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의 역할과 쟁점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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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의 역할과 쟁점 사회철학적 관점에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회운동으로서의 평생교육은 성인교육의 뿌리부터 시작된다. 피터 자비스는 근대화시기에 성인교육의 출발은 ‘사회운동’임을 강조했다. 사실 성인교육은 계몽시대 전에 운동으로서 시작되었다. 켈리는 청교도주의를 성인교육의 초창기 형태의 하나로서 인식하였고 18세기 계몽운동이 시작되기 전에도 이미 성인교육은 영국과 미국의 커다란 사회운동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개념이 사회 전면으로 부각되게 된 계기는 ‘공교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계몽운동을 통해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교육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 시기는 공교육이 시작된 시기와 맞물린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공교육은 일과 사회체제의 발달로 인해 교육을 시킬 만한 제도가 가정에서 사회로 전가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터와 학습장이 분리되었다. 따라서 사회는 교육에 대한 요구를 배경으로, 공교육은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교육이 계몽운동으로 인한 지식과 인식의 변화를 충분히 대변해 주지 못했고, 사회 곳곳의 교육적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회운동으로서의 성인교육이 그 면모를 드러내게 된 본격적인 시적은 19세기에 이른다. 복음적인 열망으로 이 지식을 퍼뜨리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형태의 지식사회가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미국의 라이시엄운동 라이시엄 운동 : 조직적인 성인교육의 초기형태로 라이시엄(lyceum)은 1826년 조지아 홀브룩이 매사추세츠의 밀베리에 설립했는데, 라이시엄이라는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그리스의 젊은이들을 가르친 장소의 이름을 본딴 것이다. 홀브룩은 지방·군·주·국립의 단계별로 라이시엄을 설립하고 다시 이것들을 국제적인 조직으로 통괄할 것을 제안했다. 이 국제기구는 설립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라이시엄은 급속도로 팽창해서 1834년에 3,000개에 이르렀다.
(문화단체운동)이 일시적인 대유행처럼 번졌고, 그 이후에도 이와 같은 운동들이 유럽, 미국에서 계속 생겨나게 되었다. 자비스는 이 당시의 성인교육이 기존의 교육제도 밖에서 활동하고, 느슨한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돌발적인 행동이 가능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려는 속성을 가진다는 면에서 사회운동이라고 본다. 초창기 성인교육이 가지고 있던 이런 형태의 교육이 평생교육의 이념적 시발이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19세기와 20세기 초 성인교육이 어느 정도 제도화되면서, 대부분은 노동자운동이나 사회운동과 관련된 교육이었다.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그들만의 교육내용과 방법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성인교육은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해방운동과 민중운동의 성격을 띤다.
(2) 공교육의 대안으로서의 평생교육
계몽시대의 상징으로 근대 시대에 들어서 시작된 공교육은 많은 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에 필요한 구성원으로 적절하게 사회화시키는 중요한 기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공교육이 조직화되고, 국가의 개입이 더욱 강해지면서 공교육에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UNESCO 국제교육계획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쿰스는 이 같은 맥락하에 학교교육의 위기를 진단했고 공교육의 여러 가지 위기의 궁극적인 대안으로 평생교육의 개념을 지지 했다. 그 뒤 일리치는 공교육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학교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교육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꿈으로써 이러한 폐단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학습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그는 개별학습과 더불어 자율적인 공동체학습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학습공동체의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일리치의 탈학교의 주장은 이런 의미에서 평생학습의 또 다른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파울로 프레이리는 기존의 교육체제를 ‘은행저금식 교육’이라고 비판하면서 ‘문제제기식 교육’으로 전환될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진짜 ‘불순한’ 교육은 가치를 개입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가치를 배제하면서 현존하는 억압을 은폐하는 교육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민중들은 사회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개구리처럼 살아서는 안 되며, 우물 밖으로 나와 그 우물이 어떻게 생겼으며, 그 우물의 물이 어떤 물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의식화’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탈정치화되고, 탈국영화된 교육을 말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비판적 평생교육의 이론적 틀을 제공해주었다.
(3) UNESCO의 출범과 평생교육의 이념적 기틀 마련
평생교육의 개념을 가장 명확하고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데에는 UNESCO역할이 가장 크다. 랭그랑은 1965년 유네스코에 “평생교육”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평생교육이라는 용어를 가장 처음 부각시켰다. 랭그랑의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평생을 통해 교육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파편화되고 분절되어 있는 교육제도들이 인간의 종합적 발달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학교교육 중심으로 짜여진 틀이 인간발달 중심으로 다시 짜여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 할 수 있다.
1972년 포레의 보고서는 “Learning to Be: the world of Education Today and Tomorrow"는 각국의 교육제도를 심도 있게 분석하면서, 교육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교육의 근본적인 대안을 학습사회를 통한 평생교육에서 찾고 있으며, 이 제안은 향후 유네스코의 평생교육제안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 되었다. 인간의 학습이 삶의 생성과 유지, 그리고 비판적 재창조를 위한 필수 기제임을 주장하고 있다.
2) 평생교육이념의 갈등구조
(1) 지식의 특성변화와 인적자원개발의 등장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냈고,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로 ‘지식’이 대두되었다. 탈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식근로자와 서비스근로자로 나누어 진다고 말한다(드러커, 1993). 이러한 전환은 지식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에 의해 촉진되었고, 지식은 항상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 적용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지식은 행동에 적용되게 되었고, 지식 그 자체가 자원이 되고 효용이 되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은 사유재산에서 공공재산으로 변화되었고, 이로 인해 중요한 생산수단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식의 의미와 목적이 크게 변하게 되면서, 지식을 전달하고 보급하는 통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그 통로가 다름 아닌 교육이었던 것이다. 이제 교육은 기업의 중요한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가장 적합하게 들어맞는 것은 ‘평생교육’의 개념이었다. 지식을 자유롭게 유통하고 학습공동체의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은 기업교육의 학문적 지지대가 될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인적자원개발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화두로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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