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 북조선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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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 북조선 해독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북조선 :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Ⅰ. 주요 내용 및 논지
1. 북조선을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역사가로, 북조선을 역사의 흐름 속에 놓고 봄으로 표면적인 관찰을 하였다. 또한 북조선의 역사는 북조선 자료, 미국의 북조선 자료, 중국 자료, 러시아 자료, 한국 자료, 미국 자료, 일본 자료 등 종합을 해야 비로소 연구가 가능하다.
이 책의 저자는 1985년부터 ‘유격대국가’로 북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을 내놓았다. 북조선 체제를 모델 분석 할 때, 사회주의 국가 모델, 유교적봉건적 왕조 모델, 유격대국가, 코포라티즘(corporatizm) 국가 모델, 전체주의 모델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모델은 기본적으로 가설이며, 이를 검증하는 기본 자료는 북조선의 공식 간행물이다. 일간신문이자 당기관지인 『로동신문』, 잡지이자 당기관지인 『근로자』를 가장 중요한 사료로 취급했다. 이 자료를 정독할 때,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와 비교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지도자의 계열, 파벌, 인사이동에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일재중 조선인이 북조선의 친족을 방문 관찰한 등의 다양한 내부 정보를 힌트로 삼는 것도 중요하다.
북조선을 연구할 때, 접근할 수 있는 자료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석명 등 고고학적 자료에 근접한 것에서부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등에서 정리한 시찰 결과까지 다양한 자료가 존재한다.
2.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북한에서 김일성의 역사는 순화미화되어 신화가 되었고 도덕적 규범인 거울로서, 북조선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기준이나 사상도덕의 모든 것이 여기에서 주어진다. 김일성은 거의 기독교적인 문화 속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고 청년 시절 조선공산당 일파인 서울-상해파에 접근하여 최초의 정치적 위상을 나타냈고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만주항일전쟁으로 김일성은 개성과 역량이 있는 간부로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 김일성은 중국인과 조선인의 일체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주장을 했고, 이는 정치적 성숙성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의 6사는 조국광복회의 조직사업을 구체적으로 전개했고 1937년 6월 4일 보천보 공격에서 승리하며 조선인의 반일 의기를 높였다. 1938년부터 유격대에 대한 진압작전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일본군의 추적을 따돌리며 눈속을 행군하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김일성 부대는 선전했으나 일본군의 압박이 심해져서 부대를 전부 데리고 소련령으로 들어간다는 결단이 내렸다. 1942년 2월 보로시로프에서 김정숙이 김정일을 낳았고 김정일은 유격대 캠프에서 자라났다.
동북항일연군 부대는 1942년 적군 88특별저격여단에 편성되었고, 김일성 외에 김책, 최용건도 중요한 직책에 있었으나 이 셋 중 김일성의 능력이 가장 뛰어났고 김책과 최용건은 김일성을 내세워 조선의 당 재건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북조선에서 공작한다는 것이 결정되어 김일성은 조선으로 돌아왔다.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탄생
해방 후 8월 16, 17일에 거의 모든 정치범, 특히 공산주의자가 출옥했고 민족주의자들도 행동을 개시했다. 소련은 북조선에 친소 정부를 만들고자 했다. 김일성은 국내파의 반대론을 누르고 북조선분국의 설립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만주파와 기독교가 함께 조선민주당을 만들어 내부에서 조정하려고 했다. 소련계와 연안계가 귀국하여 김일성을 지지하며 정상으로 올린 당의 모습이 갖춰졌다.
1946년 김일성은 정권의 정상이 되어 북조선의 모든 개혁을 자기 이름 아래 실행했다. 1946년 2월 8일 김일성 등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들이 최초로 실시한 것은 토지개혁으로 매우 급격히 이루어졌다. 북조선에서 당과 정부의 지도로 경제 건설에 전력을 기울였고 인민의 모범운동이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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