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지러운 역사의 다시 보기 서비스 대한민국 양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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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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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어지러운 역사의 다시보기 서비스 2008 대한민국, 양반전
◎여는 글
어느 덧 2008년 겨울이 왔다. 올 2008년은 우리 국민들에게 어느 해보다도 더 다사다난 했던 해가 아닌가 싶다. 그 가장 큰 이유로 2008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새 정권이 개막을 했다. 꽁꽁 얼어붙은 어려운 경제를 타계할 새로운 메시아가 등장한 듯 전 국민의 지지와 기대는 실로 대단했다. 그런 기대와 설렘을 한 몸에 받고 등장한 이명박 정권. 그런데 기대가 컸던 탓일까? 아니면 그를 사람이 아니라 마치 난국을 바로잡을 비범한 영웅쯤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새해와 함께 시작했던 새 정권은 올 초부터 지금, 2008년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보냈던 성원과 기대를 즈려 밟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당선과 동시에 구성된 새 내각,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 라인을 비롯해 영어 몰입식 교육, 굴욕외교라 일컬어 졌던 한미 FTA 체결, 우후죽순으로 오르는 물가와 각종 세금들 등 서민을 위한 경제대통령이라 말했던 그가 집권 초라 할 수 있는 올해 쌓아온 일들은 “악”하는 소리를 절로 나오게 만든다.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믿고 투표를 한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의 시작일까? 물론 당선당시 그의 압도적 지지율이 말해주 듯 그의 공약이 과연 국민들을 위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 없이 국민들이 그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2007년 12월 “잘 살고 싶은” 국민들의 욕구를 해결해 줄 영웅을 갈망했을지 모를 국민들의 기대와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근본적인 문제의 시작은 무엇일까? 그것은 선거 개표가 끝난 후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상승을 달성한 대통령을 비롯해 그 주변 인사들까지 사회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인사들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시점에서 나는 조선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을 떠올려 보았다. 『양반전』 속에서의 양반의 행태와 모습이 신분제가 붕괴된 현대사회에서 당시의 양반이라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그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양반과 같은 신분을 얻고 싶어 하는 부자. 그것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꿈꾸는 지금의, 현대사회 속 시민들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조선후기에 쓰인 한문소설 『양반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당시의 혼란한 사회모습. 그리고 지금 그 소설이 쓰이고, 그 후로도 수많은 역사의 소용돌이가 우리 땅을 휩쓸고 지나간 2008년 최첨단 정보화 시대라 불리는 오늘에 이른 지금. 수백 년 전의 이 땅의 어지러운 사회 모습이 “지구촌시대”, “글로벌시대”, “초고속시대”와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쓰이는 오늘 속에서 애석하게도 그 역사가 재탕이 되고 있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박지원의 소설이 舊 『양반전』이라면 오늘날 사회는 新 『양반전』쯤 되는 것일까?
◎이야기하는 글
-『양반전』의 양반, 2008년의 양반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계기로 조선사회는 조선전기까지의 신분제 질서가 흔들리게 된다. 타고난 신분보다는 경제력을 통해 획득한 신분이 더 중요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또한 평민들이 조선후기의 산업의 발달과 생산력 증대에 힘입어 명분에만 얽매여 있던 무능한 지배층에 대한 비판의식도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배층이라 할 수 있는 양반들은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어떤 의지도 없이 부정부패만 일삼을 뿐이다. 이것이 조선후기의 모습이다. 그리고 『양반전』 속에는 그 당시의 양반의 모습이 어떠했는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은 무기력하며 아무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면서 신분을 상품화 하는가 하면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무단을 자행한다.
그 부분은 군수가 작성한 두 번째 양반매매문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 끄덩을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의 양반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은 잊은 채 얼마나 권력을 남용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증거였다. 덕을 쌓거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존엄을 받고 신분상승을 하고자 했던 부자가 양반의 이러한 행태를 보고 고개를 흔들며 결국은 돌아가게 만드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