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 문서 연구] 사해사본과 쿰란 공동체 7, 8장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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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해사본과 쿰란 공동체(7, 8장)-천 사무엘, 대한기독교서회
제 7장 사해사본과 구약성서
사해사본들의 발견이 구약성서 본문 연구와 본문비평, 그리고 성서 번역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1. 사해사본과 구약성서 본문
사해사본 중 구약성서로 여겨지는 것은 모두 202개인데, 대부분 히브리어 사본이지만 헬라어 사본도 7개 있다. 이 사본들에는 구약 39권 중 에스더서와 느헤미야를 제외한 모든 책들이 들어 있다.
사해사본의 발견 이전의 구약성서는 크게 세 종류, 즉 마소라 본문(MT)과 칠십인역(LXX)과 사마리아 오경(SP)이다. 마소라 본문은 895년의 필사본인 카이로 사본으로, 전 기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만 포함한다. 칠십인역은 기원전 3세기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사마리아 오경은 그리심 산에 거주한 사마리아인들이 보존해 온 오경만 포함한 히브리어 본문으로, 가장 오래된 사본은 13세기의 것이지만, 기원전 2세기 이전의 본문을 반영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사해사본 발견 이전에는 이 세 본문들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하기 어려웠으며, 본문비평을 할 때 마소라 본문이 선호되었다. 사해사본의 발견은 획기적인 연구의 진전을 가져왔다.
1) 마소라 본문의 정확성
사해사본을 통해 마소라 본문이 1,000년 이상 필사되는 동안 거의 정확하게 전해졌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1QIs a와 비교해 보면 차이는 본문 의미에 영향을 줄만한 것은 거의 없이, 철자와 문법 표현상의 사소한 것이었다. 이는 마소라 본문이 매우 정확하고 충실하게 필사, 전달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2) 칠십인역 번역의 충실성
칠십인역은 마소라 본문과 약 6,000군데가 다르고 이 중 약 1,900군데에서 사마리아 오경과 일치한다는 연구는, 칠십인역이 마소라 본문과 다른 히브리어 원문을 사용했다는 점을 밝혀내었으나 번역의 충실성은 의문시 되었다. 그래서 칠십인역이 때로 내용을 첨가하거나 생략했으며, 때로 원문을 바꾸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사해사본의 발견은 칠십인역이 마소라와 다른 히브리어 본문을 대본으로 삼았다는 확증을 갖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원문을 매우 신중하고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또 번역자들이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번역원리를 적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어, 칠십인역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칠십인역 번역의 충실성의 한 예: 출애굽기 1:5의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 혈통의 숫자를 75명으로 표기한 것인데, 4QExod a 역시 75명으로 되어있다. 또 칠십인역 예레미야서 본문은 마소라 보다 약 8분의 1 정도 짧은데, 4QJer b의 발견으로 실제로 짧은 히브리어 본문이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비교는 칠십인역이 히브리어 원문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과 번역 대본으로 사용 가능했던 다양한 히브리어 본문들이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3) 사마리아 오경의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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