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기원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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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냉전의 기원에 관한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냉전의 기원에 관한 고찰
-목차-
1. 머리말
2. 정통 학파
3. 현실주의 학파
4. 수정주의 학파
5. 후기 수정주의 학파
6. 맺음말 - 냉전의 기원에 관한 책임 논의
1. 머리말
1945년 이후 냉전이 고조되면서, 많은 역사학자들은 냉전의 원인 규명과, 미국과 소련 양 국가의 냉전에서의 역할을 평가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이러한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미국이 과연 냉전에서 승리한 것인지, 또한 냉전의 종식이 지닌 의미 등, 냉전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연구사가 오래된 것은 1940년대 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냉전의 기원론에 관한 문제이며, 많은 학자들이 이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계속해 오고 있다. 논쟁의 초점 역시 냉전의 시작과 그 불가피성, 미국과 소련의 대외정책의 성격, 냉전 초래의 1차적 책임의 소재와 그 비중의 문제 등 여러 가지였다.
사실 냉전은 미국과 소련의 긴장관계에서 시작되어 군비경쟁을 야기 시키고 제3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직. 간접적으로 관여 하면서 1990 년대에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기까지 50여 년간 지속되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 러시아의 전성기를 이끈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대제 (영어식 발음인 피터 대제, 피터 1세)는 킵차크 칸국의 지배 때문에 서유럽과 교류가 단절되어 중세 수준의 문화에 머물러 있었던 러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급진적인 서구화를 밀어붙인 지도자다. 지나친 서구화의 반발로 여러 번의 정변이 있었으나, 모두 피의 숙청으로 마무리했고,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대승해서 변방의 국가였던 러시아가 이후 서유럽에 주요 정치세력으로 당당히 등장할 수 있게 한 사람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훗날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비견되는 인물. 스탈린이 존경한 사람이기도 하다. 표트르 대제 사후에는 또 다시 러시아는 유럽의 변방에 머물렀다. 오죽하면 영국은 일본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까지 러시아가 그토록 바라던 부동항을 막기 위해 극동아시아에서 일본을 지원하여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봉쇄하는데 성공하였으며 러시아는 일본과의 해전에 패하여 사할린섬을 일본에 내주는 굴욕을 맛봐야했다. 그 후 러시아는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왕조는 멸망하고 소비에트로 나라 명을 바꾸었다. 그 후 소비에트는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주위의 약소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벨루로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조지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들을 흡수병합 하면서 연방 국가를 만들어 세력을 키웠고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동독, 북한 등을 공산화 하면서 동맹의 관계를 유지하자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긴장하면서 이른바 도미노 이론( 한 나라가 공산화 되면 이웃나라도 공산화 된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냉전의 발단이 시작 되었다.
이 같은 연구에 관하여 학계에서는 대체로 4개의 학파로 나뉘고 있으며, 그 성격도 각기 다르다. 가장 우선 대두된 정통주의 학파를 비롯, 현실주의 학파, 수정주의 학파, 수정주의 학파(또는 신좌파), 후수정주의 학파가 그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냉전은 1992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으나, 현재까지도 그 영향과 여파는 잔존하고 있으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으로서 한번쯤 냉전에 관한 상세한 고찰은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여러 학파의 요지를 학자 별로 정리하였고, 보고서를 쓰면서 본인의 냉전의 기원론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2. 정통학파(Traditional School)
이는 냉전에 관한 연구의 최초의 시기 것으로서,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이루어진 냉전에 관한 연구의 대다수를 말한다.
정통주의 학설의 인식의 기초를 마련한 것은 1945년 영국 처칠 수상의 “철의 장막(iron curtain)” 연설이었다. 처칠은 이 연설에서 ‘동유럽을 가로질러 내려진 이 장막 뒤에서 세계정복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을 서방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1947년 트루만 대통령은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하여, ‘소련이 동부유럽과 중동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 침략과 압력을 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압력과 침략에 저항하는 국가를 지원할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들 정통학파의 해석에 의하면, 냉전은 소련의 침략주의, 팽창주의 외교정책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냉전의 시작과 격화의 주요한 원인은 소련에게 있었다. 즉 소련의 전통적인 안보와 세력권의 향상에 대한 욕구 - 즉 제국주의와 범슬라브주의와 같은 - 에 새로이 나타난 공산주의 사상이 더해져서, 소련을 ‘세계정복을 꿈꾸는 야심적인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이 동유럽을 위성국화 하는 것을 이러한 의도의 하나로 간주했다. 특히 소련의 지도자들의 사상, 즉 공산주의가 냉전의 격화에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강조하였고, 이에 따른 소련 측의 제 협정의 위반과 국제적 문제에 있어서의 비협조적인 태도 등을 비난했다. 이에 반해 전쟁 직후 미국의 정책은 세계평화의 유지에 힘쓴 것으로서 소련의 그것과 대조를 이루었으나, 그 같은 미국의 대외정책은 소련에 의해 모두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소련의 침략적 팽창주의를 알게 된 미국 역시 소련의 세력확산을 막기 위한 방어적인 목적에서 대외정책을 강경하게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이 바로 냉전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1947년 케넌(George F. Kennan)이 제시한 봉쇄정책은 ‘소련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한, 강력한 정치경제적인 면에서의 봉쇄’ 였으며, 이는 전후 미국의 외교정책 설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이후 1960년대 미소간 대결이 완화되고 실시된 데탕트(detente)정책 역시 새로운 봉쇄정책의 하나로 등장했다. 정통학파 학자들은 미국이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소련은 전 유럽을 지배하였을 것이므로, 미국의 외교정책을 소련의 위협에서 서방을 지켜낸 정당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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