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창세기 프리칭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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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평: 창세기 프리칭 예수
이 책의 저자는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교수이다. 그는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설교학 명예교수이다. 창세기 프리칭 예수는 컬럼비아신학대학원교수인 찰스 켐벨이 말한 “진정한 설교는 예수를 드러내는 것이다”에 동의하는 책이다. 저자는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에 매우 탁월한 학자이다. 창세기 프리칭 예수 외에도 여러 책들을 집필하면서 그의 주장은 여전히 구약도 설교자들과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해주고 있다. 그것에서도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에 구약성경은 오늘날 신약에 더 친근함을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처럼 구약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적용에 불편함을 느낀 설교자들과 교인들은 구약에서 특히 창세기에서 그리스도의 갈증을 해결 해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설교하는 것에 구약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책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왔었다. 그러기에 많은 설교자들이 예수님에 관한 복음의 메시지를 구약에서 발견하여 설교하는데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아쉬움을 가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알레고리적 해석을 뛰어넘는 문헌과 정확한 원어해석을 통하여 창세기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빛나는 흔적을 찾아내는 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김의원 교수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창세기를 해석하는데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승진 교수 또한 우리가 깊은 늪에 빠지기 쉬운 알레고리 해석이나 자의적 그리스도를 위한 해석의 함정에서 저자를 통하여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렇게 자의적 해석이나 알레고리 해석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는 설교를 하도록 도와주는 그것은 무엇인가. 그중에 하나는 핵심명제나 중심사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성경의 문학 장르나 수사적인 전략에도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속사적인 설교를 주창하는 탁월한 설교자라고 역자는 말한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창세기에서도 발견하게 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저자는 창세기를 통하여 23개의 창세기의 본문을 가지고 설교자들에게 제공하는 하나의 좋은 양식으로 내러티브를 통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내러티브를 통하여 주는 교훈과 설교의 목표들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예수그리스도를 설교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여러 개의 본문으로 주어지는 창세기의 나누어진 내용들을 전체로 묶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곱 가지방법에서는 구원에 관해서 약속과 성취를 알려줌으로 허황된 고전의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해준다. 더불어 구약의 이야기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절정에 이르는 구원의 이야기의 완성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개입과 완성은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구약의 완성을 또한 이루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맞게 본문을 해석하고 그것을 신학과 연결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성취를 이끌어 내는 것에 탁월하다.
그런데 저자가 창세기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을 시도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의문을 가져보기에 충분하다. 그러기에 저자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에 구약 성경 가운데 창세기를 선택한 것에 대한 이유를 주장하는 것에 세 가지를 언급한다. 하나는 교회에서 차지하는 창세기의 중요성이요 다른 하나는 창세기에 대해서 설교를 하지 않는 설교의 빈약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도록 도전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도전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극복하는 노력이다. 창세기를 향한 저자의 마음이 도전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만큼 창세기에서 논리적이고 신학적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가 창세기에서 영지주의를 반박하는 것에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서 교회에 힘을 실어 준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영지주의를 통하여 도전을 받아 왔다. 물질의 악함을 처음부터 주장해온 그들과 다르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 하셨음을 그리고 영지주의의 주장이 오류가 있음을 그는 드러내 준다.
