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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모던 타임즈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인간이 이득과 해택을 누렸지만, 그로 인해서 인간에게 피해가 되는 점이 어마 하다는 걸 보여 주는 영화였다. 영화에서는 찰리 채플린을 통해서 인간이 산업 혁명으로 인해서 기계의 하나의 부품 화 되어가는 모습을 찰리 채플린의 특유의 코믹연기와 재치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웃음으로 웃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사회 문제이다. 인간이 편리함을 위해 만든 기계가 도리어 인간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이간이 기계에 맞춰서 행동을 하고 이간 개인의 시간과 생각은 무시된 것이다. 기계가 작동되면 하던 일까지 멈추고 기계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컨베이어 벨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찰리는 하루 종일 나사못 조이는 일을 하고 있다. 찰리는 단순 작업의 결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 버리는 강박 관념에 빠지고 결국 정신이 이상해져서 급기야 정신 병원까지 가게 된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다가 시위 군중에 휩싸여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몇 년의 감옥살이 끝에 풀려난 찰리는 빵을 훔친 예쁜 소녀를 도와준다. 근사한 집을 사기 위해 백화점 경비원으로 취직하기도 하고, 철공소에서 일을 하나 번 번히 소동으로 막을 내린다. 소녀의 도움으로 카페에서 일하게 된 찰리는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에 아랑곳 않고 노래를 하다가 결국 다시 떠돌이로 남는다. 하지만 거리에 나선 찰리와 소녀는 결코 희망만은 버리지 않는다. 이런 내용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자본주의는, 베버가 분석했듯이 금욕주의를 통해서 발전했다. 그것은 자본가들에게는 절약을 통해 축적을 추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주어진 직업을 천직으로 삼도록 했다. 이럼으로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억제하고 고된 노동을 견뎌 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대량생산이 도입되면서 크게 달라진다. 대량 생산의 원동력 이 된 컨베이어 벨트와 대규모 기계 등을 통해 대량체계 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대량생산한 상품은 과연 누가 소비할 수 있는가? 정작 상품은 많이 생산 했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모순이 쌓이고 쌓여서 폭발한 것이 바로 1929년의 대공황이다. 이 과정에서 찰리 채플린이 대모의 주도자로 끌려가는 장면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새로운 체계 즉 대량생산 체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관습적인 생활양식에서 갑자기 내몰린 사람들이 그만큼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량으로 거지, 도둑, 부랑자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대량 생산이 있게 해준 것이 컨베이어 벨트이다.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흘러가는 기계에 너트를 조인다. 벌이 눈앞에서 뱅뱅 돌며 채플린을 위협해도 그로서는 쫓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그러다간 어느새 조여야 할 기계는 저만큼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동료와 다투는 것도 기계에 매여 있다.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채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손. 거기서 손을 움직이는 의지는 채플린의 것이 아니다. 사장의 의지인 것이다. 찰리 채플린도 나사조이는 일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자기의 의지가 아닌 채로 무엇이든지 나사를 조이듯이 조이려고 한다. 이렇듯 대규모 공장의 작업은 규격화되어 있고, 이러한 단순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은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좋았다. 노동자는 기계 부속처럼 단순한 동작만 하면 되었으므로 농부처럼 논밭을 경작하기 위해 절기와 기후, 강수량, 땅의 성질과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들에 대해 모두 알고 익숙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하는 한 가지 일만 잘 알면 된다. 테일러는 노동자들이 하는 작업의 시간을 측정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목표량으로 설정하는 과업관리를 통해 작업의 효율을 극대화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량과 시간의 표준화를 바탕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에 흘러가는 물건들에 단순한 조작만을 가하면 되도록 작업대를 설치하고 필요 없는 동작을 줄인 일괄 생산 체계를 현실화 시켰다. 사람들의 행동을 우리가 기계를 다루듯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밑에 깔고 있는 20세기 초에 완성된 이러한 관리의 지침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채플린은 공장을 조직하고 나아가 현대를 구성하는 이러한 방식들과 그 밑에 깔린 생각들이 만들어 낸 우스꽝스러운 결과들을 영화를 통해 보여 줌으로써 무엇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에서 보듯이 잠시 일손을 놓을라치면 벽에 있는 화면에 감독자의 얼굴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섬뜩해진다. 또 영화가 중반으로 흘러가면서 흑백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채플린이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채플린은 아무런 상처하나 없이 다시 톱니바퀴를 반대로 도리니 그대로 나왔다. 이 장면을 우린 코믹스럽게 웃고 넘겼지만 이것도 인간이 기계의 한 부품이 됐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갔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도 어쩔 수없이 인간이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 이지만 그런 행동을 하면서 인간이 자기의 의식 없이 자기의 의식을 지배당하게 되면서 까지 노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자기의 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고 그에 따라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영화는 인간이 기계화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표현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 채플린이 소녀와 함께 걸어 가며서 희망을 잃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그래도 인간이 기계화되지 않고 인간다운 모습인 것 갔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고 채플린에게 희망만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