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해방공간과 1공화국 시기의 민족사적 과제를 통한 이승만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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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해방공간과 1공화국 시기의 민족사적 과제를 통한 이승만의 평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해방공간과 1공화국 시기의 민족사적 과제를 통한 이승만의 평가
1. 머리말
이승만에 대한 평가로, “한말 이래 풍운 속에서 반세기에 걸친 국제정세의 흐름을 꿰뚫어 보면서 국권상실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에 이르렀던 그의 거대한 발자취는 이제 우리의 역사지형상에 그 정당한 몫과 자리매김을 받아야 한다”라는 역사 재해석을 하면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 우리 대통령’으로 치장하고, “20세기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세계적 정치인 중의 하나”로 미화하고, 그의 북진통일론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런 인물을 말년의 실정을 꼬투리 삼아 ‘독재자’, ‘친일파의 비호자’, ‘부정부패의 원흉’ 등으로 매도하고 긍정적 부분에 대해 외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라는 극단적 미화론이 있다.(『조선일보』1995. 2. 7. “이승만과 나라세우기” 사설; 『조선일보』1995. 2. 5. “「이승만...」전 개막 대담” 이택휘정진석 교수)
『한겨레신문』(1995.12.18)은 학계에서 이승만의 재평가가 역사왜곡을 가져오는 부분을, 항일운동 주도론으로 이승만의 ‘외교독립론’ 설정, 그의 ‘용미론’이 나라세우기에 도움을 주었다는 해석, 그의 단선단정론이 국제정세를 꿰뚫어 건국의 초석이 되었다는 해석, 3선개헌과 부정선거 등이 자기 탓이 아니라 측근 탓이라는 주장으로 요약했다. 이승만은 비대해진 군부를 정일권파와 백선엽파로 양분시켜 서로 충성경쟁을 시키면서 자신에 대한 어떠한 도전의 씨앗도 없앤 점이나, 대통령 직선제를 위하여 족청계를 거느린 이범석을 기용해 원외자유당을 만들어 권력연장을 하고는 다시 이범석에게 칼날을 들이대어 그를 하루 아침에 무력화시킨 점이나, 미군들에게 ‘남한의 코브라’라는 악명으로 알려진 장택상을 국무총리로 기용해 부산정치파동을 맡긴 점 등은 그가 측근들의 농간에 놀아날 인물이 결코 아님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자기의 권력장악을 위해서 친일파와 손을 잡았고, 한민당과 연대하여 집권을 하고는 한민당과 결별했으며, 그 자신이 분단주의자였기에 철저히 좌우합작을 외면하였고, 또 다른 분단주의자인 조병옥과 장택상 등을 거느렸다. 그 자신이 허구적 북진통일론자였기에 평화통일론자였고 그의 정적이었던 조봉암을 숙청하였다. 그 자신이 철저한 반민주자였기에 극우테러단체였던 서북청년단을 비롯해 온갖 청년단을 거느렸고, 대통령이 된 후로는 국민회, 대한청년단, 학도호국단 등 관제조직을 만들어 전체주의를 정착시켰던 것이다. 그는 결코 사람장막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의 노선에 걸맞는 인사를 기용했을 따름이다.
또 일부에서는 국가사회주의가 쇠퇴하는 오늘날의 세계사적 전환과 북한에 대한 남한역량의 우세라는 현재의 결과로부터 40~50년 전 이승만이 택했던 노선이 결과론적으로 옳았다는 결과론을 편다. 잘못된 현재성의 강조는 역사현상의 설명이나 평가에서 필요에 따라 목적론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또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부인하여 역사현상의 과학적 설명을 거절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우리 현대사는 남과 북 양쪽에서 지나친 현재성의 강요로 인해 목적론적이고 결과론적인 설명과 이데올로기적 설명으로 가득차 있다. 따라서 역사의미에서 현재성을 강요되어야겠지만 당시의 역사과정, 역사적 흐름, 당대적 요구와 보편적 가치 등을 무시하고 전적으로 오늘날의 잣대를 소급적용하여 역사를 평가설명하는 결과론적 방법론은 거절되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으로 남한단정 수립, 북진통일론, 종신대통령제, 헌정유린, 독재정치 등으로 공인된 이승만을 부정하면서 복권을 시도하는 것은 우리 민족사를 또다시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이에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주로 민족사에서 핵심시기였던 해방공간과 1공화국시기를 통해서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해방공간은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느냐, 통일국가로 되느냐, 또 친일파를 숙청하고 일제잔재를 청산하여 민족정기를 굳건히 세우느냐 못하느냐 하는 등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취했던 이승만의 노선은 결코 당시 우리 민족사나 민중이 요구하는 노선이 아닌 외세의존, 분단, 반통일, 반민주 노선이었다. 이 시기의 결정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독립협회 시기의 긍정적 측면과 후기 해방공간과 제1공화국기와의 엄청난 부정적 측면을 서로 상쇄시켜 그저 무난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 시기의 핵심적 민족사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바로 이 민족과제를 구현하기 위하여 이승만의 노선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실천지향했느냐하는 것으로 평가기준을 삼도록 하겠다.
해방공간의 핵심적 민족과제는 첫째가 식민지 지배의 물적 구조를 바꾸는 것과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숙청이란 인적 구조의 바꿈을 통한 일제잔재의 청산이었다. 둘째는 외세에 의해 두동간 난 지리적 분단을 해소할 수 있는 민족통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셋째는 외세의 지배를 물리치고 민족자주성을 고양하는 반(反)외세 민족자주 구현이다.
또한 제1공화국 시기의 핵심적 민족과제는 이미 기정사실화 된 민족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 기반의 조성, 하나도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심화된 친일파 숙청 등 일제잔재의 청산, 민족자주화, 이념적 지향으로 내세운 민주주의 정착 등 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보편적 가치기준인 정권창출 과정의 정통성과 민주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20세기 중반의 세계사적 국가지향은 공화제이다. 공화제의 핵심은 국민 일반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정권이 창출되는 데 있다. 해방공간과 제1공화국시기의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거니아 초역사적인 정권에 대한 평가기준이기도 하다.
2. 해방공간기 내재적 역사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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