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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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금의 문화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소금의 문화사
서론
우리가 공기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공기의 가치를 모르듯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지금은 겨울에 눈이 쌓이면 길바닥에 뿌릴 정도로 소금의 값어치가 떨어졌지만 소금이 흔하게 된 것은 아주 최근, 20세기에 들어선 후의 일이다. 이전에는 아주 드물었고 귀했으며, ‘백색의 금’ 취급을 받았던 것이 소금이다. ‘소금이 돈이자 권력’인 시절이 분명 있었다. 고대 이집트 미라의 방부제에서부터 역사상 가장 장대한 건축물인 만리장성의 축조 비용이 소금에서 나왔고, 미국의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소금은 역사의 획마다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인류의 역사는 소금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경시대 소금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상품이었으며¸ 로마시대에는 소금이 일부 상인이나 관리에게 독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칙령이 시행되었다.
소금의 수요는 무역로를 개척하였으며, 그 가치는 전쟁을 유발했고 또한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유럽인의 신대륙 발견이 소금으로 인해 가능했으며 프랑스혁명의 최초 원인도 소금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석유채굴 역시 소금 채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소금은 ‘인류사를 만든 황금’이다. 이렇듯 소금이라는 작은 물질이 인류의 거대한 역사를 움직이는 수레바퀴 구실을 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본론
소금은 고대로부터 상품이었다. 소금은 우선 음식에 사용되었고, 그 다음은 보존을 위한 용도나 여러 분야의 산업에 이용되어 왔다. 소금이 산업 광물로 처음으로 중요하게 사용된 것은 멕시코와 페루에 있는 에스파냐인들의 광산에서 은을 채수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소금은 악천후가 염전의 일년 치 생산을 망쳐버릴 수도 있었으므로 엄청난 가격변동을 겪곤했다. 때로는 운송료 부담만 안겨주는 값싼 것이기도 했고, 때로는 갑자기 희귀한 산물이 되기도 했다. 소금이라는 것은 금과 맞먹을 정도로 귀한 물건이어서 소금의 제조와 유통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곧 강력한 권력과 재력을 소유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소금의 역사는 인류 대부분의 역사에서 정치와 문화, 정신사의 흐름에 비슷한 궤적을 그리면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금으로 고기와 생선을 저장한 최초의 민족은 고대 이집트인이다. 그들은 소금을 이용해 미라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저장 기능과 방부제 역할 덕분에 소금은 서양에서 항구불변의 상징으로 통한다.
로마 시대 이전에는 소금은 꽤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었다. 할슈타트에서는 기후가 건조해져 채염이 촉진된 기원전 1000년경부터 암염광을 개발했다. 기원전 9세기부터는 대서양 연안 지역의 기후가 습해지자 할슈타트에서는 소금을 얻기 위한 원료로 소금물을 이용했는데 이것은 로마인들이 발견한 방법이었다. 소금으로 인해 로마는 ‘remuneration’(여기에서 ‘salary’라는 말이 파생됐다)이라는 보수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급여(salaire)라는 말이 소금(sel)에서 유래되었다. 로마병사들은 급여의 일부로 일정량의 소금이나 살라리움 salarium(소금배급 혹은 소금을 사기위한 돈)을 받았는데, 그것이 현물보다 돈으로 지급되었을 경우를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정규적인 임금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 당시도 소금은 화폐적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중요한 필수품의 하나였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증명되는 셈이다.
중국이야말로 소금사의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두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즉 사회적인 면에서는 다단계 천일제염법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했다는 점이고, 또 국가적인 면에서는 특화된 독점 행정, 즉 염세 제도를 시행했다는 점이다. 기원전 7세기쯤 쓰여진 ‘관자’에 보면 소금에 대한 국가관리를 주장한 이후 진시황과 한나라는 소금과 철의 전매제를 실시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000년부터 소금을 생산했다. 가장 오래된 소금 산지는 쓰촨 지방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이때부터 벌써 야채를 소금에 절인 음식을 즐겼다. 절인 야채가 훗날 ‘쓰촨 요리’라는 중국의 대표 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은 중국에서 본 소금에 대한 이야기를 곳곳에 담아내고 있다. 하얀 소금언덕으로 며칠간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들, 중국 황제가 소금으로 세입을 얻는 방법, 중국의 제염법 등은 소금 매매를 좋은 돈벌이로 여기고 있던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을 게 분명하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찮은 한 지역에 불과한 비위생적인 늪지대에 사는 주민들의 은신처가 어떻게 으뜸패로 돌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늪지대가 소금 생산지역으로 변하자 으뜸패는 하나의 커다란 영향력이 되었다. 그 후 베네치아는 소금에 대한 지역적인 생산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곧 경쟁상대인 외부 생산지들을 점령하자 영향력은 제국의 수준으로 탈바꿈했다. 어떻게 보면 소금은 근대를 탄생시킨 씨앗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금의 생산과 무역은 한 나라가 한 가지 기본적인 물품을 독점하는 식민지 유형의 경제발전 모델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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