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일생 계획 - 소명, 비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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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기 일생 계획 - 소명, 비전, 계획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목차
Ⅰ.
나의 소명
Ⅱ.
나의 비전
ⅰ) 목 회 관
ⅱ) 자비량 사역
Ⅲ.
장기 일생 계획 (1)
ⅰ) 사역 분야 계획
ⅱ) 학업 분야 계획
ⅲ) 영성 분야 계획
장기 일생 계획
Ⅲ.
장기 일생 계획 (2)
ⅳ) 가정 사역 계획
ⅴ) 인성
ⅵ) 지도력
ⅶ) 건강
Ⅳ.
맺음말
PART Ⅰ: 소명
(The Calling)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소위 말하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냥 집근처에 있던 서울 중앙 침례교회, 지금은 하늘 비전 교회에 다녔다. 가끔 교회에 가기 싫어서 딴 곳에 갔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서 무지하게 혼나본 기억도 있다. 나의 외가는 4대째 신앙의 집안이었고, 친가는 아버지만이 신앙을 가지셨다. 결국 나는 신앙에 있어서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나의 외할머니께서는 살아생전에 기도원 원장으로서 치유의 은사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나도 어렸을 적에 몇 번 볼 수 있었다. 방학 때면 늘 외가댁 기도원에 가서 놀고, 기도하고, 눈으로 기적을 보고, 또 몇 차례 병치레를 하면서 직접 체험을 했기에 점점 하나님이라는 분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커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으면, 으레 목회자가 될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장로교 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나와서 전도사 사역을 하던 외삼촌이 충성을 다해서 섬기던 목사님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목회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공부도 나름 잘해서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었던 나는 고1 장래 진로 계획에 건축사가 되어 교회를 짓겠다고 적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길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에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경기도에서는 명문 고등학교라고 하는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이 학교는 방학 때, 자유 시간을 주지 않고 학교에서 하는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방학 기간 내내 강제로 참여하도록 했다. 교회 수련회도 갈 수 없었다. 그런데 고@여름 방학 때 수련회가 너무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께서 다녀온 뒤에 책임을 지면되지 않겠냐는 말씀에, 마치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심정으로 수련회에 2박 3일간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찬양 팀 싱어였기에 열정을 다해서 찬양을 드리고 있었는데, 나를 기다리시는, 또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고, 또 탕자를 안아주는 아버지와 같이 푸근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중 @때에 방언을 받아서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 있었지만, 이것과 같이 강렬한 경험은 처음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입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고백이 나오고 있었다.
결국 그 때 결심으로 인해서 담임선생님과 다투고 19@@년 @@신학대하교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양위주로 편성된 학부 @학년의 수업들은 솔직히 재미가 없었고, 이 때는 놀러 다니기에 바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군대에 갔다 와서 복학을 했는데, 전공 수업들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열심히 했더니 성적도 잘나오고 하기에, 교만한 마음에 ‘아 나는 공부가 내 길이구나.’ 하고 마음을 먹고 교수가 되고자 했었고, 졸업 후 미국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졸업 후@년 뒤인 20@@년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그러다 20@@년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해 겨울 총회산하 군 복음화 후원회에 의해서 @@에 있는 @@포병 대대에 민간 성직자로서 담임 전도사로 파송을 가게 되어 휴학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지식적으로만 정체 되어있는 나의 신앙을 깨시기 위해서 한 가지 일을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암이라는 난치병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년이 넘는 시간을 항암투병을 했는데, 발견 당시 워낙 전이가 많이 되었기에, 의사들도 길어야 @년을 살지 못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게 완벽하게 고쳐주셨다.
이 때 나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못 다한 학업을 위해서 20@@년 재입학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자질이 부족한 것인지, 다시 여름 방학에 암이 재발했고, 정확한 검사를 위해서 수술을 통해서 조직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 한 달이라는 기간은 먼젓번의 경험과는 달리,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었고, 또 심지어 죽게 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감사하다는 고백이 나올 정도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신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