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교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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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시대는 유관불심(儒冠佛心) 사상으로 머리에는 유교의 관을 쓰고 불교의 마음을 가진 문화이다. 학교교육은 유교경전에 기초를 두었으며, 불교는 민중들에게 널리 신봉되었다. 유교로써 나라를 다스리려하였고 정치제도도 유교에 기초를 두었으며, 과거제도를 추진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 안향(安珦)에 의해 주자학(朱子學)이 전래되어 새로운 정치철학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짧아 주자학은 조선사회에서 본격적인 발전을 보게 된다.
2. 고려시대의 관학
(1) 국자감
: 성종 11년(992) 개경에 설립한 최고 학부의 국립고등교육기관이었다. 일종의 종합대학으로 국자학, 태학, 사문학, 율학, 서학, 산학 6학이 각 단과대학 성격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육학(六學)으로 예부에서 관장하였다. 국자학, 태학, 사문학은 유학과로서 박사와 조교가 있었으며, 율, 서, 산학은 잡학으로서 해당 기술을 익히는 것이며 박사만 두었다. 유학과인 국자학, 태학, 사문학은 천한 일에 종사한 자와 가도(家道)가 부정한 자의 자손과 사죄(私罪)를 범한 자의 입학이 불허되었다. 예종 4년(1109)에는 구자감에 칠재(七齋)를 두어 교육내용을 분과적으로 실시하였으며, 문무교육을 장려하였다. 7재는 사학이 발달되어 관학이 위축되자 관학진흥책으로 유학을 진흥하기 위하여 국자감에 설치한 것으로 유학재 6재와 무학재 1재를 합한 것이다. 예종 14년(1119)에는 양사(養士)의 일과 그 비용을 전담하는 기구인 양현고를 세워 국자감 경제기반의 발정을 도모하였다. 양현고는 국자감에 설치한 장학재단이며, 양사비는 국자감에 입학한 학생에 대한 수업상, 숙식상 일체의 비용을 말한다. 그리고 문선왕묘(文宣王廟), 돈화당(敦化堂), 재(齋)를 두어 교육기능과 제사기능을 겸하였다.
국자감의 교육목적은 첫째 국가가 필요로 하는 관리의 양성이었다. 둘째 유교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의 배출에 있었다. 문벌귀족 사회의 성격을 반영하여 육학에 따라 입학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국자학, 태학, 사문학 등에는 각각 전문의 국자박사(종 7품), 태학박사(종 7품), 사문학박사(종 8품) 등 박사와 조교를 두어 공통필수, 교양, 전공과목으로 나누어 교수하고 있었다. 공통필수과목으로는 신라의 국학과 마찬가지로 논어와 효경을 과하였다. 교양과목으로는 산수, 시무책(시사논문), 습자, 국어, 설문, 삼창, 이아 등을 과하되 산수와 시무책은 필수 그 외는 선택적이었다. 즉, 여가가 있으면 학습케 했다. 전공과목으로서의 경학은 ① 소경(상서, 공야전, 곡량전), ② 중경(주역, 모시, 주례, 의례), ③ 대경(예기, 좌전) 등으로 3분하고 소, 중, 대경 중의 각 경서를 각각 1경씩 선택하여 이수하되 도합 8년 반 만에 마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율, 서, 산학에는 각각 율학박사, 서학박사, 산학박사 1명 씩 두어 율학은 법률, 서학은 8서, 산학은 산수를 각각 6년을 원칙으로 학습케 했다.
학습방법은 철저한 정독주의였다. 대, 중, 소경 중의 과목 하나를 선택하여 학습하되 한 가목의 학습이 끝난 후 다른 과목으로 넘어가게 했다. 교수인 박사와 조교는 하루에 5인 이내의 학생에게 두 가지 이내의 질문을 하여 학생들의 의문을 토의, 분석케 하였다. 토론식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의혹을 풀고 정확하게 문제를 파악하였다.
고려 국자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학생을 기숙시키는 기숙사제도를 두었다. ② 국초에 처음으로 문묘(文廟)를 세움으로써 우리나라 국학향사(國學享祀)의 시초가 되었다. 국자감은 문선와 공자를 모시는 문선왕묘인 문묘제도를 설치했으며, 공자를 모시는 본전을 대성전이라 칭했고, 중국의 유현을 모시는 곳을 종사라 칭했다. ③ 현종 11년에 최치원, 13년에 설총을 문묘에 배상하고 우리나라 선현들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④ 예종 4년에 7가지 전문 강좌인 7재를 설치하였다. ⑤ 학과, 박사, 학사들의 회강 휴식소로 보문각을 설치하였다. ⑥ 고금 도서를 소장한 청연각(일종의 연구 강론을 위한 아카데미)을 설치하였다. ⑦ 예종 11년에 국자감에 무학을 설치하고 무신등용의 길을 열어 주었다. ⑧ 숙종 6년에 국자감에 서적사를 두고 귀중한 책을 인쇄하였다. ⑨ 충렬왕 30년에 국학의 육영재단인 섬학전을 설치하였다.
(2) 학당
국도(國都)에 세운 중등교육기관으로 지방에 세운 향교와 같은 수준의 학교이다. 학당에는 향교와는 달리 문묘를 모시지 않았다. 동서학당과 오부학당이 있었다. 동서학당은 운영이 부진하여 공양왕 3년에 문익점, 정몽주의 요청으로 5부학당으로 발달, 편성되었다.
(3) 향교
인종 5년(1127)에 내린 조서에 의하여 각 주현(州縣)에 세운 관학으로 지방 중등교육기관이며 유학의 전파, 지방민의 교화가 목적이었다. 교육내용은 유교 중심적이었고 봄, 가을에 걸쳐 선성(先聖), 선현(先賢)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어 향교는 교육기관이자 제사 기관이었다.(향교는 문묘를 모셨으며, 이 점에서 문묘제를 둔 국자감과 그 성격을 같이한다.) 입학자격은 국자감의 율, 서, 산의 3학과 같아서 문무관 8품 이상의 자(子)와 서인에게도 입학을 허가하였고, 성적이 우수하면 국자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3. 고려시대의 사학
참고문헌
참고문헌
김동규, 한국교육사, 서울: 교육과학사, 1997.
김영우 외 4인, 교육사 교육철학, 서울: 교육과학사, 1999.
조무남 외 2인, 교육사 교육철학 강의, 서울: 문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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