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답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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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인 답사 보고서
실용국어 첫 시간 2가지 레포트와 함께 개강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종강이 다가올 때쯤 우리 조는 답사를 가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점은 우리조간에 연락이 힘든 점을 말할 수 있겠지만 조원들의 많은 도움으로 국학이론의 발전과 세계학문 파워포인트 발표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고 답사도 교수님 카페에 소개해 주셔서 김소월 시비로 답사장소를 쉽게 정할 수 있었다.
남산 회현역 나에게는 먼 거리였으나 교통의 발달로 1시간 안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남산에 온 기억을 떠올리며 조원들을 기다렸다. 조원들이 모인 후 남산으로 가게 되었지만 남산의 크기도 크고 김소월 시비 외에도 백범 김구 선생님의 동상,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중근 의사 동상, 퇴계 이황 동상, 다산 정약용의 동상, 남산식물원 등 다른 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김소월 시비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는 작은 크기의 비에 시가 씌어져 있었다. 김소월의 삶과 작품활동 ,작품경향과 그 시 내용을 답사 보고서에 써 보겠다.
1. 시인의 삶
시인.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성도(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사립인 남산학교 (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한때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 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이돈화(李敦化)· 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2. 작품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