뀐다. 자국인들이 그렇게 부른 이유는 로렌스가 용감하고 위대한 영웅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고 있는 오랜 관습의 굴레를 버리고도 살아날 수 있었던 사람, 다시 말해 신이 지켜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렌스는 신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고, 유럽에서 온 이방인의 신분에 있는 자이다. 그는 관습이나 경험에 묶여있기 보다는 관계에 묶여있는 편이다. 그는 사막에서 낙오된 두 사람을 구하러 가는 일이 죽음을 담보로 하는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끈기와 의리로 하인들을 죽음에서 구해낸다. 쉽게 말해, 그네들이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의 위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기에 혹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관계를 더 우선시 했기에 위험을 무릎 쓰고 도우러 갔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로렌스가 신(神)이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을 뿐 아니라, 그 역시 운명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은 아랍인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웅이 된 로렌스가 자신이 구한 배신자를 총으로 쏘고 괴로워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론, 아랍인들에게는 당연한 처사라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그는 법칙이나 관습에 묶인 자가 아닌, 관계나 정에 묶인 자이다. 여기서 감독은 자국인이든 이방인이든, 인간의 삶을 갖고 있는 모든 자들은 그네들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엘 로렌스는 이미 그네들 사이에서 신으로 불려졌지만(로렌스의 입장에선 영웅임),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구한 동료를 구할 수 없는 운명에 속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아랍 부족과의 문화적 이질성 및 부족들간의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살상가상으로 열강들이 아랍 분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로렌스는 아랍을 결합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을 이용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아랍을 분할하려던 열강들은 로렌스를 적성분자로 몰기만 한다. 결국, 전쟁에 승리했던 로렌스에게 돌아온 운명은 비참하기만 했던 것이다. 만일, 로렌스가 그네들 무리에서 아랍을 구할 수 있는 신이었고 행운을 몰고 다니는 영웅이었다면, 로렌스에게 불행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렌스를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만든 장본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광기’이다. 이방인들의 입장에서 아랍인들은 환경이 만들어낸 광인이지만, 아랍인의 입장에서 이방인(로렌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광인이 된 경우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아랍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모험과 정복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미 일궈놓은 제국주의적 환경 안에서 이방인이 적응해가는 면모를 그린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광기는 더더욱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 중... 단 한 장면이라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라는 말은 이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첫 장면에서 로렌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로 죽는 장면이 나온다. 브레이크를 밟지도 않은 채, 계기판이 정신없이 올라가도록 속도를 내는 로렌스의 모습은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 광기는 선천적인 것이 아닌 후천적인 환경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일러두고 싶다. 뜨거운 사막 속에서 낙오된 하인을 구했을 때도, 터키군에게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하는 동안에도, 그는 의연하게 자신의 광기어린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 광적인 면모는 아랍인들로 하여금 영웅으로 추앙받고, 아카바를 점령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공을 세우고도 유럽인에게나 아랍인에게 인정받지 못한 광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광적인 면모를 보인 것뿐이지만, 후엔 아랍인들처럼 사람을 서슴없이 죽이는 진짜 광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랍에게도 영국에게도 속한 신분이 될 수 없었을 때에는 광기에 극치를 달리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정말, 비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우를 통해서라도 환경과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로렌스가 사막에서 낙오된 하인들을 구했을 때, 이런 말을 한다.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어.’ 라고... 그렇다. 사막에서 하인들을 구했다는 것은 아랍인들에겐 불 속에 있는 사람들을 구한 경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로렌스의 광기 안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다. 그렇다. 광기의 영역 안에서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무한한 영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광기의 영역이다. 그리고 아랍인들은 그것이 신성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로렌스는 신이 아니다. 모래 구덩이 속에서 점점 빠져 들어가는 아랍인 하나 구하지 못할 정도로 연약한 인간이다. 그것도 독기가 가득한 인간이다.
어느 인터넷 자료에서 로렌스는 여성적인(동성애적인) 면모가 많이 부각된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글을 잠시 살펴보자면 이렇다.
1918년 로렌스의 첫 등장은 후줄그레한 군복에 구부정한 장교모습이었다. 그는 상급자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군기가 빠질 대로 빠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유약한 내면엔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열정과 광기가 담겨 있다. 그의 모습이 결코 일반적인 남성상이 아니고 여성적, 적어도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전적으로 로렌스 인물연구에 충실했던 피터 오툴의 덕택이리라. 로렌스가 나중에 터키군에게 붙들려 성 고문에 가까운 대접을 받을 때 확실히 나타나지만 그의 여성적인 면모, 혹은 동성애적인 기질이 평생 따라 붙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피터 오툴의 연기로 재현된 로렌스는 남성적인 강인한 면모보다는 여성스런 면이 많이 부각된다. 그가 사막에서 "가심"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사막으로 되돌아설 때의 가슴 뭉클함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