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을 본 후

 1  장미의 이름을 본 후-1
 2  장미의 이름을 본 후-2
 3  장미의 이름을 본 후-3
 4  장미의 이름을 본 후-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장미의 이름을 본 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장미의 이름을 본 후...
1327년 북부 이탈리아의 성수와 수도사가 맞이하며 대장장이 망치질 소리가 울리는 이상한 기운이 흐르는 수도원에 주인공인 윌리암 신부와 그의 조수이자 제자인 아드소가 들어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둘은 후란시스코파이며 그들이 방문한 이 수도원은 베네딕트파이다. 베네딕트파는 플라톤을 이어받은 기득권파이고 프란체스코파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어받은 개혁파이다. 여기서부터 그 두 종교의 대결이 암시한다. 예를 들면 베네딕트파에서 식사 시간에 한 수도사가 묻기 전에는 대답하면 안 된다. 웃어서는 안 된다. 품위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한 것과 나중에 서고에서 호르헤 신부와 윌리암 신부의 논쟁에서 웃음을 두려움을 없애며 이것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까지 없애는데 이것 없이는 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진다고 말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 대해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후란씨스코파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신앙에서 이성을 강조하며 웃음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대립의 양상은 철학적인 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철학적 논쟁에서의 후란씨스코파가 승리한다는 것은 기존의 교회 권위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베네딕트파는 끝까지 이 논쟁에서 양보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즉 기존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성직자의 청렴을 주장하는 후란씨스코파의 주장은 그것이 현실적이든 철학적이든 기존의 모든 교회 권력을 쥐고 이득을 보고 있는 주류 세력인 베네딕트파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후란씨스코파의 단기적 기간의 관점에서 패배를 어느 정도 예상하게 해 준다. 이런 대립은 실제 역사상에서도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보편 논쟁이다. 실제론과 유명론의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중세 초반의 교회의 철학은 신이라는 보편이 존재하며 개별자들은 모두 이 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실재론적 주장으로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주류 세력으로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중세 주류 철학을 해체하는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입장이 바로 유명론이다. 유명론은 보편이 뒤따른다라고 하여 잘못하면 신의 개념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다소 혁명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보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이름뿐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신이라는 것도 개념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없었으므로 중세 철학에 대해 상당한 위협을 가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본사 아델모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델모 수도승의 죽음은 수도사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동요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윌리암 신부는 이 수도원에 방문하자마자 이 죽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조사하였다. 윌리암 신부는 처음 간 수도원에서 화장실의 위치를 찾아내는 등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추구하고 합리주의의 신봉자였으며 나중에 그가 이단심문관을 행했었다. 그러한 그가 그 수도원에서 늙은 신부인 우베르티노를 만나게 되고 얼마전 사본사인 아델모가 열릴 수 없는 탑의 꼭대기 창에서 투신자살했음을 알게 되었다면 당연히 그는 그 진상을 파헤치려 들 거라는 건 이미 알 수 있다. 우베르티노 신부는 수도원에 악마가 있어서 아델모 신부가 죽었다고 하며 일곱 천사가 한 명씩 나팔을 불때마다 지상에서 재앙이 벌어지며 천사들이 나팔을 다 불게 되면 적 그리스도가 출현하고 세계 종말의 날이 도래한다는 묵시록의 예언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윌리암 신부는 수도원의 음식물 쓰레기를 빈민에게 버리는 그 탑에서 아델모 신부가 자살했다고 추정하였는데 최고의 그리스어 번역승이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번역하던 베난찌오 수도승이 돼지우리에 있는 피항아리에서 시체로 발견된 이후 이 사건은 다시 조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베르티노 신부는 묵시록의 예언대로 사건이 이루어진다며 예언을 다시 한 번 얘기한다. 그런데 죽은 두명의 수도승의 공통점은 모두 사본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윌리암 신부는 사본사 아델모가 주검이 되어 발견된 장소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수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눈 위의 발자국이었다. 그 발자국은 뒷발꿈치가 더 깊이 들어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들키지 않기 위해 뒷걸음으로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신발 자국 역시 사건에 단서로 남게 된다. 사본실에서 죽은 사본사들이 일하던 자리를 조사하던 중에 발견한 사실은 이들이 모두 희극을 번역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윌리암 신부는 호르헤 신부를 찾아가 조사의 협조를 부탁하려하지만 쉽게 도와줄 리 없었다. 그 이유는 호르헤 신부는 성직자는 웃어서는 안된다는 호르헤 신부의 주장을 윌리암 신부가 반대되는 말로 대항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윌리암은 또다른 실마리를 찾게 된다. 바로 베렝가 신부인 것이었다. 