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트 오르한 파묵(Ferit Orhan Pam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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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페리트 오르한 파묵 (Ferit Orhan Pamuk)
목차
1. 오르한 파묵의 생애
2. 오르한 파묵 작품과 작품세계
3. 오르한 파묵의 작품 사상
4. 느낀점

1. 오르한 파묵의 생애
터키의 소설가이며 수필가인 오르한 파묵은 1952년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파묵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터키의 명문 고등학교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이스탄불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한 인터뷰 기사(『파리 리뷰』 2005년 가을·겨울호)에서 건축공학을 택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우리 가문은 전통적으로 토목 관련 일에 종사했다. 할아버지 역시 토목기사로 철도 건설 일을 하며 많은 부를 일구셨다. 아버지와 삼촌들도 이스탄불 공과대학 출신이고, 나 자신도 당연히 뒤를 이어 토목을 전공해야 했다. 그러나 집안에서 나의 미술적 재능을 인정하던 터라 미술과 연관이 있는 건축공학을 전공할 마음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가족 모두를 만족시킨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3학년 때 “나사가 풀리듯” 그 동안 심취했던 미술에 갑자기 흥미를 잃고, 글을 쓰겠다는 생각에 건축공학을 포기하게 된다.
비록 중도에 포기했지만 건축공학과의 이러한 학문적 경험은 건축 설계도처럼 치밀하게 잘 짜여진 그만의 고유한 플롯 설정에 일조하였을 것이다. 파묵의 작품 전반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기능적으로 독립적인 건축 자재들을 정교하게 얽어서 건물을 시공하듯, 설계도와 같은 정교한 소설 구조를 세워놓고 소재와 에피소드를 엮어 소설적 허구를 완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매 작품마다 다른 양식의 플롯과 기법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건물마다 새로운 디자인과 공법을 적용하는 건축가의 정신에 비견할 수 있다. 오르한 파묵이 매번 새롭게 창안하는 소설의 구조, 그리고 그 구조에서 볼 수 있는 치밀함과 정교함은 그가 한때 수학하였던 건축공학과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그는 건축공학을 포기하는 대신 이스탄불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독서와 글쓰기에 힘을 쏟았다. 『검은 책 Kara Kitap』(현지출간1990, 국내출간 2007 )에서 소설 중간 중간에 모자이크 식으로 삽입된 다수의 길고 전문적인 신문 칼럼들에서 전공인 저널리즘과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눈Kar』(현지출간2002, 국내출간 2005)에서는 주인공이 신문기자로 사칭하여 취재를 하기도 하고, 신문사 사장과 그가 쓴 기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대학 졸업 두 해 전인 1974년 전업 작가가 될 것을 선언하였고, 이후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작가의 삶을 올곧게 유지해오고 있다.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은 전문 직업인으로서 글쓰기를 결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 말고는 인생에 경이로운 것이 없다. 글쓰기는 유일한 위안거리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쓴다” “남은 생애를 수도승처럼 방 한구석에서 (글을 쓰며) 보낼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글쓰기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또한 그에게 있어 집필행위는 그 자신의 존재양식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는 직장인이 회사에 출근하듯 매일 별도로 마련한 집필실에서 열 시간 이상을 글쓰기에 매달려왔다고 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자기표현의 방식이자 격정의 발로이며, 삶과 현실에 대처하는 몸짓이자 의미를 창출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오르한 파묵에게는 여기에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이라는 점 하나가 더 보태져야 한다. 최근에 그는 이 년을 주기로 작품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현재의 유명세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부단히 채찍질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소설가란 개미와 같은 끈기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는 사람이며, 마법적이고 몽상적인 상상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자신의 인내심으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고, 소설가의 자질로 끈기와 인내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철저한 근면성을 요구해왔다. 오르한 파묵은 “작가는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글쓰기를 해야 하고 “작가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첫째도 인내요, 둘째도 인내요, 셋째도 인내”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그가 세계 문학계의 거장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직업정신과 근면성 덕분이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얼마 전에 조국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던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일부 비평가들이 정치적으로 기소된 것 때문이라고 맹렬히 공격한 결정 속에 2006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위스 한림원은 프랑스 하원이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부인하는 것은 범죄라는 법안을 가결한 날 파묵을 수상자로 발표, 터키를 격노시켰다. 터키 내 언론의 자유에 대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에서, 파묵은 지난해 한 스위스 일간지에 제1차 세계대전 중 1백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에서 사망했으며 최근 수십 년간 3만 명의 쿠르드인들이 죽었다고 말한 뒤, “터키인의 기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54세의 파묵은 풍부한 제국의 역사를 통해 터키의 복잡한 정체성을 탐구한 소설들로 순식간에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현대 터키가 그러한 어두운 과거사 대응에 실패한 데 대한 그의 비판은 최근들어 더욱 더 그를 문학계와 터키 정부가 가입을 희망하는 유럽 연합에서 자유사상의 상징으로 변모시켰다. 올리 렌 유럽연합 확대 담당 집행위원은 파묵의 수상을 언론의 자유의 승리로 여기며 축하했다. ”오늘의 노벨상은 세계 문학계뿐만 아니라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도 좋은 소식입니다”라고 그는 성명을 통해 밝혔다.
역자에 의하면 그는 역량 있는 작가가 갖추어야 할 천부적 재능 외에도 탁월한 지적 수준, 통찰력, 감수성, 상상력을 겸비했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와 남다른 근면성이라는 자질까지 두루 갖춘 ‘우리 시대의 손꼽힐 만한 작가’라는 것인데, ‘생존하는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 ‘현대의 가장 독특한 작가 중 하나이자 최고의 소설가’라는 세계 언론의 격찬 속에서 그의 성가(聲價)는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하겠다.
2 . 오르한 파묵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