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독후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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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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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작가 소개
이청준(李淸俊 1939~ )
소설가. 전라남도 장흥(長興) 출생.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였다. 한때 《사상계(思想界)》를 비롯한 문학잡지사에서 근무했다. 1965년 《사상계》신인작품 모집에 단편소설 이 당선되어 문단에 진출했고, 이 후 단편《임부》,《줄》,《무서운 토요일》,《굴레》등을 발표하여 작가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 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계속해서 《소문의 벽》,《등산기》등을 발표하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을 묘사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가리어진 진실을 탐색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밖의 주요작품으로 《조율사》,《이어도》등이 있으며, 창작집으로 《별을 보여드립니다》,《예언자》,《당신들의 천국》,《자유의 문》,《서편제》등 중장편집이 있다.
2. 작품탄생배경 및 역사적배경
* 유신체제와 1970년대 전반기의 사회정책
1970년대 전반기는 노동문제,도시빈민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가 분출하고 그것을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이 한국사회 각 부문에서 활성화되는 시기였다. 한국사회에서 유신체제는 사회문제의 생산명제에 입각할때, 사회구조를 강압적이고 배타적인 권위주의 형태로 유도하는 촉매작용을 했을 뿐만 아니라, 지정명제나 제어명제의 측면에서도 국가와 사회운동단체간에 심각한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사회문제로서 의미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말 삼선개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구상은 1970년대 전반기에 중대한 정치체제의 변화와 더불어, 한국의 사회구조에 대변화를 가져 왔고, 이것은 각종 사회문제의 생산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우선 1972년을 기점으로 볼 때, 1961~62년의 군정기간을 제외하고, 정부수립 후 제도적으로 확립된 형식적 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했다. 민주주의는 한국전쟁이라는 남북간 무력대결의 위기를 넘어서 생존했던 제도적 가치였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구축은 정치민주주의와는 결별을 고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하여 생성된 권위주의 체제는 사회문제가 새롭게 분출하고 있음을 알리는 기적소리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사회문제의 관점에서 본 유신체제의 성격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에 의해서 성립된 유신체제는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체제와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관료적 권위주의 또는 배타적 권위주의라고 불렀다. 우선 민중부문,곧 도시빈민운동과 노동자운동의 핵심세력이었던 도시빈민과 노동자계급은 정치적으로 심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후보를 두고 경쟁적으로 공직자를 선출하는 선거제도는 효율성과 선거부정 방지를 이유로 심한 제한을 받았다. 대통령선거는 직접선거에서 통일 주체국민회의라는 일종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바뀌었고, 국회의원선거는 중선거구의 채택으로 1구역에서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로 바뀌었으며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1/3을 지명할 수 있는 헌법을 채택했다. 그리고 노동자,농민, 도시빈민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문제를 문제로 지정하고 그것을 제어하는 정책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반정부활동으로 간주하여 국가안보 또는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탄압을 했고, 그들은 기본적인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는 고통을 경험했다.
또 하나는 유신체제 아래서 경제적으로 민중부문이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전반기에 있어서 경제정책의 일차적 관심은 총량적 경제성장이지,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사회문제의 발생을 완화하는 조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하류계급, 곧 노동자계급과 도시의 농촌에 거주하는 빈민의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산물인 국민총생산을 평등하게 분배받는 데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한국사회의 대기업진단인 재벌과 정부 고위관료들이 고도경제성장의 성과물을 독점했다.
마지막으로 유신체제는 기술합리성의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탈정치화 하고자 노력했다. 효율성, 합리성, 사회안정이 체제 정당성의 근거로서 민주주의를 대체하게 되었다.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의 역할은 극소화하고 정치사회의 운영책임은 경제관료, 기술관료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사회분업은 경제분업의 논리로 대체되었다.
유신체제의 출범은 한국의 강압적 권위주의의 시작으로 남미 권위주의체제의 성립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면서도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먼저 유신체제 성립 당시에 경제위기의 중후군은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1년에 1인당GNP성장률이 9.4%였는데 1972년에는 비록 낮기는 하지만 5.8%였다. 실업률은 1965년의 7.4%수준에서 오히려 1972년에는 4.5%로 감소했다. 수출성장률은 1971년의 22.6%에서 1972년에는 52.1%로 올라갔다. 둘째, 산업구조의 심화는 유신체제 선행하여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신체제 수립을 전후하여 중화학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을 계기로 하여 산업구조는 본격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셋째, 유신체제 이전의 사회운동이나 정치활성화 수준은 그렇게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다. 민중부문의 정치활성화는 1971년 이전에는 상당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1972년에는 전년도와 비교할 때 오히려 감소추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