그가 호르헤 신부와 싸우고 사본실에서 아델모와 베난찌오가 번역하던 책을 보려하자 베렝가 신부가 그것을 다급히 숨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르헤 신부의 방해로 더 이상은 진전이 없었고 다른 곳을 찾게 된다. 그러던중 돌치노파이며 윌리암 신부를 죽이려다 실패한 살바토레 신부를 포섭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사본실의 책이 너무 적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탑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탑 속에서 그리스어 번역승이 번역하던 책을 찾고 주변을 살피다가 그는 레몬즙으로 쓴 암호같은 쪽지를 읽게되고 그때 수도승 베렝가가 그리스어 번역승이 번역하던 책을 가지고 도주하였다. 그래서 앗소는 베렝가를 뒤쫒다가 이름 모를 빈민가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윌리암 신부는 살바토레에게 아델모 신부가 사본을 번역사 베나티우스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자백한다. 그러던 중 베렝가는 죽게 되는데 묵시록의 예언에 따라 그의 혀와 손에는 검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이단 심문관인 베르나르 드 귀 신부가 옴에 따라 윌리암 신부는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명령을 받았지만 윌리암 신부는 이 사건에 이상한 점을 느껴서 수도원의 지하실로 가는 통로를 찾기에 이르렀다. 예배중 보게된 호르헤 신부의 옷에 묻은 먼지를 보고 윌리암 신부는 지하실로 가는 통로는 찾게 되고 그 지하실은 감추어진 서고로 가는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드디어 서고에 들어간 윌리암 신부는 그 서고가 기독교계 최고의 도서관이라며 감탄을 하던 중 미로로 되어 있는 서고에서 앗소와 길이 어긋나고 길을 잃어버리지만 우여곡절 끝에 빠져 나오게 된다. 하지만 서고에서 나온 윌리암 신부와 앗소는 앗소가 전에 만난 그 여인이 살바토레를 꼬신 마녀로 몰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로 마녀재판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일제시대 고문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일본인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고문을 통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낸다거나 혹독한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는 것처럼 이단심문관은 아주 심한 고문을 통해 그 여자가 마녀라고 자백하게 만들고 그들 스스로도 죄를 그냥 인정하고 고문받지 않고 죽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그런 재판인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앗소에게 그 여인이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윌리암 신부는 심문관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면 이단으로 단죄되기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일치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윌리암 신부가 이단심문관 시절에 금서를 번역한 마차를 끄는 시민이 화형을 당하려고 하던중 그의 결백을 주장하고 변호했지만 결국엔 베르나르 드 귀가 그 재판에서 이기고 그 시민은 화형을 당하고 윌리엄은 아비뇽으로 떠났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아무튼 윌리암 신부는 심문관의 판결은 인정하지만, 의문의 죽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발언을 하였기 때문에 심문관의 권위에 도전하였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약초학자 세베리우스 신부는 탁상공론중인 윌리암 신부에게 베렝가 신부가 죽기 전에 숨겨둔 책의 위치를 가르쳐주고 그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살해되게 된다. 그런데 세베리우스 신부를 죽인 말라키아 신부 역시 책을 읽다 혀와 손끝이 검게 변하여 죽었다. 그리고 이때부토 윌리암은 지금까지 죽은 4명의 신부중 에 3명이 혀와 손끝이 검게 변하여 죽은 것을 의심하게 되고 누군가가 그 책에 독약을 발라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서적을 찾기 위해 지하실의 서고로 가는 통로를 통해서 비밀스러운 방으로 들어가는 암호를 풀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 방에는 호르헤 신부가 있었으며 호르헤 신부는 윌리암 신부에게 그 의문의 책을 읽으라고 시켰다. 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이었으며, 의문의 죽음의 원인이 책 표지에 묻어 있는 독약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윌리암 신부는 장갑을 끼고 그 책을 읽는다. 장님이어서 보지 못하는 호르헤 신부는 윌리암 신부가 장갑을 끼고 읽는 것을 눈치채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가지고 사라졌다. 호르헤 신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의 표지를 먹으며 불바다가 되어가는 서고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억울하게 한 여인을 악마로 몰아 세운 이단심문관은 불안한 대중들의 기운을 피해 마차를 타고 도망가는 도중 마차가 전복되고 대중들은 살려달라는 그의 말을 무시한채 절벽 밑으로 마차를 밀어버린다. 여기서 그 당시 시민들의 생활을 알 수 있다. 수도사나 이단심문관 등 소수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려 한다면 소수의 힘이 막강하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당연히 다수의 반발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이치로 이단심문관인 베르나르 드 귀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남으로 해서 윌리엄 신부가 완벽한 승리를 한 해피엔딩이 되지는 않는다. 그가 제대로 해결한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희극편을 찾은 것도 아니고 그의 손으로 베르나르 드 귀에게 복수를 성공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은 실제론적 입장이 중세기간 동안에는 유지되다가 중세가 끝나면서 유명론의 입장이 경험주의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유명론이 승리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가 넓혀지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한다는 암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