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작가와 벌의 언어와 나비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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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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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어령작가와     <벌의 언어와 나비의 언어> 
젊은 여성작가일 것이라 생각함지루하고 무거운 내용보다 산뜻한 수필을 남겼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Ⅰ. 서론 – 작가를 선택한 이유.type.type
33분 19초…
출생-사망1934년 1월 15일 ~ 학력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석사)단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직업문학평론가/비평가, 소설가, 작가, 수필가, 교육자, 대학 교수, 언론인, 사회기관단체인, 정치가Ⅰ. 서론 – 작가의 삶문화부장관
Ⅰ. 서론 – 작품세계「이상론」을 발표 -> 신진 평론가로서 가능성 보임「우상의 파괴」로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킴 -> 비평가로서 큰 활약김동리와 ‘작품의 실존성’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을 함현실참여논쟁에서는 문학의 순수성을 역설연작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간행
Ⅰ. 서론 – 작품세계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의 우상이라고 하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우리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고 한다.
Ⅰ. 서론 – 작품세계이 시대 최고의 지성’, ‘5000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로 칭송을 받지만 선천적인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일부에서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함.이어령 = 발견의 구라‘ "과학실험실에서 막 나온 것 같으나 그 발견의 힘을 현실로 바꾸거나 그것을 위하여 자기를 던진 적이 없다“ –작가 서해성
평론/평론집소설/소설집수필이상론우상의 파괴비유법론고해학의 미적 범주사회참가의 문학현대소설 60년저항의 문학전후문학의 새물결한국작가전기연구마호가니의 계절장군의 수염의상과 나신환각의 다리둥지 속의 날개무익조흙 속에 저 바람 속에신한국인축소지향의 일본인디지로그 선언편지성의 오솔길지성에서 영성으로Ⅰ. 서론 – 작가의 작품
Ⅱ. 본론 폭포수와 분수는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두 문화의 원천이 되었다고 홰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대체 그것은 어떻게 다른가를 보자. 무엇보다도 폭포수는 자연이 만든 물줄기이며, 분수는 인공적인 힘으로 만든 물줄기이다. 그래서 폭포수는 심산 유곡에 들어가야 볼 수 있고, 거꾸로 분수는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에 가야 구경할 수가 있다. 하나는 숨어 있고,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 있다. 폭포수는 자연의 물이요, 분수는 도시의 물, 문명의 물인 것이다. 장소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물줄기가 정반대이다. 폭포수도 분수도 그 물줄기는 시원하다. 힘차고 우렁차다. 소리도 그렇고 물보라도 그렇다. 그러나 가만히 관찰해 보자. 폭포수의 물줄기는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낙하한다. 만유 인력, 그 중력의 거대한 자연의 힘 그대로 폭포수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물이다. 물의 본성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것과 같다. 아주 작은 또랑물이나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나 모든 물의 그 움직임에는 다를 것이다. 폭포수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거센 폭포라 해도 높은 데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떨어지는 중력에의 순응이다. 폭포수는 우리에게 물의 천성을 최대한으로 표현해 준다. 그러나 분수는 그렇지가 않다. 서구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분수는 대개가 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분수들이다. 화산이 불을 뿜듯이, 혹은 로켓이 치솟아 오르듯이, 땅에서 하늘로 뻗쳐 올라가는 힘이다. 분수는 대지의 중력을 거슬러 역류하는 물이다.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고 부정하며 제 스스로의 힘으로 중력과 투쟁하는 운동이다. 물의 본성에 도전하는 물줄기이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천연의 성질, 그 물의 운명에 거역하여 그것은 하늘을 향해서 주먹질을 하듯이 솟구친다. 가장 물답지 않은 물, 가장 부자연스러운 물의 운동이다. 그들의 말하는 창조의 힘이란 것도, 문명의 질서란 것도, 그리고 사회의 움직임이란 것도 실은 저 광장에서 내뿜고 있는 분수의 운동과도 같은 것이다. 중력을 거부하는 힘의 동력, 인위적인 그 동력이 끓어지면 분수의 운동은 곧 멈추고 만다. 끝없니 끝없이 인위적인 힘, 모터와 같은 그 힘을 주었을 때만이 분수는 하늘을 향해 용솟음칠 수 있다. 이 긴장, 이 지속, 이것이 서양의 역사와 그 인간 생활을 지배해온 힘이다.폭포와 분수
벌의 언어와 나비의 언어탐화봉접(探花蜂蝶)이란 말이 있듯이 벌과 나비는 꽃을 찾아다닌다는 면에서 같은 짝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벌과 나비처럼 대립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벌은 꽃을 향해서 곧바로 날아간다. 그것들은 가능하다면 최단거리의 일직선을 택해 날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비는 그렇지 않다. 나비는 곧장 꽃을 향해서 나는 법이 없다. 그것들은 위로 아래로 혹은 좌우로 변화무쌍한 곡선을 그린다.벌이 꽃을 향해서 행진을 한다고 한다면 나비는 꽃을 보고 춤을 춘다고 하는 편이 어울릴 것이다..type
꿀을 따려는 목적은 다 같아도 이렇게 그 방법이나 태도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길로 갈라져 있다. 꿀을 따기 위해 일직선으로 난다는 것은 벌의 근면성을 상징한다. 한눈을 팔지 않는다. 오직 벌이 그 날개를 움직이는 것은 꿀을 따오기 위한 노동속에서만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꽃을 향해 날아가는 벌은 공장의 기계처럼 움직인다.그러나 하늘하늘 날면서 꽃의 주변을 맴도는 나비는 노동이나 근면보다는 쾌락의 상징으로 보여진다. 단순히 꿀을 따는 목적만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기보다는, 꽃 그 자체와 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언어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전달한다는 같은 목적이라 할지라도 벌의 언어와 나비의 언어는 서로 다르다. 꽃 그리고 꿀. 언어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다.일상적인 자연 언어나 과학적인 메타언어들은 벌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시인의 언어는 나비처럼 복잡한 곡선을 긋고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