그렇다면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에서 몇 가지의 논쟁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창세기의 정통성을 언급하는 것은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저자는 몇 가지를 언급하여 준다. 보통의 사람들은 특히 창세기를 어떻게 생각 하는가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사실은 신화이다. 신화라고 치부해버리는 생각은 창세기를 더 이상 사실적이다 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역사는 동화답고 비사실적이다 라는 것에 많은 설득력을 당해 왔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신화가 아니라 실제 일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 안에는 신학적 목적과 관점이 용해되어 있다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은 설화의 개념에서 사실로 사실의 개념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담기에 창세기는 충분한 것이다. 또한 설화의 개념에서 사실로 역사적인 흐름을 더함으로 창세기는 현재 우리들의 실제 세계로 접목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나 역사적인 재구성에서 있어서 창세기는 그냥 단순한 이야기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역사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그랜트 오스본은 주장한다. 사실에서 더욱 확고한 창세기로 나아가기에 역사성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역사성은 사실에 입각하고 사실이 증명되기에 역사성은 매우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창세기는 설화에서 탈피하여 사실성과 역사성을 더하여 문학성 까지 옷을 입은 성경이다. 이렇게 성경을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성된 창세기는 이제 세일해머의 도표와 같이 독자와 본문 그리고 본문의 세계와 실제세계로 그 영향력을 가져오게 한다. 이것은 마치 본문을 관찰하고 그 본문을 해석하며 그리고 적용하도록 하는 자연스럽게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기에 탁월한 흐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러티브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진 창세기가 오늘날 내러티브로 설교하고자 하는 설교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저자는 내러티브 설교에서 구어체 스타일의 설교특징을 정리해준다. 그중에서 몇 가지 도전을 주는 특징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단문을 사용하고 복문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짧고 친근한 단어 사용하라는 그의 조언과 중복이 될 것 도 같은 매우 유익한 조언이다. 설교의 지루함과 추상적인 문자들은 잘 정리되지 못한 중복되어지고 복잡하며 불편한 단어들의 연속인 것 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용되어지는 단어들은 어떠한가. 단순하며 친근하며 중복이 되지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내러티브의 구어체 스타일의 설교특징은 무엇인가. 능동태를 사용하며 그림을 묘사하는 것 같은 언어 사용과 현재형의 설명과 등장인물의 직접 인용과 명령보다는 직설법의 사용을 하는 것과 중요한 단어는 문장의 뒷에 오게하라는 것이다. 설교자들에게는 분명히 중요한 지침이 될 그러한 언급들이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에서 참으로 필요한 그의 언급이다. 청중들은 그림을 그리는 듯한 설명과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설교들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를 설교하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저자는 친절하게 언급해준다.
그다음 저자의 언급에서는 강해설교들을 펼쳐준다. 구어제 사용의 모델이 되고 내러티브의 주제와 목적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도움을 준다. 그의 강해의 특징은 물론 그리스도를 접목하고 드러내는 것에 점진적 구속사와 약속과 성취, 모형론, 유비, 통시적 주제들, 신약관련 구절, 대조이다. 이 모든 과정들이 완벽하게 그리스도를 드러내기에 합당하게 맞는 경우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강해의 강점은 다양한 자료의 언급이다. 주석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다양한 자료들은 설교를 풍성하게 하며 결국에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설교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특별히 대조에 있어서 이스라엘 에만 국한 되었던 말씀과 상황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역전이 되고 온 인류에 적용이 되어 가는가 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데 창세기의 본문은 매우 유익하게 된다.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넘어선 연결은 그리스도를 통한 대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저자는 설교 작업에 넣음으로 창세기의 본문은 더욱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의 성취가 완성된다. 그중에서 가장 선명한 대조의 작업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부분이다. 아브라함의 언약부분에서 이제 더 이상 시행되지 않는 할례의 부분은 그리스도를 통한 더 좋은 약속과 언약의 완성을 언급함으로 예수님을 설교하기에 좋은 언급이다. 이렇듯이 대조는 명확하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에 유익한 장치이다. 이렇게 다양한 자료들과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에 유익한 안내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자가 부록에서 친절하게 보여준 설교 내용에서의 한계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성경공부를 위한 자료들에 설교의 형태를 취하여진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날의 청중에게 들려지는 설교라고 생각하기에는 역시나 한계가 있다. 논리적인 전개와 내러티브적인 설교라고 할지라도 주석적인 자료에서 벗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저자의 마음을 설교에서 바라본다. 본문과 고대 근동의 자료에서의 중력은 역시 저자에게 자유로운 설교를 하도록 하기 에는 너무 강력한 것 같다.
창세기에서 예수님을 설교하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러나 좀 더 신중하고 안전하게 설교하도록 확신에 가득한 자료들로 저자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약속의 성취는 창세기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더욱 크신 계획과 사랑을 가르쳐 준다.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소중한 창세기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설교에 함께 동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