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

 1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1
 2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2
 3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3
 4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4
 5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윤리
-Biblical insights of Theology of the Environment
20세기가 개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문화와 환경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환경문제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문제들이 치우가 어려우며, 우리가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환경에 관한 다양한 시각들과 관점들을 배우고 생각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라 생각한다. 과제를 위하여 책을 손에 넣었지만 단순히 과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지식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많은 도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독서 추천 목록에서 내가 선택한 책은 바로 『환경신학』이라는 책이다. 환경이라는 문제를 종교적으로 본다는 것이 어쩌면 환경에 대한 협소한 이해를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종교인으로서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인 환경문제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의 실천의 영역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신학』이라는 책은 생태학의 원리를 성서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특별히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한 기독교인으로서 환경문제의 원인이 기독교적인 전통적 인간중심적 사고라고 보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한 책임의식과 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볼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켄그나나칸은 먼저 기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어거스틴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창조라는 창조론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그분이 만물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것들을 주관하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인간은 창조물을 보호하는 데 일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물이 스스로를 지태할 수 있게 정하셨다.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다고 할지라도 자연의 구원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그리하여 생태학적 무관심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현대의 환경신학자들에 의해 강하게 비판되어지고 있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먼저 제 1장에서는 생태와 환경에 대하여 설명한 뒤 왜 환경신학인가 묻는다. 이에 대해 환경신학은 환경적, 생태학적 논점들을 하나님과 관련해 다루는 학문이며, 두 가지 차원의 관계 -인류와 세계와의 관계를 연결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답한다. 2장에서는 환경신학을 위한 배경으로 심층생태학을 비롯해 칩코 운동에 대해 설명하는데 생태윤리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도 있어서 반가웠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심층생태학을 내세운 내스는 환경에 대한 평범한 자원보호론자의 견해, 즉 자연을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가치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견해는 너무 ‘얕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심층생태론은 환경문제에 대한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며 얕은 접근법을 넘어서며, 포괄적이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세계관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성서 신학자들이 볼 때 심층생태론이 지닌 강점은 그것이 철학적 혹은 종교적 가정, 믿음 체계, 그리고 가치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이런 심도 있는 질문 과정은 그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쟁점들에 대한 단순히 피상적인 제안들을 넘어서게 해준다. 칩코운동은 수업시간에도 다루었듯이 여성들이 나무를 껴안음으로써 엄청난 훼손을 막은 운동인데 책에서는 이러한 칩코운동이 대중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대중들의 환경운동은 자연의 훼손이라는 문제들을 폭로하며 그로인해 부유한 서구 국가들의 자연 훼손을 감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중지시켰다고 말하며 큰 의의가 있음을 전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chapter는 8장이었는데, 여기서는 환경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다루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과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먼저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보면, 플라톤은 당대의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플라톤주의자들은 이원론적인 힌두교처럼, 영혼의 구원을 세계, 육체,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모든 것들의 불완전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혼은 궁극적인 최종 형상에 속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변화하는 세계는 영혼의 영구한 거주지가 아니다. 불완전한 육체는 사라지겠지만, 영혼은 불멸한다. 이처럼 강한 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자연 또는 세계에 대한 서구 기독교의 무관심을 초래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견해는 이어서 나타나는 여러 기독교 사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환경윤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이 인간을 다른 존재들에 대해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가를 설명하고자 했고, 그렇게 복잡한 질서를 가진 세계 안의 계층적 구조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따로 떨어진 존재들의 계층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연속성이 있었다. 인간은 이성적이며 다른 존재와 자연보다 우월하지만, 광물, 식물, 동물계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생태학적으로 이것은 타당한 구분이지만 생명중심주의자들의 승인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신학의 거의 대부분은 이들 두 가지 위대한 사상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영향들은 나중에 아리아족 후손들을 통해 힌두교와 불교 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성에 대한 태도가 분리주의적이든 실제 세계에 관여하는 데 적극적이든, 거기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의 미묘한 영향이 존재한다.
다음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살펴보면 아퀴나스는 신과 창조물 사이의 계층구조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계층구조 안에서는 창조된 존재에 대한 평가절하가 있을 수 없다. 각각의 창조물은 자신의 생명과 기능을 갖고 있다. 제 1원인이신 하나님이 창조 안에 배치해 놓으신 제 2원인들에 조차 강조점이 주어진다. 물질적 창조물들은 또한 거룩한 선함이라는 특권을 향유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아퀴나스의 계층구조 속에서 최고 위치에 있는 창조물인 인간을 섬김으로써만 가능했다. 이런 가르침은 인간중심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다. 높고 낮은 창조물의 계층적 배열, 신적인 선함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적게 공유하는 것, 그리고 지적인 본성이 물질적 자연보다 더 우월하다는 가르침조차도 존재의 이유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후 산업 사회의 착취 과정 중 나타나게 될 자연의 지배에 대한 강조는 이 관점에서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 기독교 윤리와 환경윤리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며 환경이라는 문제가 역시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고 이런 점에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근본생태주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chapter는 13장의 에코페미니즘이었다. 수업시간에 생태여성주의로 배운 내용들이어서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생소한 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배울 수 있었다. 에코페미니즘은 환경 운동의 맥락에서 나타난 주요한 연구 분야이다.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1974년 프랑스 작가인 프랑소와 도본느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는 자연에 대한 착취와 여성에 대한 착취가 모두 남성에 의한 가부장적 지배의 일부라는 믿음을 강조한다. 에코페이니스트들은 성서의 문화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로즈메리 루터는 하와의 창조 이야기와 이스라엘 율법은 여성의 종속이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상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확신한다. 남성은 우두머리로서 여성 , 노예, 동물, 토지 보다 위에 있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착취가 이런 공동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가부장적 구조가 계층주의적 사고를 초래했고, 그것이 남성에 의한 지배로 이어졌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자연에 대한 지배는 지배를 가르치는 사회에서 시작되며 따라서 바로 그 사회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서구 기독교를 거부하고, 자연에 경외를 표하는 종교들을 신봉한다. 인도의 아루나 그나나다산은 인도인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본질적으로 매우 가부장적인 인도 문화는 여성을 출산과 자녀 양육이라는 전통적인 책무를 통해 종속적인 역할로 격하시켰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여성과 창조물에 대한 학대의 원인이 되었다. 인도인들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여성은 출산할 수 있고 새로운 생명에게 젖을 먹일 수 있으므로, 또한 그들은 전통적으로 천연자원의 고갈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온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임무는 자식들을 돌보고, 물을 찾고, 가축의 요구를 채우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제한을 가했고, 그들을 자기 가족의 불확실한 생존을 위한 볼모가 되게 하고 길들여지게 만들었다. 또한 이것은 여성과 자연을 천하고 저급하며 타락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기초가 되었다. 인도의 종교는 이런 학대를 마치 신에 의해 합법화된 것처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아루나 그나나다산의 주장을 보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하였다. 남성들이 세계를 지배하였지만 그 안에는 여성들의 봉사와 헌신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여성의 지위와 여성에 대한 대우가 상당부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