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다다의 특수성과 출판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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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베를린 다다의 특수성과 출판활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여는 글

Ⅱ. 베를린 다다의 특수성과 출판활동의 등장

Ⅲ. 현실 참여 도구로서의 출판 활동

Ⅳ. 닫는 글

본문내용
베를린 다다의 특수성과 출판활동의 등장
휠젠벡(Richard Huelsenbeck)을 통해 다다가 베를린으로 전해진 1917년은 전쟁 직후 혼란 속에서 독일이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시기로 베를린 다다의 성격과 활동에 변화를 가져왔다. 지도층인 사회민주당(SPD)의 보수적 입장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 사회 계급간의 생활의 차이 등의 사회, 정치적 배경 속에서 취리히에서 반예술로 시작된 다다 운동은 독일에서 정치적인 맥락에 대한 언급을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18년 일어난 11월 혁명과 그 실패는 베를린의 급격한 사회혼란과 동시에 예술가들의 태도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1919년 1월과 3월 봉기에 참여한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이 이어지면서 예술가들은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독일의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의 관심은 사회로 돌려질 수밖에 없었고, 예술의 역할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의 의식은 1920년 일어난 ‘쿤스트룸프 논쟁(Kunstlump Debatte)’ 1920년 3월 15일 드레스덴(Dresden)의 쯔빙거(Zwinger) 화랑 앞에서 있었던 시위로 인해 총알이 루벤스의 작품 가운데 하나를 손상시키자 당시 드레스덴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표현주의 화가인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는 위대한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시위를 도시외곽에서 벌일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그로츠와 하트필드는 ‘쿤스트룸프 잡지’에 35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당한 시위 결과를 밝히면서, 인간의 목숨보다 예술작품의 안위를 더 중요시 여기는 표현주의 화가의 태도를 비판하였다. B Doherty,「The Work of Art and the Problem of Politics in Berlin Dada」,October 105,Summer 2003,p73-74.
을 통해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총알이 노동자들이 사는 빈민가보다 오히려 화랑이나 궁궐 혹은 루벤스의 걸작품들 속으로 날아드는 것을 기꺼이 환영한다’는 주장은 ‘예술을 위한 예술’과 부르주아 미학에 대한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의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혼란스런 정치 사회 상황 속에서 미학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예술은 무의미한 것이며,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혁명의 도구로서 그 형식과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의 태도는 정치, 사회 참여 입장으로 변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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