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합일적 사유모델(동양철학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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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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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천인합일적 사유모델
동양철학통사
1. 들어가는 말
2. 유가사회의 정초 - 물질적 조건
3. 천인합일(天人合一)론에 대한 인식론적 고찰
3.1 천인합일의 이해
3.2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천인상분(天人相分)
3.3 천인감응(天人感應)론 - 제한적 대립과 제한적통일
4. 나오는 말
* 참고문헌
1. 들어가는 말
중국 철학에 있어 천(天)과 인(人)의 관계는 고대로부터 매우 중요한 철학문제였다. 특히 유가(儒家)에서 천인합일론은 세상을 설명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절대 기준으로 모든 행위와 사유의 도덕적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천인합일의 개념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천인합일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 그 기저에 어떤 의식이 잠재되어 있는지 알아보겠다. 그리고 천인합일을 바탕으로 한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이 한대(漢代)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에서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유가사회의 정초 - 물질적 조건
서양에서는 근대사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했던 사적소유권이 중국에서는 한대(漢代)에 이미 확립되었다. 춘추전국시대 말기부터 국유 토지가 사유화되기 시작하였으나, 그때까지는 토지사유제가 제도로 확립되지는 않았고, 진(秦) 효공(孝公) 상앙(商) 변법에 의하여 정전제가 폐지되고 사유 토지가 합법화된 후에, 개인이 정부가 인정한 토지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한대(漢代)에는 토지의 매매와 겸병이 성행하면서 지주가 소유하는 토지는 갈수록 늘어나고, 토지를 잃고 유랑하는 농민(流民)이 갈수록 증가하는 양극분화가 진행되었다. 동중서 등 유생들이 한 무제에게 토지거래와 토지겸병을 금하고 정전제로 복귀하여 토지평균분배를 실현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인성,「儒중국의 토지 국유제 쇠락과 사유권 확장 과정 고찰」,『한중사회과학연구 제9권 제2호 통권20호, 2011년 7월, pp. 234 ~ 235.)
전국시대에 주(周)의 봉건제가 붕괴되고 사회적 대격변기를 거쳐 한대에 이르면 농민들은 자기의 토지를 자유의사에 따라 사고 팔 수 있었다. 또한 토지겸병(土地兼)도 가능하였다. 그 결과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농민은 땅을 팔아 소작인으로 전락하였다. 박상환,『고쳐읽는 중국철학 이야기』, 도서출판 상, 2011, p. 177.
중국 사회는 한(漢) 초에 이르면 봉건적 질서가 붕괴되고 토지의 자유로운 매매가 허용되는 ‘유가적 사회’가 정초된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부유한 집의 자식들은 교양을 쌓아 유생(학자)이 되고, 유생은 관료제에 수렴되게 된다. 이에 따라 ‘학자이면서 지주이자 관료인 계층’이 발생하게 된다. 이 계층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황제지배체제 하에서 권력의 한 축을 차지하였다. 황제지배체제 구조를 살펴보면 한 축에 황제가 있고 다른 축에 귀족이, 또 다른 축에는 학자-관료 계층이 차지한다. 이와 같은 삼각관계는 하나가 다른 하나을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하나와 연대하는 불안정 속의 안정된 구조를 형성한다. 박상환, 上同, pp. 178
한나라는 지식인(文士)을 어느 왕조보다 우대하였기 때문에 귀족화된 지식인이 많았지만, 제왕의 친구가 아니라 모두 충신으로 행동할 뿐이었다. 한나라는 교육과 경학(經學)을 중시했는데, 이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식인이 대를 이어 권력을 세습화 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 귀족으로 변신한 사족(士族)들은 기존의 귀족이나 신흥 사족과 복잡한 혼인관계를 통해 새로운 문벌을 형성했다. 이렇게 구축된 문벌은 남북조시대까지 귀족정치를 이끌어가는 핵심이 되었다. 민귀식, 「중국 전통지식인과 정치사회권력 관계에 대한 역사적 고찰」,『중소연구』(제36권, 제2호 ,
통권134호 , 2012) , p. 53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동기에서 동중서로 대표되는 한 대의 유생들은 한무제의 요구에 응하면서 이른바 천인삼책(天人三策)을 제시하고, 이 사상의 기초로 ‘천인감응(天人感應)’ 이론을 체계화시킨다. 박상환, 上同, p.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