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 3사건과 국가의 로컬기억 포섭과정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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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주4 3사건과 국가의 로컬기억 포섭과정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독후감]
을 읽고
이 글은 43에 관한 로컬기억이 어떻게 국가가 장악한 담론 가운데서 전이와 포섭의 길을 걷는지 보여준다. 오랜 시간 수많은 희생자를 두고 국가에 대한 폭동이라는 주장과 단독정부 수립반대 항쟁이라는 주장이 서로 대립되면서 제주도민들은 쉽게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받았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단체를 통해 43은 조금씩 밖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는 항쟁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으며 반란, 폭도라는 주장과 대립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양민학살론이다. 이는 국가폭력의 불법성과 잔혹성을 부각시키고 윤리성을 강조하는 기표로 작용한다. 이는 양쪽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윤리성을 띠고 내부갈등을 봉합하고 43의 외연을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저자는 양민학살론의 윤리성은 정치성의 극복이 아닌 도피성이라 주장한다. 43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양민학살론을 바탕으로 제시한 ‘평화’는 내적갈등을 극복하고 국가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도록 했다. 사건의 외양은 피해자 조사와 보상, 대통령사과 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부에선 무장봉기대의 위패가 치워지는 등 정치성은 축소되어버렸다고 본다.
연구는 도민들이 제시했던 ‘양민학살’을 ‘평화와 상생’으로 재코드화 하고, 국가는 다시 ‘평화’라는 기표로 재수정한다고 보았다. 도민들은 이 과정에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아니라 평화를 학습해야 할 수동적 존재로 변화한다. 43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한 제주의 역할논의가 주류 담론으로 변화한 것이다. 요한 갈퉁의 ‘평화 개념’은 물리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국가의 평화담론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충족, 경제적 복지, 평등으로 의미가 이동된다. 경제교류와 무역을 통한 상호의존 등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평화의 의미에 덧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국제자유도시와 세계평화의 섬을 연결시킨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43 담론이 국제자유도시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43이 평화 담론을 제시하지 않고 계속 갈등상황이라면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추진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 곳곳에 침투해 갔으며, 제주 역시 그 얼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43과 상관없이 어떻게든 세계화의 한 자락으로 제주는 포섭되었을 것이다. 43 담론이 없었던 다른 지역도 국제자유도시 추진에 뛰어들어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뒤에서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과 연결하는 부분도 오히려 결론으로 정리하기보다 무리하게 확장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여러 단체의 노력을 통해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말을 할 수 있고 숨겨진 역사가 기록될 수 있었다. 43은 오랜 시절 제주도민에게 금지 된 역사다. 국가의 강요된 침묵과 피해의 기억이 만들어 낸 자발적 침묵이 오래도록 제주사회를 감싸고 있었다. 잊혀진 역사, 사라진 역사가 될 수도 있었다. 43사건의 외연확장이 가진 의미가 폄하되어선 안 된다.
‘국가의 폭력성’이라는 정치성이 많이 희미해지고, 43을 바라보는 내부의 시선은 여전히 갈등인 채 평화라는 이름으로 덮어진 부분에 대한 지적은 올바르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뀌자 43에 대한 망언이 나오고, 명예회복 작업이 흔들린다. 이 부분은 쉽게 해결될 부분도 아니고 빨리 끝날 수도 없다. 앞으로 ‘국가의 폭력성’이라는 부분과 정치적 성격에 대한 논의들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