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답사보고서 - 순수문학의 모던보이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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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인 답사보고서 - 순수문학의 모던보이 이효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문인답사보고서
순수문학의 모던보이 이효석
목 차
1. 조사 동기
2. 답사내용(조사내용)
2-1 이효석은 누구인가
1) 출생과 유년시절
2) 병과 사
3) 생활과 성격
2-2 유적지 및 기념사업
1) 유적지
2) 기념사업
2-3 이효석의 작품세계
3. 느낀점
1. 조사 동기
‘문인답사보고서’라는 과제가 처음 주어졌을 때는 우선 난감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지 1년 반이 지났고 콜로라도에 어떤 문인의 생가가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조사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김동인’에 관해 조사를 했다. 자료를 모으다가 문득, ‘왜 교수님은 단순히 문인을 조사하라고 하지 않고 문인답사보고를 하라고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주어진 정보만을 가지고 문인을 조사하기 보다는 ‘그가 생활했던 곳에 가 보면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 생각났다. 강원도는 내가 10년 넘게 자랐던 곳이고, 평창과 봉평이라면 여행 삼아 여러 차례 가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효석 생가나 문학관에 직접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그 앞을 지나치고 메밀밭을 지나가면서 문득 문득 이효석이라는 이름을 되뇌어 보았던 기억이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로, 유명한 소설책의 작가로만 알던 이효석을 더 깊이 알아가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2. 조사 내용
2-1. 이효석은 누구인가?
1) 출생과 유년시절
1907년 2월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본마을 창동리 서남쪽에 있는 성황당을 지나 봉평마을 건너 쭉 빠진 협곡의 마을인데 효석의 생가는 이 마을의 중간쯤 되는 우경산 밑이다. 뒷산은 둥그스럼하게 치달린 산으로서 산세가 우악하게 생겨 주변경관을 맑게 한다. 이 생가는 전형적인 산촌의 반가라 할 수 있어서 운치가 잘 어울린 집이다. 이 집에서 효석은 산촌의 자연을 뼈마디에 새기며 8세에 이르렀다.
1914년 8세때 외학을 하게 되어 봉평에서 100리가 떨어진 군 소재지 평창공립보통학교 (현 평창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평창에서는 하숙을 하였는데 봉평집에 다니곤 했다. 이때의 교통수단은 우마차 아니면 도보가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효석은 봉평과 평창 사이 100리를 거의 걸어서 다녔다. 그래서 그 길은 자연 집에서 나와 남안리 마을을 거쳐 봉평천(흥정천)에 다다르고 여기에서는 좌편 강변에 있는 동리 물레방아를 만나게 되고 그 다음은 봉평천 징검다리를 건너 봉평의 성황당을 지나면서 봉평의 본 마을 창동리에 들어와 상가와 주점, 즉 봉평장터 걸리를 뚫고 시내를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중 충주집(훗날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점)이란 주점도 지나왔었다.
봉평시내를 빠져나와서는 장평까지 20리, 노루목고개(메밀꽃 필 무렵 작품 속에 나오는 고개)를 넘게 되면 장평의 개울(동작품속에 나오는 개울)에 이르며 이 개울을 건너서는 장평 삼거리 (한길은 봉평으로 가는길, 한길은 강릉, 하길은 평창길)에 닿게되고 장평에서 대화까지는 30리, 하장평, 재산, 재재(고개이름)를 넘어 신리, 상대화리, 대화로 이어진다.
대화면의 대화거리는 곧 대화장터인데 이 거리도 효석이 걸어다녔던 길목이 된다. 대화에서 평창까지는 40리, 다시 이 길을 거쳐 평창 하숙집에 오게 된다. 6년 동안 효석은 이 100리 길을 왕래하였는데 그렇다며 효석은 이 길을 몇 번이나 걸어서 내왕했겠는가는 그 자신도 모르리라. 효석은 이 100리 길 속에서 자연을 배웠다.
절기마다 다른 분위기와 변화해가는 자연의 순환을 맛보게 되었다. 또 절기마다 하늘과 구름의 색깔이 다르게 변하였고, 바람결 또한 그렇게 변하며 불던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며 유년시절을 지내왔던 것이다. 후에 그의 작품속에 나오는 자연의 숨소리가 싱그러운 것은 이 유년시절에 체험하고 몸에 밴 소질에서 풀어져 나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효석은 외학을 하면서도 우등생으로 평창공립보통학교 6년간 과정을 전부 마쳤던 것이다. 여기까지를 유년기로 정의한다. 1920년(14세)에 효석은 청운의 꿈을 가슴에 싣고 더 먼 외학의 길을 경성으로 오른다.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현민 유진오를 만나게 된다. 처음은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아 곧 수송동 하숙으로 옮기고 그야말로 타관살이가 제대로 시작되었고 또 본격적인 공부생활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