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 허탈한 복수의 끝에서 본 조씨고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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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허탈한 복수의 끝에서 본 조씨고아
‘조씨고아’는 원나라 극작가인 기군상이 쓴 작품이다. 당시 다른 민족에게 통치를 받고 있었던 한족 지식인들은 원나라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했다. 정치에도 쉽게 나설 수 없었으므로 이때 희곡이 크게 발달되었다. ‘조씨고아’는 동양의 햄릿이라고 불리며 드라마와 ‘천하영웅’ 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현재까지 연극과 경극이 많이 공연되고 있다. 올해 국립극단에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라는 연극이 공연되었다. 원문과 비교하여 줄거리 배치와 연출방법이 어떻게 다른지, 원대 잡극과 현대극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중국 원나라 때 기군상이 쓴 ‘조씨고아’와 연극에서의 ‘조씨고아’의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둘이 비교해보면 이야기의 초점과 배치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원나라의 작품에서는 제 3자가 등장하여 문신인 조순과 무신인 도안가의 앙숙 관계를 설명한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도안가 혼자 출연하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순과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설명을 한다. 이후에 조순이 등장하였고 도안가가 조순을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낸 일, 그리고 조순이 뽕나무 아래 굶어 죽어가던 영첩을 구해준 이야기가 쭉 나온다. 도안가가 조순을 죽이려고 하는 시도 중에 도안가가 영공에게 받은 서융의 개를 훈련시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는 책 이야기와 동일하지만 연출에서는 조금 달랐다. 사람이 개로 분장하여 훈련시키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더 명확하게 예측하게 해준다. 그리고 영첩은 개에 쫓겨 도망가는 조순을 위해 마차를 끌어주는데 원문에서는 화살을 맞는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극중에는 화살을 맞으며 끝까지 조순을 살린 인물로 등장한다. 이는 영첩이 은혜를 갚는 면과 조순의 선한 면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극과 원문이 가장 달랐던 점은 정영의 아내였다. 원문에는 ‘정영은 모든 일을 아내에게 설명해주었다. 그의 아내도 대의를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비록 아들을 사랑했으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이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라고 나온다. 하지만 연극에서 정영의 아내는 어렵게 얻은 늦둥이 아이를 왜 희생시켜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결국에는 자결까지 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책에서 이 대목만 보면 어떻게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쉽게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이런 의문을 조금 더 사람들에게 어색함 없이 다가가기 위하여 정영의 아내를 부각시킨 것이었다. 결국 정영 아내의 자결로 인해 정영의 복수심이 강하게 다져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정영이 정발에게 그림을 통해 모든 사건을 알려주는 대목에서 조금 다르다. 원문에서는 정발이 눈을 빛내며 정의로움을 찾고자 했고, 도안고가 간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망설임 없이 복수심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한 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정영은 정발이 믿게 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르기까지 한다. 이 대목에서도 정영의 아내와 같이 단번에 자신이 조씨고아라고 느끼는 것은 논리적인 흐림이 끊긴다고 보아 정발이 혼란스러워하는 연기가 더 길게 등장하였다.
또한 연극에서는 검은색 옷을 입은 제 3자인 묵자가 등장한다. 묵자는 무대 위에서 여러 역할을 담당하는데 처음에는 조순의 담벼락이었다가 후에는 죽은 사람들을 데려가는 망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대한 적은 소품으로 무대를 꾸몄기 때문에 죽음조차도 퇴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목숨이 끝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죽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묵자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극 중에 개입을 하지 않거나 아무 의미가 없었던 역은 아니었다. 도안고가 정영의 갓난아기를 조씨고아인줄 알고 세 번이나 땅에 내던져 죽였을 때 어김없이 묵자가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정영이 그 사람을 저지한다. 또한 극의 끝에서는 나비를 들고 와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부디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문화체육관광부 공식블로그 도란도란 문화 놀이터 “동양의 햄릿을 만나다, ”, 2015.11.12, http://culturenori.tistory.com/4348, (2015.11.26)
이란 대사를 통해 전체적으로 극에서 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결말에서 확연히 이 두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원문에서는 도안고가 잡혔을 때 그의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도안고가 오히려 정영에게 ‘미련하다’라는 말을 하며 ‘복수 할 때 그 기분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라는 말을 하며 복수를 실현한 정영을 무력화한다. 또한 원문에서는 조씨고아가 정영의 은혜를 잊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정영 또한 조씨고아의 미소로 그의 씁쓸한 마음이 사라진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복수 끝의 허탈함, 허무함만이 무대 위를 감싼다.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복수의 참혹한 결과를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조씨고아’ 연극은 한국에서 총 4 번 무대 위에 올랐다. 처음은 2006년 예술의 전당에서 극단 미추가 공연한 것으로 중국의 여성 연출가 티앤친신이 주도하였다. 그때의 연출은 한 역할을 동시에 여러 배우가 나누어 맡아 다양한 면을 분화하여 표현했다. 예를 들면 ‘집안을 몰살한 도안고를 멋있다고 여겨온 강렬한 조씨고아1’과 ‘아이같이 유약한 성품으로 도안고를 무서워하는 조씨고아2’가 각각 등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인공들의 내면의 분열과 갈등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동아뉴스, “‘동양의 햄릿’ 조씨고아, 국내 무대 늦깎이 첫선”, 2006.9.1,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70000000510/3/70070000000510/20060901/8345989/1, (2015.11.26)
그러나 인간의 존재라는 주제를 강조하여 원작을 재해석하였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지루하다는 평을 받게 된다.
2014년에 대학로에서 공연되었던 극단 해를 보는 마음의 ‘조씨고아’는 지금 현재 다시 무대 위에 올라왔다. 올해는 황준형 연출가가 주도를 잡았는데 연극의 내용은 원문과 매우 다르다. 무협활극으로 꾸민 이 연극에서는 결말에서 조씨고아가 도안고 또한 자신의 아버지를 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조씨고아가 복수를 다짐한 것은 같지만 신의와 화합의 의미를 더하여 도안고를 자신의 아버지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사적인 내용도 다르지만 당시 중국 원나라 잡극처럼 다양한 퍼포먼스로 구성되어 중국의 무협액션 비중이 꽤 큰 공연이다. 화이트 페이퍼, “비극과 액션의 조화, 몰입도 높은 ‘조씨고아’”, 2015.11.17, http://www.white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020,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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