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 독서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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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의 모더니즘과 일상사
- 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
Ⅰ. 1920년대 조선의 사회적 상황
1919년 31 운동 이후로 일제는 우리민족을 회유하기 위해서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통치 방법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 무단통치 시기에는 문학작품과 신문에 대한 검열이 매우 엄격했지만 강력한 항일운동이었던 31운동으로 인해 문화통치로 바뀐 후에는 문학과 신문 모두 약간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제하에서 언론이나 문학을 통해 직접적으로 항일운동을 하기는 불가능했다. 이것이 만문만화의 등장배경과 관련이 있다. 일제의 검열과 사상탄압을 피해서 우회적인 방법을 찾다 보니 만문만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1920-3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만문만화를 통해 당시 조선사회를 알아보겠다.
Ⅱ. 경성을 통해 바라본 조선의 모더니즘
“안석영의 만문만화를 들여다 보면 식민지 시대의 조선의 모습이 보인다. 밀려오는 근대와 자본주의를 마음껏 누리고 싶지만, 식민지라는 억압적인 상황에 묶여 있었던 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을 잃지 않고 날카롭게 풍자한 만문만화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1. 소비중심의 근대도시 ‘경성’
경성은 청계천을 경계로 해서 남촌과 북촌을 나뉘었다. 남촌은 오늘날의 충무로나 명동지역으로 당시에는 일본인 상가들이 밀집된 곳으로 근대적 상품과 화려한 건물로 둘러싸인 근대 도시였다. 그에 반해 북촌은 조선인 상가가 주를 이뤘고 남촌에 비해 아직 전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렇듯 경성은 근대와 전근대가 혼재하는 도시였고 사람들 역시 근대의식과 전근대 의식 사이 에서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오늘날에도 서구 문물에 대한 동경이 있듯이 당시 경성에 살던 사람들도 근대도시였던 남촌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사람들이 북촌(종로일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 대도시라면서 북촌에는 하수구가 말 아니고, 버스나 전차에서 조선노인은 어린 차장에게 꾸지람을 드러야 하고 가튼 돈 내고 드러가는데에서도 두루막이는 행세를 못하는 것도 조선의 표정이다. (… )
이러한 상황 속에 경성은 근대와 전근대가 혼재 하여 나타나는데 이는 어찌보면 필연적인 일인 것 같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도시 근대화 작업을 하여 근대도시 경성을 만들었는데 그 개발의 중심지가 남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개발이 덜 된 북촌에는 전근대적인 것들이 존재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경성은 하나의 도시이면서도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어 근대와 전근대가 혼재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적 근대성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예를들어「과도기? 망둥기?- 꼴불견 대회」 라는 그림을 보면 갓 쓰고 구두신은 사람, 갓 쓰고 자전거 타는 사람, 양장하고 고무신 신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게다 신은 사람 들이 보인다. 전근대적인 옷차림과 근대적인 문물이 뒤섞여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그린다.
(…) 다- 허무러진 초가집에서 나아오는 양장한 녀자! 자긔가 살고 잇는 그 집갑보다도 몇배나 되는 그 옷을 입고 굼주린 사람들의 누덕이 떼가 이 모진바람에 날리여 헤터지는 이 서울의 거리를 건일 때 (…)
위의 인용문을 보면 당시 모던 걸들이 다 허물어진 초가집에 살면서도 자기 집의 몇 배나 되는 양장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를 볼 때 당시 조선의 경제적 상황이 근대적인 문물을 수용하기에 매우 열악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물질적 조건이나 가치관이 근대문물과 빚어내는 부조화를 패션을 통해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