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신학 해밀턴 알타이저 루벤스타인 죌레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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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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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신신학 - 해밀턴, 알타이저, 루벤스타인, 죌레, 브라운)
사신신학의 대표신학자들
윌리엄 해밀턴
해밀턴은 독일의 죌레, 브라운 등과 같이 미국에서 하나님의 죽음 신학 운동의 세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해밀턴은 그의 생각을 어디서나 조직적으로 발전시켰다. 해밀턴은 주로 자기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서전적인 자료들과 희랍 비극 및 세익스피어 극작과 다른 문학 작품들에 대한 해석에 의지하고 있다.
그의 저서「기독교의 새로운 본질」에서 그는 성숙한 시대의 신학, 새로운 신학을 쓰려고 했다. 그는 정신적인 삶, 실로 하나님이 죽은 상황으로 경험되는 오늘의 우리의 상황에 있어서 오늘의 지배적인 신학에서 이해하는 하나님 개념이 오늘의 우리에게 타당성을 주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성숙한 시대에 적절한 신학적 스타일, 신학의 구조와 형태에 있어서 그리고 언어의 어조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오늘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첫째로 신학의 구조와 형태에 있어서 해밀턴은 바르트나 틸리히등과 비교하여 약간 비조직적 신학, 단편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이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조직적 체계보다는 단편적 진리, 즉 전체진리를 포기하고 삭감된 작은 진리에 관심을 갖는다. 둘째로 새로운 신학적 스타일에 있어서 구조와 형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신학의 언어의 어조’, 즉 ‘보고 믿는 것은 말하고 전달하는 방식’이다. 해밀턴의 신학의 어조는 겸손, 주저, 자신없는 말투, 한 마디로 단편성과 흡사하다. 그것은 그는 우리의 상황을 밤, 정신적 혼돈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겸손한 어조를 요구한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위한 기독교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밀턴은 믿는다. 「The New Essence of Christianity」, p.31.
■ 하나님의 죽음
해밀턴은 오늘 하나님 앞에 있는 인간의 상황은 사람들이 ‘신성’, ‘거룩’등에 당황하고 있고, 불만족스럽고 견딜 수 없기까지 한 것으로 본다. 현대 신학자들이 말하는 ‘거룩한 하나님’, ‘신적 하나님’ 능력있는 듯이 보이는 하나님을 거부한다. 그러한 신성은 부재하며, 상처를 주는 현재, 즉 세계로부터의 부재, 또는 사라짐이며, 개인의 마음 속에 있는 ‘압력’ 또는 ‘현재였다. 하나님의 죽음이란 표현에서 해밀턴은 “하나님의 비존재에 대한 신앙"을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밀턴이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물러났다‘, ’그는 부재하다‘ 아니 ’그는 죽었다‘ 고 느끼기까지 하는 점점 커가는 의식에 대해서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의 세계로부터 물러갔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은 해밀턴에 의하면 다만 우상들, 또는 세계를 만들고 어떤 사람을 선으로 선택하고 다른 사람들을 저주로 선고하는 인격으로서 본 하나님, 하늘에 있는 객관화 된 하나님의 죽음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전통적인 하나님의 형상들의 어떠한 것도 긍정할 능력의 죽음, 가장 우수하고 체계화된 신학자들에 의해서 묘사된 하나님이다. 전통적 하나님이란 해밀턴에 있어서 어거스틴-종교개혁, 파스칼을 거쳐서 오늘의 바르트의 신학을 지배하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하나님의 그림이다.
■ 새로운 하나님 이해의 요구
해밀턴은 오늘의 하나님의 이해, 전통적인 하나님의 그림은 과거에는 그 당시 문제들에 대해 해결을 하였는지는 몰라도 오늘날 요구하는 하나님 이해에는 타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러한 전통적인 하나님의 그림이 오늘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구멍이 뚫렸다고 보는데 그것은 바로 ‘고난’의 문제이다. 해밀턴은 전통적인 하나님 이해는 이 고난의 문제를 책임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물론 전통적 신학이 이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고난의 지옥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잃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면 오늘의 하나님의 죽음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어야 할 것인가? 해밀턴은 까뮈의 희곡 《전염병》속에 나오는 의사 리우와 신부 파넬로 사이의 대화에서 이 하나님을 암시한다. 《전염병》에서 까뮈는 다만 고난의 문제의 참된 공포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대담없음, 또는 쉬운 대답들에 불만을 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어떤 깊은 암시를 주었다.
요점은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경험들은 전통적인 ‘절대, 전능한 하나님’은 이해하기 어렵고 또 만나기 어려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해밀턴은 이 전능한 하나님 대신에 무력한 하나님, 사람들과 같이 고난을 받는 하나님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본다.
■ 무력한 하나님
하나님의 죽음에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이것을 넘어가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해밀턴에 의하면 단순히 하나님의 현재를 강력하게 긍정하는 것으로서는 이 상황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오히려 문제의 포기와 같다. 해밀턴은 하나님의 죽음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지시함으로써만 이 상황을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전통적인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고 무력한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는 본회퍼가 《옥중서간》에서 제시한 고난받는, 약한 하나님을 가리킨다. 오늘 성숙한 시대의 사람들, 하나님의 현재를 느끼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하나님은 ‘약한 하나님’이다. 해밀턴에게 있어서 이 약한 하나님, 고난받는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날 요구되는 하나님은 추상적 초월이나 신성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주 예수 안에서 비로소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본다. 그것은 능력과 권세와 지배와 모든 요구를 거부하고 스스로 세상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허락하는 하나님이다.
■ 낮아지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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